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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광기와 마주하다 <감기>
주성철 2013-08-14

‘천당 아래 분당’이라 불렸던 분당에 최악의 바이러스가 퍼진다. 밀입국 노동자들을 분당으로 실어 나른 남자가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하고, 그로부터 채 24시간이 되지 않아 분당의 모든 병원에서 동일한 증상을 보이는 환자들이 속출한다. 정부는 국가재난사태를 발령, 급기야 도시 폐쇄라는 초유의 결정을 내린다. 한편, 구조대원 지구(장혁)는 지하철 공사장 함몰 사건으로 위기에 처한 감염내과 전문의 인해(수애)를 구하면서 그녀의 딸 미르(박민하)까지 알게 된다. 지구는 폐쇄령이 내려진 도시에서 바이러스 대책을 세우느라 바쁜 인해를 대신해 미르를 돌보면서, 혼란에 빠진 시민들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격리된 분당 시민과 감염의심자들은 정부의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며 거대한 시위대로 변모해 서울로 향한다.

공교롭게도 정유정 작가가 <7년의 밤> 이후 최근 발표한 장편 <28>도 전염병을 소재로 삼고 있다. 서울 인근 인구 39만의 도시 ‘화양’에 정체불명의 전염병이 발생하고, 개와 사람에게 공통으로 전염된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눈에 띄는 개들을 닥치는 대로 살처분한다. <감기>는 거기서 더 나아가 인간을 대규모로 살처분하는 극단적 광기와 마주한다. 강한 종(種)만 살아남는 약육강식의 생리, 어떻게 보면 김성수 감독이 지금껏 그려온 적자생존의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다. 그 과정에서 장혁과 수애가 보여주는 엇갈리는 인간애의 모습에서 개연성의 결여가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적 재난의 풍경과 사뭇 대비되는, 늘 필요한 장소와 타이밍에 주변 인물들까지 거짓말처럼 한데 모였다 사라진다. 물론 그것은 지구가 맞닥뜨리는 거대한 인간 살처분의 광경으로 어렵사리 수렴된다. 어쩌면 김성수 감독은 그 장면 하나만으로 기승전결이 제자리를 찾는 마술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 광경은 영화 속 어떤 사건이나 캐릭터보다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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