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mix&talk
[김병우] 끝까지 속도감 넘치게

<더 테러 라이브> 김병우 감독

한직으로 물러난 방송계의 유명 앵커 윤영화(하정우)가 테러범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생방송의 이슈로 삼아 자신의 위상을 복구하려다가 도리어 그 테러사건의 중심으로 휩쓸리고 만다. 주인공은 정해진 장소를 벗어날 수 없으며 영화 속 시간은 거의 실시간에 맞춰 앞으로 달려간다. <더 테러 라이브>의 내용과 형식이다. 생전 처음 보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 장점이 있다면, 그건 적당한 기획 아이디어만으로는 돌파되지 않았을 지점들을 돌파해내는 창작자의 특별한 뚝심과 고집에 있다. 게다가 그걸 해낸 이가 이제 막 상업영화에 발을 뗀 경우라면, 그 사람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테러 라이브>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병우 감독을 만난 이유다.

-뉴스 속보들을 보면서 <더 테러 라이브>를 떠올렸다고 밝힌 바 있다. 아이디어 구축 과정을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준다면. =그 일화는 사실 일부분이라고 말해야 할 거다. 크게 본다면, 이 영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재미있을까 하는 질문이 먼저 있었다. 내가 가진 깜냥에 그렇게 보인 거겠지만, 한국의 스릴러들이 좀 고루하고 정해진 것을 답습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어쨌든 신인 입장에서 신인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각오를 따로 써놓기도 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기 전에 그걸 오랜만에 읽어봤는데 여하튼 영화를 재미있게 만든다는 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와 같은 근원적인 고민들이 거기 적혀 있더라. 가령 관객이 픽션인 이 영화를 어떻게 논픽션 같은 느낌으로까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 것인가와 같은 문제. 그런 고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박진감 넘치는 현장감을 가진 영화를 추구하게 된 것 같다.

-영화의 계기가 된 특정한 속보 경험은 없었던 건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속보가 계기가 되긴 했다. 그 밖에도 천안함 사건이나 이런저런 굵직한 속보들도 주목해서 봤고. 그러면서 생각한 거다. 집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현장감이 느껴지는데 관객을 저 속보 현장에 데리고 간다면 긴장감이 더하지 않을까 하고. 그리고 사실 이 영화는 원래 준비하고 있던 다른 시나리오의 초반부 10분 정도에 해당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시나리오가 너무 지지부진해서 뒤 장면을 통째로 버리고 앞 장면 10분만을 갖고 확장한 것이다.

-테러의 대상이 마포대교다. =여의도를 관통하는 제일 큰 다리다. 여의도는 정치, 금융, 언론의 중심지다. 그리고 한강 다리 중에는 그게 제일 크다. 일종의 쌍둥이 다리라고 알고 있다. 처음에 하나를 짓고 나중에 보수하여 하나를 더 붙인 것이라고. 그런 정황들이 영화 속 내용과 연관되었다(앵커 윤영화가 있는 여의도 방송국에서는 마포대교가 내려다보인다. 또한 테러범은 마포대교 보수 공사를 하던 도중 사고로 추락사한 인부들에 대한 대통령의 국민적 사과를 요구한다.-편집자). 한편으로는 연상 작용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성수대교 붕괴 말이다.

-그렇다면 마포대교 보수 공사 도중 추락사한 일용 노동자라는 소재는 마포대교 설정 이후에 떠오른 것인가. =그렇다. 그러면서 뭔가 그 건설 노동자들과 연관된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나 드러나는 이야기지만, 여기에는 계층이나 세대 같은 문제도 좀 관계되어 있다.

-두 가지 참조물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 <폰부스>, 미국 드라마 <24시>. =그 두편만 있었던 건 아니다. 컨셉과 느낌을 잡을 때 <플라이트 93>을 많이 참고했다. <클로버필드>도 있었고. 고전영화로는 <이창> <12명의 성난 사람들>도 있었다.

-윤영화라는 캐릭터가 중심이며 그의 일인극에 가깝다. 당연하게도 어떤 배우가 그 역할을 하느냐가 중요했을 것이다. 하정우가 윤영화 역을 연기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그걸 쓰는 작가의 성향이나 성격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그러니 시나리오상에서는 내가 봐도 윤영화는 그렇게 재미있어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너스레를 떤다든가 하는 면모도 없었고. 하정우가 투입되고 나서 캐릭터가 재해석됐다. 윤영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부분인 영화다보니 배우가 결정되면서 영화 전체의 흐름을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초반부에 윤영화는 약간 건들건들하고 너스레를 떤다. 그런데 그게 좋아 보였다. 처음부터 빡빡하면 좀 부대낄 수 있으니까.

-촬영은 여러 대의 카메라로 했다고 들었다. =총 다섯대로 동시에 찍었다. 두대는 영화에서 보이는 방송 카메라 시점이고, 남은 카메라 세대로 이것저것 찍었다. 이 영화는 잘 짜인 미장센이나 앵글이 중요한 영화가 아니라 현장감을 살리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영화 전체를 23개의 챕터로 나눈 다음 챕터마다 통으로 영화 시간순서를 따라 찍어나갔다. 가령 영화 초반부 장면인, 윤영화가 범인의 전화를 받고 난 뒤 마포대교가 터지고 윤영화가 창밖을 보는 데까지를 한번에 통으로 찍었다. 문제는 장소가 좁고 카메라가 많다보니 카메라가 서로 찍힐 위험이 있어서 그걸 피해야 하는 일이었다. (웃음) 물론 이렇게 한 이유는 배우의 연기의 리듬을 끊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배우로서는 자신이 연극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도 있었을 거다.

