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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보고] 아름다운 꿈인가, 군국주의의 도구인가
이화정 2013-08-15

논란의 중심 미야자키 하야오 신작 <바람이 분다> 미리 보기

단언컨대 지브리 역사상 가장 문제적 인물이 등장했다. <바람이 분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쓰비시 중공업에 근무했던 제로센 전투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의 삶을 그린다. <벼랑 위의 포뇨>(2008)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5년 만의 연출작이자, 그가 처음으로 그린 실존 인물의 일대기이다. 더구나 이번엔 소녀도 소년도 정령도 요정도 아닌 연애도 취직도 결혼도 하는 어른 사람(!)이 주연이다. 판타지의 세계가 아닌 현실의 땅에 단단히 발을 붙인 인물. 호리코시 지로는 지브리 캐릭터에 부는 변화의 바람 같은 존재가 아닐까.

7월26일 영화의 배급사인 도쿄 도호 스튜디오에서 <바람이 분다>의 시사회가 열렸다. 앞서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발행하는 월간 소책자 <열풍> 7월호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아베 총리의 헌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장문의 글을 발표해 화제를 모은 참이었다. 환경보호론자로서 그의 소신이야 익히 알지만, 정치적으로 그가 이토록 적극적인 입장을 표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인물 호리코시 지로를 다룬 <바람이 분다>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고조될 수밖에 없었다. 현지 시사회는 이토록 민감한 사안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적극적 의사 표명의 자리처럼 비쳤다. 60여명의 기자는 긴장했고, 126분의 시사는 팽팽했다.

