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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 표현의 자유 없이 민주사회는 없다
윤혜지 사진 백종헌 2013-08-02

등급분류의 부조리에 대항하는 변호사 박주민

“제가 이런 인터뷰를 할 만한 사람인가요?” 박주민 변호사는 인터뷰 내내 멋쩍어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그가 안락한 삶을 택하고 받아들였다면 그와의 만남은 아마도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에 들어가 약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줄기차게 변론을 펼쳤던 그는 2006년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은 <천국의 전쟁>의 변호를 맡으면서 영화계와 연을 맺었다. 한번 맺은 인연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은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의 등급결정 취소 소송 1차 공판에서 승소했는데, 5년 넘게 표현의 자유에 관한 영화계 안팎의 투쟁에 그가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여균동 감독이 진행하는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여균동의 오늘> 출연 때문에 인터뷰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는 허겁지겁 던져댄 질문에도 정확하고 차분하게 답변을 내놓았다.

-영등위를 상대해 처음으로 이긴 셈이다. 축하한다. =일단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최고 권력자에 대한 정치풍자가 어느 정도 허용된 셈이고, 따라서 다른 영화도 표현의 폭이 차차 넓어지지 않을까 싶다.

-김선 감독의 <자가당착>은 두 차례에 걸쳐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다. =실제로는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더라도 제작자나 감독이 소송까지 밀어붙이긴 힘들다. 제작자, 감독들로선 영화 한두편 만들고 말 것이 아니니 감히 영등위를 적으로 두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대개 알아서 문제될 만한 장면을 자르고 재심사를 받아 개봉하려 한다. 일단 소송을 시작하면 1심만 해도 몇 개월씩 걸리고, 대법원까지 가면 1∼2년이 소요된다. 그렇게 되면 영화인들은 그들 말로 “영화가 썩는다”고 하더라. 하지만 김선 감독님은 적극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고, 그런 부분이 나와도 잘 맞았던 것 같다.

-<천국의 전쟁>의 소송 때보다도 재판이 더 까다로워지진 않았나. =<자가당착>은 표현이 거칠기 때문에 재판부가 보기에 문제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다. 판사를 어떻게 설득할지 자신이 없어서 김선 감독님에게 질 수도 있다고 누차 말씀드렸다. 게다가 대상이 되는 인물이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이지 않나. 튀는 판결을 할 경우 불편해지는 게 있으니 판사들도 은인자중하는 편인데 과연 소신껏 판결할 것인가 걱정이 앞섰다.

-어떻게 재판부를 설득했나. =힘들었던 부분은 판사에게 등급분류가 잘못됐다는 걸 증명할 자료를 찾는 일이었다. 이런 식의 정치풍자영화는 외국에도 잘 없었다. 결국 못 찾고 포기할 즈음이었는데 마침 들고 있던 신문에 실린 인터뷰에서 금태섭 변호사가 <셀러브리티 데스매치>라는 TV프로그램을 언급한 걸 보았다. <MTV>에서 7, 8년가량 매주 방송했는데 인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현존하는 정치인을 클레이애니메이션으로 풍자하는데 <자가당착>에 비하면 열배 이상 잔인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그 편집본을 증거로 제출해 공판정에서 같이 봤다. 처음엔 웃기게 진행되다가 조금 지나 부시의 머리가 터지고 뇌가 튀니까 판사의 표정이 달라지더라.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결국 <자가당착>은 성인들이 자유롭게 보고 판단할 수 있을 정도의 영화라고 판단돼 제한상영가 등급이 취소됐다. 기회되면 <셀러브리티 데스매치>도 찾아보시길. (웃음)

이름있는 분들이 과감하게 부딪쳐주었으면

-이후 영등위쪽으로부터 다른 문제제기가 있지는 않았나. =영등위에서 항소를 했고, 차차 항소가 진행될 거다. 대법원까지 가지 않을까 싶다. 항소심에선 제한상영가 등급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도 적극적으로 하려고 생각 중이다.

