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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픔을 생생히 증언하다 <페인리스>
김보연 2013-08-07

1931년의 스페인. 고통을 못 느끼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자기 몸에 불을 붙이거나 서로 손톱을 떼어내며 장난을 치고, 배가 고프면 자기 살을 뜯어먹는다. 사람들에게 공포를 일으키는 아이들은 결국 수용소에 격리당한다. 오직 홀스만 박사만이 아이들에게 ‘고통’을 가르치며 이들을 다시 사회로 돌려보내려 하지만 내전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정세 때문에 실패하고 만다. 한편 현재의 스페인에서 살고 있는 다비드(알렉스 브렌데뮬)는 백혈병을 고치기 위해 부모에게 골수 이식을 받기로 한다. 그러나 부모는 다비드가 입양아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려주고, 다비드는 자신의 과거와 친부모를 찾기 위해 경찰이었던 아버지가 일했던 감옥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과 스페인의 역사에 대한 충격적인 진실과 마주한다.

<페인리스>는 공포효과를 전시하는 호러영화라기보다는 스페인 내전과 그 뒤 이어진 프랑코 정권의 악명 높은 독재를 그린 역사 미스터리물에 가깝다. 고통을 못 느끼는 아이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이미지는 그 자체로 충격적이지만 영화는 ‘통각상실증’을 단순한 장르적 쾌감을 위해 소비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극단적인 좌우대립과 독재정권의 잔혹함에 대한 알레고리로 과감하게 풀어낸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거의 70년에 걸친 긴 사연을 응축하다보니 서사 진행이 불친절한 면이 있지만 영화는 그 간격을 장르적 상상력과 거기서 만들어지는 강렬한 파토스로 채우며 이야기를 밀고 나간다. 특히 여전히 끝나지 않은 과거와 현재의 갈등이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충돌하는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공포가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상처에 대한 슬픔의 정서를 빚어낸다. 어떤 아픔도 못 느끼는 존재가 역설적으로 시대의 아픔을 생생히 증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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