전작들과 다른 길 위에 선 미야자키

<바람이 분다>는 전투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1903~82)의 삶을 뼈대로, 동시대 유명 소설가 호리 다쓰오(1904~53)의 자전적 소설 속 로맨스를 끌어와 하나로 엮은 이야기다. 관동대지진, 경제공황, 제2차 세계대전이 휩쓴 혹독한 시대를 겪으면서도 호리코시 지로는 비행기를 만들겠다는 열망 하나로 온힘을 다해 매진하는 인물이다. 호리코시 지로는 관동대지진 때 도움을 준 인연으로 부잣집 딸 나오코와 사랑을 하고 부부가 되는데, 나오코는 폐결핵을 앓으면서도 끝까지 사랑을 지키는 강단있는 여성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바람이 분다>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모노노케 히메> <이웃집 토토로> <벼랑 위의 포뇨>에서 두드러진 환경친화론적인 관점보다 <미래소년 코난>이나 <붉은 돼지> <천공의 성 라퓨타>를 통해 하야오가 보여준 비행에 대한 유별난 사랑이 더 눈에 띄는 작품이다. 도쿄의 지브리 미술관에서 하야오가 수집한 비행 관련 제품들을 보면서, 이렇게 마니아에 가까운 집요한 성향이 작품을 풍성하게 했구나 싶어 혀를 내두른 기억이 난다. 실제로 하야오의 아버지가 비행기 군수공장의 공장장이었던 점, 하야오가 어릴 때부터 비행기를 동경해 설계도를 수집하고 비행기를 사고 싶어 한 점, 지브리 스튜디오의 지브리가 이탈리아의 비행기 설계사 지아니 카프로니(Gianni Caproni)가 만든 비행기 이름 ‘기블리’(Ghibli)에서 따온 이름이기도 하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호리코시 지로에게는 지독한 일중독자에 완벽주의자로 애니메이션에 평생을 바친 하야오의 모습이 겹쳐지기도 한다. 호리코시 지로는 어릴 때부터 외국 비행 잡지를 사전을 찾아가며 탐독하고, (비행사가 될 생각으로) 근시를 고치기 위해 지붕 위에 올라가 무작정 밤하늘을 바라보는 순진한 소년이다. 커서 비행기 설계사가 되면서 그의 ‘병’은 더 깊어지는데, 남들 밥 먹을 때 반찬으로 나온 고등어의 뼈를 살피며 비행기의 동체 디자인을 고심하는 지독한 학구파이기도 하다. 그가 한손으로 폐결핵으로 몸져누운 아내의 손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계산자를 놓지 않고 담배를 피우며 설계도를 그리는 장면은 호리코시 지로의 캐릭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문제는 그에게는 서구에 뒤처진 일본의 비행산업을 일굴 도전의 영역이자, ‘아름다운 꿈의 결정체’인 비행기가 당시 진주만 공습과 가미카제 특공대의 전투기로 쓰이며 무고한 희생자를 양산한 무시무시한 살상용 무기로 사용된 점이다. 비행기를 향한 호리코시 지로의 꿈은 충분히 묘사되지만, 전투기 무덤의 참상을 보고 돼지인간이 되기로 결심한 <붉은 돼지>의 전투기 조종사 포르코가 가졌던 양심이나 정의에 대한 갈망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전투 메카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만 따지자면, 호리코시 지로의 열정은 오히려 <미래소년 코난>의 레프카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무스카 같은 하야오 영화 속 악당이 보여주는 그것에 더 가까워 보일 지경이다. 하야오는 오히려 주변에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하게 제작에만 몰두하는 호리코시 지로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대변하고 나선다. 그는 폴 발레리의 시구 ‘바람이 분다, 그래도 살아야겠다’에서 따온 제목의 결기에 수렴되는 인물이다(이 영화에서 바람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관동대지진이라는 자연재해의 바람이 있고, 호리코시 지로가 나오코와 만날 때 그들의 모자를 날아가게 한 로맨틱한 바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비행기 대신 전투기를 개발해야 하는 설계사는 시대의 풍파를 감내해야 한다).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다짐은 어떤 의미일까. 이 부분에 대한 실질적 대답은 호리코시 지로가 자신의 우상인 비행기 설계사 지아니 카프로니 백작을 만나는 몇 차례의 꿈 장면에서 들어야 한다. 호리코시 지로의 꿈에 나타난 카프로니 백작은 ‘이것은 나의 꿈’이며, 그 꿈속에 호리코시 지로가 들어왔다는 ‘다크 나이트’적인 꿈 이론을 펼친다.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창공을 가로지르는 이탈리아 비행기의 멋진 모습은 하야오의 전작에서 익히 보아온 아름다운 창공의 장면 그대로다. 카프리니 백작은 호리코시 지로의 유년기부터 그가 흔들리고 좌절하고 힘들 때마다 그의 꿈에 나타나는데, “비행기는 전쟁의 도구도 장사의 수단도 아닌 그 자체가 아름다운 꿈이다”라는 호리코시 지로를 합리화해줄 조언들을 남긴다.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의 기술적 집약체이자 가장 스펙터클한 장면은 비행과 활공의 이미지가 아닌, 관동대지진으로 땅이 들썩이는 가운데 공포와 혼돈이 교차되는 장면이다. 비행기가 핵심 소재이자 호리코시 지로가 제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인물임에도 영화에 이렇다 할 전투 장면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전쟁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음으로써 논란을 피하고자 하는 하야오의 적극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호리코시 지로에 대한 문제제기가 단순히 국가간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문제일지 9월 한국 개봉까지 두고봐야 할 것이다. 지브리의 대표작인 다카하타 이사오의 <반딧불이의 무덤>이 전쟁의 참상을 그리면서,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그린 점 때문에 지탄받은 것을 상기해보자. 지난 7월20일 일본에서 개봉한 <바람이 분다>는 360만명의 관객을 동원, 3주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8월4일 기준)하며, 지브리사의 작품이 늘 그랬듯 일본 여름 극장가의 승자로 자리하고 있다.

물론 스토리 전개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도 더러 있으며, 성인물을 표방하면서도 여전히 어른의 고민이 아닌 어린이의 단순한 관점에 머문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해 캐스팅한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목소리가 외려 부자연스럽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패전기념일(우리에겐 광복절)을 앞두고 ‘전쟁 희생자를 위로하는’ 분위기와 맞물려 당분간 흥행세는 꺾이지 않을 전망이다. 거기에 올해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점도 관심을 더하고 있다. 어쨌건 편의점에서 프로모션 중인 호시코리 지로의 캐릭터 상품을 보자니 포뇨 인형을 볼 때의 귀여워 어쩔 줄 모르던 마음 대신, 복잡한 기분이 드는 건 피할 수 없다. 호리코시 지로의 꿈을 부디 순수하게 받아들여달라는 하야오의 메시지는, 영화의 완성도와 별개로 꽤 어려운 숙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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