-일반적인 방식인 신, 시퀀스별로 영화를 나누지 않고 23개의 챕터로 나눈 이유는 뭔가. =전체적인 맥락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던 것 같다. 글의 문맥을 나누듯이 연쇄되는 사건의 포인트를 따라 그렇게 나누었다. 마포대교 폭파, 라디오 방송 재개, 경찰청장 등장하는 식으로. 그 밖에도 촬영감독에게는 슈팅 매뉴얼이라는 걸 따로 줬다. 챕터마다 어떤 점을 염두에 두고 찍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주로 카메라 움직임이나 화면의 질감에 관련된 부분들이었다. 이 영화의 경우 일단 카메라가 돌아가고 나면 많은 부분을 촬영감독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므로 감독인 나로서는 슛 들어가기 전에 최대한 체크하고 공유하는 것이 중요했다.

-하정우에게 윤영화의 감정 변화 곡선이 그려진 심리 그래프를 그려주었다고 들었다. =독특한 방식이다. 그 심리 그래프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나. 사실 그 점을 물어볼 것 같아서 여기 가져왔다. (그래프가 그려진 A4종이 한장을 보여주며) 필요하면 인터뷰가 끝난 뒤 메일로 보내주겠다.

<더 테러 라이브> 촬영현장에서 하정우와 함께.

-일단 이 그래프의 용도를 말로 설명한다면. =무엇보다 윤영화의 감정의 콘티뉴이티를 이렇게 한장으로 요약해서 정리해놓는 게 필요했다. 게다가 윤영화는 영화에서 계속 방송 중인 상태가 아닌가. 그러니까 본인의 의사를 마음대로 표출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사건들이 계속 터진다고 해도 방송 중이기 때문에 치솟아 올랐던 감정을 다시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다.

-연쇄되는 사건을 대하는 주인공의 급박한 감정적 반응 그래프라는 말로도 이해된다. =그럴 수 있다. 뉴스나 속보 보면 당황스러운 일이 얼마나 많이 벌어지나. 그때마다 앵커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면 흥미롭다. 속보는 아니지만, <100분 토론-광우병 편>에 전화를 걸어왔던 시청자 ‘일산의 최 선생님’이라고 알고 있나.

-기억한다. =<더 테러 라이브>의 박노규 캐릭터를 만드는 데 있어 내게 영향을 준 바가 있다(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광우병 논란이 한창이던 때 <100분 토론>에 전화를 건 시청자, 일명 ‘일산의 최 선생님’은 쇠고기를 삶아먹으면 광우병을 피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여 사회자와 패널들을 당황케 했다.-편집자).

-그래프에 대한 배우의 반응은 어땠나. =본인도 영화를 적잖이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걸 받아본 건 처음이라고 하더라. (웃음) 많이 참고해준 것 같아 고마웠다.

-처음 구상과 다르게 영화를 찍으며 달라진 부분도 있나. =후반부로 갈수록 좀 틀어진 것들이 있다. 이런저런 개연성을 놓친 부분이 있는건데, 어찌보면 실수이고 또 어찌보면 다 챙겨서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령 범인이 밝혀지는 단계가 그렇다. 이 영화가 추리영화는 아니므로 세세한 개연성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고 보았다. 그보다 끝까지 놓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 건 속도감이었다.

-영화에서 테러범은 대통령의 사과를 줄기차게 요구한다. 사실 이 부분은 동어반복이라는 인상을 좀 받았다. 하지만 관객이 이 점을 그냥 지나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강력한 의사 표시라는 인상도 함께 받았다. 마지막 장면과도 연관이 있다. =그에 관련해서는 영화를 다 본 관객이 판단해주면 좋겠다.

-데뷔작 <리튼>을 만든 지 6년 만에 만든 영화다. 영화에 대한 생각이 변하고 또 변하지 않았나. =상업영화로서의 데뷔작은 <리튼>이 아니라 <더 테러 라이브>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리튼>은 대학 졸업영화였으니까. 영화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쉽게 찍을 수 없는 무엇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꾸준히 다른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는 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리튼>과 <더 테러 라이브>는 많이 다른 영화다. <리튼>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본 경우고 <더 테러 라이브>는 어떻게 하면 대중적인 재미를 구할 수 있을까를 염두에 두고 해본 경우다.

-신인 감독들에게 종종 하는 질문이다. 조건이나 환경의 제약이 전혀 없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나. =건담 시리즈 혹은 우주여행에 관한 것. 아무래도 그 경우라면 SF쪽인 것 같다.

-<설국열차>와 같은 시기에 개봉하는 것을 두고 말들이 넘치고 있다.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가 맞붙는다는 표현이 많던데, 사실 우리 영화 편집기사가 <설국열차> 편집도 했다. 되게 난처해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좋다고 말할 수밖에.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들을 보면서 영화를 공부한 사람인데, 그의 영화와 같은 시기에 걸리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인터뷰가 있었던 그날 저녁, 고맙게도 김병우 감독은 약속한 메일을 보내주었다. 첨부파일에는‘더 테러 라이브 그래프’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찬찬히 보니 이제야 그 용도가 한눈에 보인다. 인물의 감정선, 타임라인, 주요 사건 등이 한장의 종이에 명료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 <더 테러 라이브>에 관심있는 독자들이라면 흥미를 가질 것 같아, 영화의 극히 초반부에 해당하는 일부분을 여기 실었다. 김병우 감독은 이것이 “이 영화에 필요한 방식”이었다고 말해주었다. 자기의 영화에 필요한 자기의 방식이 무엇인지 아는 감독은 유능한 감독이다. 왜냐하면 그는 또 다른 영화에서는 또 다른 자기만의 방식을 찾아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신인 감독 김병우에게 기대를 걸게 되는 이유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