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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피카추] 으악 몬스터다

<주온>부터 <크루즈 패밀리>까지 영화 속 무서운 꼬마들

<크루즈 패밀리>

<아기공룡 둘리>

<극장판 포켓몬스터: 뮤츠의 역습> 시사회장에 들어간 기자들은 겁에 질렸다. 꼬마들 수백명(…은 아니었겠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이 빽빽 소리를 지르며 극장을 뛰어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정체는 관객 시사단으로, 영화사가 관객 반응을 보겠다며 초대한 전문가 집단이었지만 기자들이 보기에는 그냥 몬스터다. 나는 입구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40대 독신 남성인 L선배를 옆구리에 끼고 평소 무릎 관절에 좋지 않다며 멀리했던 2층으로 도피했다. 꼬마들이 힘을 모아 “피카 피카 피카츄”를 외치던 그날,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혼이 나간 기자들은 모두 바람보다 먼저 누워 깊이 잠들었다.

아이들은 무섭다. 앞일 따위 생각하지 않고 체력을 불사른다. 괴성을 지르며 진격할 때면 어미, 아비도 못 알아본다. 어찌나 무서운지 TV애니메이션 <아따맘마> 속 젊은 부모는 아이들이 난동을 부릴 때마다 거대한 우주 괴물이 지구를 때려 부수러 강림했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광선총을 쏘며 달아난다.

오색 빛깔 호랑이와 수박만 한 모기 등 무서운 것들이 많이 나오는 <크루즈 패밀리>를 보면서 보는 내내 한 꼬마가 무서웠다. 커다란 이빨을 가진 그녀의 이름은 샌디, 절벽에서 떨어지고 바위에 깔리고 거대 파충류가 삼켜도 죽지 않는 불사조 패밀리 중에서도 가장 앞날이 촉망되는 막내다. 아직 말도 못하는데 벌써부터 엄청 크고 힘센 샌디를 보며 나는 그동안 잊고 있던 이름을 떠올렸다. 희동이, 쌍문동 슈퍼 베이비, 분노한 공룡 둘리보다 전투력이 강하다는 무적의 꼬마. 희동이는 부모가 고모부 고길동에게 맡기고 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방치된 꼬마다. 기저귀를 차고 고무 젖꼭지를 빠는 귀여운 아기처럼 보이지만 쌍문동 고가네에서 두 번째로 위험한 존재다(첫 번째는 물론 고길동). 그 괴력은 과장이 아니다. 잠깐이라도 남의 아이를 봐준 사람이라면 안다, 아이 울음소리는 천지를 뒤흔든다는 사실을. 고무 젖꼭지가 귀엽기로는 <심슨가족>의 매기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무섭기로도. 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아 쭉쭉 소리만 내면서 아기 슈트를 입고 기어다니는 매기는 부모가 잠들면 벽도 타고 창문도 타고 택시도 탄다. 물리학 공식도 알고 암살자 노릇도 하는, 문무를 겸비한 슈퍼 베이비다. 그 노련함을 존중받아 매기가 처음 “아빠”라고 말한 순간, 목소리를 연기한 사람은 당시 연세 예순의 엘리자베스 테일러였다.

<심슨가족>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 두 꼬마도 오로지 힘과 크기로 모든 것을 휩쓰는 거대 베이비에는 댈 바가 아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온천장 아기 보, 한번 화나면 얼굴 크기만으로 치히로를 압도하는 마녀 유바바도 두려움에 떤다. 놀아주지 않으면 일러버린다고(=죽여버린다고) 협박하는, 물정 좀 아는 꼬마. 하지만 마녀 제니바의 마술에 걸린 다음에는 귀여운 생쥐가 되어 열심히 물레를 돌리는데, 이를 두고 어떤 네티즌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귀여워졌으니 고마운 줄 알라고.

날고 기는 이 아가들이 자란다고 해서 <주온>의 토시오를 당할까. 대사라고는 “토시오”밖에 없는데도 존재감이 엄청나서 한국 인터넷에 토시오 팬카페가 생겼을 정도다. 고양이 소리도 잘 내고 여기저기 잘 뛰어다니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알고 보면 수영과 피아노를 좋아하는 미소년인데 <주온>에 나오는 바람에 왕따당하다가 자살했다는 헛소문까지 돌았던 불운의 꼬마였다.

생각해보면 나도 옛날엔 무서운 아이였다. 지금은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개미 한 마리 못 죽이는데 어릴 땐 잠자리 날개를 떼면서 놀았으니. 그리하여 일찍이 애거사 크리스티는 말했다. “아이들은 섬뜩한 것들을 좋아하죠. … ‘여자가 식칼로 쥐들의 꼬리를 자르네.’ 물론 아이라면 이런 가사를 좋아하겠죠.”(<쥐덫>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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