-최근,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도 또 한번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받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영등위가 원하는 대로 맞춰서 재심 청구하지 말고, 김기덕 감독님 같이 이름있는 분들이 과감하게 부딪쳐주는 건 어떨까도 생각해봤다. 오래전, 김지운 감독님의 <악마를 보았다>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을 때도 규모있는 제작사들이 제한상영가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의 주체가 돼주었다면 좋았겠다고도 아쉬워했다. <천국의 전쟁>도 수입사인 월드시네마 변석종 대표님이 기자들을 상대로 시사를 열고 설문을 작성했다. 그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했는데 소용없었다. 전문가와 일반 국민의 시선은 다르다는 이유였다.

-<천국의 전쟁> 때는 패소했지만, 영화및비디오물의진흥에관한법률(이하 영비법)의 제한상영가 등급규정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판결을 끌어냈다. =당시 구강성교 장면이 크게 문제가 됐는데 실제로 그 장면은 성애를 위한 장면도 아니거니와 아주 짧게 표현됐다. 게다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몽상가들>이 야하긴 훨씬 야했는데도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그런 영화들과 비교해가며 등급분류 기준이 자의적이라는 주장을 폈다. 공판정에서 튼 편집본엔 <몽상가들>과 <브로크백 마운틴>이 포함돼 있었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심지어 15세 관람가였다. 그걸 재판부와 함께 보면서 이런 영화도 있는데 <천국의 전쟁>만 차별을 받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하지만 판사는 구강성교 장면을 영화관에서 튼다는 것 자체에 거부감을 표시하더라.

법률가가 될 생각이 없었던 영화광

2005년 11월, 영등위에서는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감독의 <천국의 전쟁>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내렸다. 박주민 변호사는 2006년 2월, 수입사인 월드시네마 변석종 대표와 함께 제한상영가 등급분류결정 취소 행정소송을 시작한 동시에 제한상영가 등급규정이 모호하다는 이유로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도 같이 진행했다. 등급분류기준에 대해서는 헌법불합치 판결이 내려졌으나, <천국의 전쟁>의 제한상영가 판정은 적법하다는 최종 재판 결과가 있었다. 2012년 11월, 박주민 변호사는 연거푸 두번이나 제한상영가를 받은 <자가당착>의 등급분류결정 취소 행정소송을 시작했다. 마침내 2013년 5월, 승소함으로써 등급분류제도와의 지난한 투쟁사에 의미있는 한 걸음을 내딛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국내 등급심의제도는 굳건하게 버티고 서서 “불온한 영화”들에 칼질을 서슴지 않고 있다. “법대에 다니면서도 법률가가 될 생각이 없었던” 그가 변호사가 된 데엔 표현의 자유를 사수하겠다는 굳은 결심이 있었다.

박주민(앞줄 오른쪽) 변호사는 2012년 11월1일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제한상영가 취소 행정소송청구...

-소송을 맡기 전에도 국내의 등급심의제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나. =<천국의 전쟁>의 소송은 영화사 봄 대표였던 조광희 변호사가 제안해줘서 맡게 됐는데, 원래도 영화를 무척 좋아한다. 매일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는 이유가 영화를 보기 위해서다. 대학 때 영화동아리를 만들었을 정도다. 영화이론서에 소개된 영화들을 보고 싶었는데 국내에선 못 보는 경우가 있었다. 대학생이 되면 모든 영화를 다 보게 될 줄 알았기 때문에 충격이었다. 심의기관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다 보면서 국민들은 왜 못 보게 하는지 의문이 생겼고, 자연스럽게 등급심의제도에 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그때의 패소가 등급분류제도와 관련한 법적 투쟁을 이어갈 결심을 굳히게 된 계기가 되었나. =중간에 새로 만들어진 등급분류기준도 추상적이긴 마찬가지였다. 계속 자의적으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주려고 하는 걸 보니 등급분류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주위의 인권 활동가들과 교류하면서 영비법 개정안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최문순 의원과도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결국은 다 잘 안됐다. 토론회 등 관련 행사가 있을 때마다 꼬박꼬박 참여했다.

-판사나 검사도 있는데 왜 굳이 변호사가 됐나. =사실 처음엔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이 사법시험을 본다는 게 얄팍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4학년 무렵 신도림동의 철거촌 사람들을 도우러 갔다가 그 생각이 바뀌었다. 크리스마스이브, 펑펑 내리는 눈을 맞으며 구청 주차장에서 몇 시간을 기다렸는데 미리 약속까지 한 구청장이 끝까지 안 나오는 거다. 씁쓸한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오면서 일을 제대로 하려면 발언권을 가져야겠구나 생각했다.

