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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오! 마돈나] 이탈리아의 이미지를 바꾸다

모니카 비티 Monica Vitti

이탈리아 여배우에게 관객이 제일 먼저 기대하는 것은 관능미다. 이것은 이탈리아 관객이든 전세계 관객이든 비슷한 것 같다. 이탈리아영화는 소위 ‘마조라타’ (Maggiorata, 큰 몸집이란 뜻)라는 독특한 스타시스템을 개발했다. 지나 롤로브리지다, 소피아 소렌처럼 ‘여신’의 몸매를 가진 배우로 흥행을 노리는 정책이다. 모니카 비티는 육체파 배우들이 경쟁할 때인 1950년대에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짐작하겠지만, 데뷔 시절 비티는 거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그런데 그는 이탈리아 여배우는 물론, 이탈리아 여성의 정체성까지 변화시키는 또 다른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관능미 시대에 피어난 교양미

흔히들 이탈리아 여성은 섹시하고, 활달하고, 강인하고, 시끄럽다고 말한다. 고정관념이란 게 근거 없이 생기는 게 아니니, 대부분 사실일 것이다. 영화적으로 보면, 세계적인 스타인 소피아 로렌의 영향이 컸다. 로렌은 ‘국민배우’인데, 그녀가 보여준 스크린 이미지가 대개 이탈리아 여성의 정체성으로 각인돼 있다. 남성들을 압도하는 적극성, 강인함, 큰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도발적인 몸매를 갖고 있다. 로렌같은 육체파 배우들을 보고 있으면, 보티첼리가 괜히 ‘비너스’를 그린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비너스 같은 여성들이 많다는 방증일테다.

이탈리아 여성에 대한 그런 이미지는 고정관 념이 됐는데, 모니카 비티의 모습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육체파가 아니라 약간 마른 몸에 지적인 매력을 갖고 있고, 말도 별로 없고 조용하다. 게다가 온몸에 힘이 쏙 빠져 있어, 섹시하기보다는 모딜리아니의 그림 속 여성들처럼 나른한 권태가 느껴진다. 좀 과장하자면 다른 스타들이 몸 하나로 관객의 혼을 뺄 때, 비티는 심심해 보이는 이미지로 승산 없어 보이는 경쟁 대열에 끼어든 것이다.

비티를 스타로 만든 데는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의 만남이 결정적이었다. 비티는 연극배우로, 또 성우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안토니오니의 <외침>(1957)에서 주유소 안주인의 목소리를 더빙하며 감독과 처음 만났다. 안토니오니는 45살, 비티는 26살이었다. 안토니오니는 바로 다음 영화인 <정사>(1960)에 신인인 비티를 주연으로 캐스팅한다. 바로 이 영화로 안토니오니는 세계 영화계의 거장으로, 또 비티는 ‘소외의 페르소나’로 영원히 영화사에 남게 된다. 두 사람은 안토니오니가 <욕망>(1966)을 만들기 위해 런던으로 떠날 때까지 약 7년간 연인으로 지냈다.

<정사>는 이탈리아의 일반적인 영화와는 너무 다른 것이었다. 당시는 네오리얼리즘이 밀려났고, 이탈리아는 ‘이탈리아식 코미디’로 세계 영화계에 영향력을 미칠 때였다. 비토리오 데 시카의 <어제, 오늘, 내일>(1963)처럼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와 소피아 로렌이 함께 나와 웃기고 관능성을 전시하며 동시에 이탈리아사회의 모순을 적시하는 작품들로 재미를 봤다. 네오리얼리즘의 비판적인 성격 때문에, 이탈리아 정부는 지원금으로 영화계를 견제했는데, 이때 영화인들이 제작의 새로운 돌파구로 찾은 게 이탈리아식 코미디다. 그런데 <정사>는 전혀 웃기지도 않고, 또 기대했던 육체파 배우도 없고, 무엇보다도 난해했다. 비관습적인 내러티브 형식 때문에 인과관계의 논리를 찾는 게 무의미해졌다. 과거에는 영화에서 인물들은 행동하고, 관객은 바라보면 됐는데, 여기서는 인물들이 행동하기보다는 생각하는 바람에 관객도 함께 생각해야 하는 시간이 대단히 길어졌다. 흔히 말해 들뢰즈의 ‘시간-이미지’가 압도하는 작품을 목격한 것이다.

이런 막연함, 난해함, 혼돈의 현기증은 모니카 비티의 얼굴에 그대로 새겨졌다. 순식간에 주위를 고요와 혼돈에 빠뜨리는 복잡한 연기는 전례가 없던 것이었다. 혹자는 로베르 브레송의 ‘모델’들, 혹은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의 배우들과 비교하기도 했다. 모니카 비티의 연기에는 분명 그런 엄격함의 인공성이 강했지만, 비교되는 감독들의 배우들과는 다른 자유분방함의 파격도 있었다.

안토니오니의 ‘소외의 페르소나’

비티는 안토니오니의 소위 ‘소외 4부작’인 <정사>, <밤>(1961), <일식>(1962), <붉은 사막>(1964)에서 연달아 주연을 맡으며 이탈리아의 새로운 스타로 부상했다. 금발에 외로운 분위기, 마른 몸매 등은 지중해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성질이었다. 당연한 일인데, 소피아 로렌이 이탈리아 여성을 대표하는 사실에 불쾌감을 느끼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육체적으로 너무 과장됐다는 이유다. 반면에 비티는 보편적인 교양을 갖춘 여성의 이미지로 수용됐다. 모니카 비티는 육체파로 각인돼 있던 이탈리아 여성의 정체성에 변화를 몰고 왔던 것이다.

<밤>에서 헤르만 브로흐의 난해한 소설 <몽유병자들>을 읽고 있는 예민한 모습, <일식>에서 베로나 공항의 아무도 없는 활주로 주변에 홀로 서서 무한한 안도감을 느끼는 모습, <붉은 사막>에서 오염된 검은 진창을 정신없이 걸어가는 도입부의 황망한 모습 등은 모니카 비티의 소외의 인장(印章)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모니카 비티가 아닌 다른 배우가 나왔을 때, 어떤 결과를 남겼을까를 상상하면 배우의 중요함을 다시 한번 인식하게 된다. 안토니오니가 미국에서 만든 <자브리스키 포인트>(1970)가 외면받았을 때, 만약 모니카 비티같은 배우가 나왔으면 어땠을까 같은 아쉬움이 많이 제기되기도 했다. 곧 안토니오니의 ‘소외의 걸작’들도 비티를 잃으니, 생명력을 잃어갔던 셈이다.

안토니오니는 <욕망>의 영국 배우인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와 만나며, 비티와 헤어졌다. 사실 그때 비티의 처지가 좀 안돼 보일 때였다. 혼자 남은 비티가 새로 뚫은 배우의 길이 이탈리아식 코미디에 출연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관능성을 내세우는 배우들과는 달랐다. 에토레 스콜라의 <질투의 드라마>(1970)가 대표적인데, 비티가 함께 일한 감독들이 주로 좌파였듯, 그녀도 좌파였고, 영화 속에서도 붉은 깃발 아래서 좌충우돌 웃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관능의 코미디가 아니라 정치의 코미디였다. 국민배우인 로렌은 거부가 된 뒤 탈세 등으로 법정에 서기도 했고, 1990년대 이후부터는 스위스의 제네바에 살고 있다. 비티는 로마에 살며 최근까지 진보주의자들의 시위에 한명의 평범한 지지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2년 전, 비티는 자신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밝힌 뒤, 안타깝게도 공개적인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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