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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스코프] 밴드와 제주 그리고 인권
윤혜지 사진 오계옥 2013-07-26

오멸 감독의 신작 <하늘의 황금마차> 촬영현장

피리 부는 아저씨, 아니 청년들이다. <피리부는 사나이>의 한 대목처럼 트럼펫 소리에 홀린 문 노인이 신나게 연주 중인 밴드의 뒤를 졸졸 따라가고 있다. 모두가 쿵짝쿵짝 한껏 흥이 났다.

제주의 뜨거운 햇볕에 그을린 팔을 척척 걷어붙인 채로 카리스마 넘치게 현장을 호령하던 오멸 감독. 그에게 <하늘의 황금마차>는 카메라 앞에서 자유롭게 노는 배우들을 악기 삼아 자연스러운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자칫하면 영화 촬영현장이 아니라 홍대의 어느 야외무대로 착각할 뻔했다! 한적한 협재해수욕장이 킹스턴 루디스카의 신나는 연주 덕에 시끌벅적하다.

문 노인을 연기한 배우 문석범. <어이그, 저 귓것>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에도 출연했다. <하늘의 황금마차>에선 말썽쟁이 ‘귓것 하르방’을 연기하지만 실제로는 제주 고유의 노동요에 조예가 깊은 전문 소리꾼이다.

“우리가 우리를 뭐라고 부르는 줄 아세요? 5분 대기조예요.” 오멸 감독의 신작 <하늘의 황금마차>에 출연하는 스카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멤버들이 입을 모아 푸념을 털어놓는다. 그들은 하나같이 땀자국이 누렇게 말라붙은 “난닝구”를 입고 있었다.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의상이기 때문에” 촬영이 시작된 뒤 단 한번도 빨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이러고 어떻게 사나 싶었는데 적응되니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단다. <하늘의 황금마차> 제작진은 시내에 따로 숙소를 마련하는 대신 야영장에 쳐둔 텐트에서 먹고 자며 촬영을 진행 중이다. 오멸 감독은 “인권영화 프로젝트를 하면서 스탭의 인권을 무시할 순 없다. 여행 다니는 기분으로 영화를 찍자”고 제안했고, 돈 스파이크 음악감독을 비롯한 제작진 모두가 감독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하늘의 황금마차>는 국가인권위원회의 ‘2013 인권영화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 오멸 감독은 “노인문제는 곧 나의 집안일이고, 우리 가족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노인에 관한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 제주도에 사는 문 노인(문석범)과 동호(김동호)는 걸어서 제주를 여행하기로 한다. 여행 중에 두 노인은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를 만난다. 함께 여행하며 청년과 노인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 <하늘의 황금마차>는 <어이그, 저 귓것><뽕똘><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를 잇는 제주영화이며, 음악영화이고 또 로드무비다.

킹스턴 루디스카와 문 노인이 옹포 포구에 섰다. 6월9일 시작된 촬영이 벌써 28회차다. 골목 이곳저곳을 헤매는 문 노인을 철욱과 석율이 발견해 다른 데로 모시려고 하지만 문 노인은 들은 체도 않는다. 그때 정석이 트럼펫을 불고, 셋은 동시에 뒤를 돌아본다. 주변 상황을 통제해야 하는 스탭들은 트럼펫 소리 때문에 동네 개들이 짖을까 고민이 많다. 몇 차례의 테이크 뒤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다. 잠시 뒤 협재해수욕장 근처 골목으로 이동한 제작진. 골목에서 촬영을 기다리는 멤버들을 본 동네 어르신이 “뭐하러 좁은 데 모여 있냐”며 널찍한 공터가 있다고 거기로 가자고 안내한다. 스탭들은 부랴부랴 달려가 촬영 상황임을 알린다. 골목 촬영을 마치고 협재해수욕장에서 공연장면을 촬영한다. 커다란 현무암 바위 위에 장비를 설치하고 연주를 시작한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이고, 어느새 촬영장은 공연장이 되어버렸다. 즉흥과 여유를 밑천 삼은 이들의 자유 캠핑은 7월 중순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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