-활동가가 본업이고, 변호사는 부업인 것 같다. =애초에 변호사가 되려고 했던 이유가 사회운동을 하고 싶어서였다. 낯뜨겁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없는 사람들 편에 서서 일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연수원에 가서도 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을 만난다든지, 학회나 동아리에 참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법률가들의 모임이 실제로 민변 말고는 없었기에 민변에 가입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변호사로서 충분히 안락한 생활을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렸을 때부터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일 때 촛불 켜고 소원 빌 때도 정말 그런 소원을 빌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즐겁고 재미있고 인생에 보람이 되는 것 같다. 어떤 분들의 눈엔 내가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오히려 이건 내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 내 욕심껏 살고 있는 것으로 봐주면 좋을 것 같다.

활동가가 본업, 변호사는 부업?

-민변에선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이하 집시법) 관련 사건을 주로 담당했다. =2008년, 촛불집회를 할 때 야간집회를 금지하던 부분에 의문을 표하고 위헌법률심판 제청신청을 통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냈다. 집회가 서울에서 있는데 참가자들이 서울에 올라오지 못하게 원천봉쇄하던 것도 손해배상청구를 해서 이겼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차벽으로 둘러싸 시청 앞 광장을 못 쓰게 했을 때도 위헌 판결을 끌어냈다. 그 밖에 형법상 명예훼손 등 표현 행위에 관련된 사건도 많이 맡았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보니 영화계와 자연스럽게 연이 생긴 것 같다. =인권운동사랑방이라든지 천주교인권위원회, 참여연대 등과 모여서 ‘표현의 자유 연대’를 만들었다. 정기적으로 포럼을 연다든지 보고서를 만드는 일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는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이 공모제로 전환됐는데 응모한 분들 중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로 탈락했던 분들이 많다. 그 문제와 관련한 행정소송을 맡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특히 의미를 두는 사건은. =모든 사건이 다 의미있어서 고르기 힘들다. 최근 사건을 떠올려 보자면, 2∼3주 전에 코오롱에서 해고당해 파업 중인 노조원들이 청와대 항의방문 집회를 청운동 동사무소에서 진행한 적이 있다. 그 맞은편 새마을금고에 플래카드를 걸었는데 경찰이 공동주거침입으로 기소를 하더라. 옥상에 들어가서 플래카드 내린 건 사실이니까 피고인들 본인들이 지레 포기한 사건이었다. 나도 별 생각없이 건물 관리자를 불러서 물어봤는데 그가 뜻밖의 정보를 줬다. 평상시엔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는 건물인데 그날따라 경찰의 요구로 문을 닫아놓은 것이라고 했다. 주거침입은 주거의 평온을 위협하는 경우에만 성립이 되는데, 경찰이 요구해서 문을 닫은 건 사회안전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결국 주거의 평온이 훼손된 게 없는 셈이니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지난주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방했다고 벌금 250만원을 선고받은 공무원을 변호했다. 선거법 위반으로 벌금 100만원 이상이면 공무원직을 상실하게 되는데 항소심에서 80만원으로 벌금을 줄였다. 그분이 너무 고마워해서 무척 보람을 느꼈다.

-앞으로도 쉴 틈이 없겠다. =요즘은 국정원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하고 다닌다. 물론 국정원을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다. (웃음) 오늘의 유머 사이트 운영자를 대리해 국정원을 고소 고발한 적이 있다. 국정원을 추적하다보니 여러 가지를 알게 돼서 표창원 교수와 전국을 순회하며 강연을 다닌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이 잘 규명돼서 재발을 방지할 수 있게 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씨네21>과 너무 상관없는 얘기만 하는 게 아닌지. (웃음) 전공이 표현의 자유라고 얘기하고 다닐 정도로 표현의 자유에 대해선 여전히 관심이 많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한 제도 개선에 관해 민변 차원에서 포럼도 열 예정이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떤 제도들이 필요한가를 논의하는 교수 모임도 있다. 좋은 분들과 많이 엮여서 싱크탱크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단체나 조직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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