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trans x cross
[trans x cross] 음악, 일기가 아닌 소설처럼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3-05-29

4년 만의 신보 ≪3≫ 발표한 뮤지션 오지은

오지은이 새 앨범 ≪3≫을 들고 찾아왔다. 2009년 5월, 2집 ≪지은≫을 발매한 지 4년 만이다. 그간 오지은은 프로젝트 밴드 ‘오지은과 늑대들’을 통해 발랄한 모습을, 여행 에세이 <홋카이도 보통열차>에선 솔직한 내면을 보여줬다. <고양이 섬의 기적>의 번역가로 활동하기도 했고, <씨네21>에 칼럼도 게재했다. 이제는 20대가 아닌 30대, 그러나 강렬한 음색은 예전 그대로다. 다만 ‘홍대마녀’라는 센 수식어와는 달리, ≪3≫의 오지은은 다양한 ‘관계’ 속에 자연스럽게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안다.

-4년 만에 세 번째 앨범을 냈다. =예전만큼 노래가 빨리 써지지 않더라. 늘 머릿속에 3집에 대한 생각은 있었다. 그러니 나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돌아보니 4년이 지났더라.

-선뜻 곡을 만들지 못한 까닭이 뭔가. =이전에 명확했던 것들이 다 불확실해졌다. 너무 섞여 있어서 한 가지 감정으로 정리가 안되더라. 타이틀곡인 <고작>의 가사가 제일 늦게 나왔는데, 이렇게까지 찌질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도 그런 고민을 하게 되더라. (웃음) 몇년간 오지은이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하면서 내가 할 건 다 했다. 1집, 2집은 적나라하게 쪽팔린 줄 모르고 했고, 이젠 쪽팔린 걸 알고 하는 거다. 멋모르고 내지르던 것들을 이제는 알게 됐는데, 그걸 감수하고 하는 게 1, 2집과의 차이다.

-1, 2집에서 보여주었던 오지은의 다크포스는 여전하다. 다들 봄을 노래하는 시기에 이렇게 바닥을 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그게 또 결국 오지은의 경쟁력이지 싶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웃음) 예전이 위로 솟는 분노였다면, 지금은 가라앉을 대로 가라앉아서 에너지조차 없는 분위기다. 1집의 <화>나 2집의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 모두 너무 사랑해서 그게 오히려 불안한, 사랑이 넘치는 노래다. 이제는 반대다. 가득 채웠던 것들이지만 거품이 꺼지고 지저분하고 미끌거리는 것만 남았다. 어떻게 한 앨범에 이런 것들을 다 넣을까 고민하는 데 4년이 걸렸다. 이제는 내 이야기만 가치있다는 생각을 떨쳤다. 지금은 모두 담는다는 마음이다. ‘오지은과 늑대들’로 활동을 하거나 에세이 <홋카이도 보통열차>를 안 썼어도 이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다.

-1, 2집을 수식하던 앨범명 ≪지은≫을 버린 것도 그 변화의 반영인가. =오지은의 앨범이라고 하기에 지금은 시점이 바뀌었다. 일기장 같은 앨범에서 떠나, 드디어 싱어송라이터라고 불릴 수 있는 노래가 됐다고나 할까. 한번쯤 스쳐갔던 감정이란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제 일기가 아니라 소설이 된 거 같다.

-그런 면에서 이전까지가 ‘지은’을 중심으로 한 연애의 관계망, 사적 고백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다양한 관계들이 각각의 노래에 담긴다. =확실히 남에게 관심이 많아졌다. 나이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자연스럽게 그런 마음이 생기더라. <서울살이는>은 서울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 이곳을 사는 사람에 대한 애틋함이 증폭된 것이다. 20대 때 말했다면 가벼운 푸념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나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겠다 싶더라. <누가 너를 저 높은 곳에 올라가도록 만들었을까>는 지난해 발표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해 만든 컴필레이션 음반 ≪이야기해 주세요≫에 수록된 곡이었는데, 조금이라도 많은 이들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가져왔다. 노동운동가 김진숙 지도위원의 인터뷰를 보고 만들었는데, 정치적인 걸 떠나 높은 곳에 홀로 올라가 애쓰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위로의 의미가 확장됐으면 좋겠다.

-록, 발라드, 보사노바 등 다양한 장르가 한 앨범에 공존하고, 신윤철, 윤병주, 민용린(디어 클라우드), 이상순, 고찬용, 성진환(스윗소로우), 이이언, 린, 정인 등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어불성설이지만, 이거야말로 ‘블록버스터급 인디앨범’이다.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선택이었나. =한국 음악신을 잘라왔으니. (웃음) 농담으로 ‘나 이제 은퇴해도 좋겠다’고 했다. 내가 쓴 노래에 신윤철이 기타 쳐주고 이병훈이 피아노 연주해주고, 보사노바곡엔 이상순이 참여해준 거다. 천재들이 내 노래를 매개로 자신들의 순간을 남겨준 거니 더 바랄 게 없더라. 안돼도 그만이다라는 마음이었는데 다들 흔쾌히 들어주셨다. 중학생 때부터 음악하면서 내가 얼마나 이분들의 팬이었겠나. 1집과 2집이 발라드로 통일성을 주었다면, 이번엔 앨범의 통일성보다 각각의 곡을 진하게 하는 것만 생각했다. 모험일 수도 있었는데, 믹스마스터링을 잘해주었다.

-당분간은 공연으로 바쁠 테고, 4집은 좀 빨리 나오는 건가. =7월20일에 단독공연하고 펜타포트록페스티벌도 가고, 에세이도 계획 중이다. 4집은 아직 완전 백지다. 지금보다 더 소설 같아졌으면 하는 것 말고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가 돼도 음악할 거라고 쉽게 이야기했는데, 있는 그대로를 내보여서 결과물을 내는 게 그리 쉽지 않은 일이더라. 난 정말 나를 깎아내리는 걸 많이 한다. 작업할 때는 문자 하나도 못 본다. 셀프 프로듀싱이라는 게 마냥 나 잘났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번 나를 검증해야 한다. 음악이라는 게 나만 좋자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남을 위해서만 하는 것도 아니다. 그 중간을 잘 찾아야지, 자칫하면 모든 결과물들이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너구리 라면을 좋아하고, 화장품엔 누구보다 일가견이 있으며, 여행도 전문가급이다. 에세이 쓰는 오지은은 정겨운 친구 같다. 음악 하는 오지은과는 다른 사람인 건가. =에세이를 쓰는 오지은은 누구한테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고, 가수 오지은은 남들에게 못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 테마가 있다면 음악은 내 핵이다. 에세이는 그런 사람이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아보려고 나무도 심고, 샘도 만들어가는 노력이다. 핵만 있으면 너무 힘들고 불행할 텐데, 에세이와 번역작업을 하면서 일종의 환기를 하게 된다. 스위치를 껐다 켰다를 잘해야 하는데, 잘못했다간 이 마감 저 마감에 치이기 십상일 거 같다.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