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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오! 마돈나] 세상 어디에도 없는 나쁜 여자

베티 데이비스 Bette Davis

여성에게 ‘나쁜’이란 말은 무엇보다도 성적 일탈에 대한 비유법이다. 형용사는 판단의 수사(修辭)인데, 그 판단의 언어적 주체가 대개 남성이란 점을 고려한다면, ‘나쁜 여성’은 곧 남자(아버지)의 성적 명령을 무시하고 윤리의 한계를 넘어가는 여성들이다. 그러니 나쁜 여성(Evil Woman)은 종종 중세의 마녀처럼 취급되기도 한다. 베티 데이비스가 첫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위험한>(Dangerous, 1935)은 제목대로 ‘위험한 여성’의 이야기인데, 얼마나 연기가 실감났던지, 몇 백년 전이라면 데이비스는 화형에 처해졌을 것이란 비평도 나왔다. 말하자면 베티 데이비스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악녀다. 그런데 바로 그 점 덕분에 데이비스는 영화사에 기록되는 특별한 경력을 쌓았다.

크고, 날카롭고, 색기 넘치는 눈동자

예술사에서 여성이 행위의 주체가 되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고, 후발 주자인 영화의 경우는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그런 사정은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다. 곧 영화는 통념의 확산에 효과적인 매체이며, 통념의 은유인 남성이 스토리를 끌어가고, 여성은 그 뒤를 따라가는 게 일반 영화의 공식이다. 여기에 본격적으로 균열을 낸 형식이 영화사가 몰리 해스켈에 따르면 “어두운 멜로드라마”(Dark Melodrama)이다. 나쁜 여성이 주인공으로 나와서 드라마의 대부분을 끌고 가는 1930년대 말과 1940년대 할리우드영화들을 말한다. 멜로드라마의 여주인공들은 대개 마조히스트들인데, 어두운 멜로드라마에서의 주역은 반대로 사디스트들이다. 필름 누아르와도 다르다. 누아르의 여성이 남성 영웅의 상대역이라면, 어두운 멜로드라마의 여성은 자신이 주역이다. 베티 데이비스는 이 ‘어두운’ 영화들에서 단연 돋보였다.

<위험한>에서 데이비스는 기혼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새로운 사랑을 위해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하는데, 그 뜻이 거부되자, 남편과 함께 차를 몰고 나가 가로수를 정면으로 들이받으며 동반자살을 기도한다. 여성이 차를 몰고 가로수로 돌진하는 장면도 아찔하고, 사랑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 광기도 공포스러울 정도다. 바로 그런 ‘위험한’ 이미지가 데이비스의 페르소나가 됐다. 사실 이런 역할, 여배우라면 별로 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한번 해서 아카데미상까지 받았다면 적당히 변신을 꾀하는 게 영리한 처신이지 싶다. 데이비스는 그러지 않았다. 사실 <위험한> 바로 전에, 데이비스는 서머싯 몸의 원작을 각색한 <인간의 굴레>(1934)에서 다른 여배우들이 하기 싫어했던 악녀 밀드리드 역을 맡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순진한 의대생과의 악연, 곧 ‘인간의 굴레’를 질기게 이어가서 한 남자를 파탄 직전까지 몰고 가는 역할이다. 그 유명한 ‘베티 데이비스의 눈동자’는 이 영화를 통해 알려졌다. 유난히 크고, 날카롭고, 신경질적이고, 무엇보다도 색기가 넘쳤다.

<베티 데이비스의 눈동자>(Bette Davis Eyes)는 킴 칸스의 노래로도 유명한데, 남성을 자기 마음대로 갖고 노는 당돌한 여성에 대한 가사를 담고 있다. 당신(남성)을 힘들게 하는 그녀는 진 할로의 금발에, 그레타 가르보의 냉담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티 데이비스의 눈동자를 갖고 있다고 노래한다. 히트곡의 가사에 소개될 만큼 데이비스의 눈동자는 외관의 아름다움은 물론, 남성을 압도하는 강렬한 이미지로 인상을 남긴다.

윌리엄 와일러와 전성기 열어

데이비스의 사악한 이미지가 사회적인 맥락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는 건 멜로드라마의 거장인 윌리엄 와일러와 협업하면서부터다. 말하자면 악녀는 전통에 도전하는 상징이 됐다. 두 사람은 함께 세 작품을 연달아 만들었고, 첫 출발은 <제저벨>(Jezebel, 1938)이다. 제목은 신의 뜻을 거역한 성서의 악녀 이름에서 따왔다. 짐작할 수 있듯, 그 제목은 허구 속 인물은 물론 베티 데이비스를 설명하는 데 매우 적절한 것이다. 19세기 중반이 배경인 <제저벨>에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1963)와 비교될 정도로 유명한 춤장면이 나온다. 무도회에 참가하려면 여성들은 반드시 흰색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 말하자면 여성들은 흰색 드레스처럼 순결해야 한다는 사회의 명령이다. 그런데 제저벨은 혼자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다. 파트너인 헨리 폰다는 그녀에게 ‘올바른’ 옷을 입히려고 부단히 노력하지만 전통과 관습을 업신여기는 제저벌을 설득할 수 없었다. 춤은 시작되고, 사람들은 하나둘 이들 커플과 어울리지 않으려고 무대에서 퇴장하고, 결국 두 사람만 남아 춤을 추고 있다. 남성들에 의해 전혀 길들여지지 않는 악녀의 이미지는 더욱 굳어졌고, 데이비스에게는 ‘붉은옷을 입은 여성’이라는 주홍글씨가 낙인처럼 찍혔다.

와일러와 협업한 두 번째 작품은 <편지>(The Letter, 1940)다. 기혼녀가 남편 몰래 다른 남자를 사랑했고,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총으로 그 남자를 죽이는 비정한 여인 역이다. <제저벨>에서 악녀는 결말부에서 참회라도 하지만, <편지>에선 그런 완충장치도 없고, 끝까지 제멋대로 행동하다 결국 살해되는 잔인한 여성을 연기한다.

당시 데이비스와 와일러는 연인 사이였는데, 남성 편력이 화려했던 데이비스는 1962년 발간한 자서전(<외로운 인생>(The Lonely Life))에서 자신의 유일한 사랑은 윌리엄 와일러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 관계의 마지막 작품이고, 데이비스의 최고작이 바로 <작은 여우들>(The Little Foxes, 1941)이다. 이른바 심도촬영(Deep Focus)으로 유명한 촬영감독 그레그 톨랜드와 함께 빚어낸 보석 같은 작품으로, 20세기 초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거울, 피아노, 그림, 지팡이 같은 상징적인 소품들에 대한 집착과 화려한 실내장식은 여전히 비스콘티의 작품과 비교되고, 복잡한 세상을 풍부한 깊이의 기품있는 화면으로 잡아내는 솜씨는 톨랜드에게 많이 빚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데이비스는 남자들이 독점했던 권력의 수단, 곧 ‘돈’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인다. 돈 앞에 고결한 여성이 아니라, 그 돈을 손에 쥐기 위해 악착같이 머리를 쓰는 금력의 화신으로 나왔다. 돈 앞에서 마치 중세의 귀족부인처럼 관심없는 듯 행동하는 데이비스의 위선적인 모습은 악녀의 정점을 보는 듯했다. 데이비스와 비교할 때, 돈을 손에 쥐기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남자들은 경망스런 소인배였다.

배우가 주어진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데이비스는 주어진 역할을 하기보다는 전통에 도전하여 새로운 역할을 찾아냈고, 그럼으로써 여성 배우의 역할과 영화의 세상을 확장했다. 의미있는 창의력이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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