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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죽을 때까지 오로라
이화정 사진 백종헌 2013-08-21

<신의 영혼 오로라> 펴낸 권오철 작가

2012년 8월13일. 자그마치 130년 만에 볼 수 있다는 페르세우스 유성우 관측 소식으로 모두가 들떴다. 8월12일 저녁에 만난 권오철 작가의 휴대폰은 계속해서 울려댔다. 몇시부터 볼 수 있는지 혹은 어디로 가야 유성우를 볼 수 있는지를 문의하는, 방송국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그의 공식적 직업은 천체사진가다. 전세계 천체사진가모임인 TWAN(The World At Night)의 일원인 그는 밤하늘의 빛을 담는 데는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다. 지난 7월21일 SBS 스페셜에서 방영된 <오로라 헌터>에서는 권오철 작가의 특별한 직업이 소개되기도 했다. 캐나다 옐로나이프 오로라 여행기 <신의 영혼 오로라>의 저자이기도 한 권오철 작가를 만났다.

-방송 덕분에 부쩍 바빠졌겠다. =책을 출간하고 나서 알았다. 사람들이 오로라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는 걸. 요즘은 책 관련해서 일주일에 두번 ‘오로라 강연회’도 열고 있는데 늘 정원 초과다. 200명 넘게 사인을 받아 가서 깜짝 놀랐다. (웃음)

-천체사진가라니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건가. =패션 사진,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수요가 많질 않아 생소하겠지만 천체를 찍는 사진가라고 보면 된다. 영어 사전에도 ‘애스트로포토그래퍼’(astrophotographer)라는 말이 있다. 필름 시절엔 마니아 중심으로 소그룹만 찍었지만 디지털화되면서 접근이 쉬워졌다. 요즘이야 뭐든 관심있으면 한번씩 찍어볼 수 있는 시대이지 않나.

-서울대학교 공대를 졸업했고, 벤처기업과 대기업에서 일했다. 천체사진가가 된 계기를 말해달라. =대학 때부터 별이 좋아 별 사진을 계속 찍었었다. 사진이 워낙 밥이 안되니 하려다 돌아오고 하려다 돌아오긴 했지만. 그러다 캐논과 캐나다 관광청에서 캐나다 옐로나이프(북유럽과 더불어 대표적인 오로라 체험지)로 오로라 원정대 행사를 진행하는데, 천체사진 전문가로 따라가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때가 2009년이었다. 그길로 전문가의 길을 걷고자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하던 직업을 그만두고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잊을 만큼 오로라의 경험이 강렬했나. =그때 본 오로라는 레벨로 따지자면 ‘중’ 정도였다.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 그랬던지 저게 오로라구나, 괜찮네 정도의 감흥만 받았다. 정작 나를 움직인 건 그때 같이 동행한 사람들이었다. 회사 다니는 사람이 나밖에 없더라. 블로거, 만화가, 사진가들이었는데 월급이 없어도 다들 먹고살더라. 그것도 각자 방식대로 행복하게 말이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12월9일에 갔는데 그달 말일자로 사표를 냈다. 22살 때 대우조선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때가 36살이었다. 50살 되면 명예퇴직을 준비해야 하는 대기업을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그전부터 생각은 많이 했었다.

-월급 없는 생활은 잘 꾸려가고 있나. =천체사진가로 살아가는 불편은 한 가지밖에 없다. 배가 고프다는 것. 내 블로그(www.astrophoto.kr) 제목이 ‘사진가로 살아남기’다. 매일 생존 한계선을 넘나들며 살지만 사람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지. (웃음) 올해도 아이슬란드에 촬영 갔다가 바다에 카메라 장비를 빠뜨려서 낭패를 겪었다. 6개월간 장비를 팔며 보릿고개를 버텼다. 다행히 책 고료가 들어와서 한숨 돌린 상태다. 광고 같은 경우 한번 팔면 한달은 먹고산다. ‘베가 넘버6’ 광고에서 이병헌이 눈을 감고 있다가 딱 뜰 때 나오는 별사진이 내 작품이다. 그런데 광고에서 별이 들어가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

-그간 오로라 체험을 얼마나 했는지 궁금하다. =캐나다 옐로나이프는 여섯번, 아이슬란드도 몇 차례 다녀왔다. 평균으로 따지면 해마다 두번씩은 간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는 게임이 안되는 거지. CF 촬영으로도 갔고 관광청 지원으로도 갔고, 오로라 여행사 프로그램 강사로도 갔다. 방송국 다큐멘터리 촬영 건으로 간 적도 있다. 경비를 만들려면 연계할 수 있는 일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이런 분야에 좋은 장비는 필수일 텐데,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싶을 정도의 투자가 아닐까 짐작된다. 어느 정도인가. =장비 사느라 허덕대면서 마누라 눈치 실컷 보는 직업이다. (웃음) 그래서 내가 살면서 잘한 일 두 가지에 하나는 천체사진가가 된 것, 또 하나는 아내를 만난 것이라는 걸 꼭 이야기하고 다닌다. 그래야 아내한테 안 혼난다. (웃음) 작업할 때 보통 4대의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카메라가 4대면 삼각대도 4대니까 그 무게가 엄청나다. 무게로 한 40kg 정도인데, 화물로 부치고 초과 수화물 비용을 내지 않게 나머지는 비행기에 악착같이 반입한다.

-놓칠 수 없는 광경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그간 찍은 오로라 사진의 분량은 어느 정도인가. =하드디스크를 박스로 주문한다. 집에 2테라 하드가 박스째 쌓여 있다. 돈 벌어서 하드디스크 값도 못 대는 거 같다. 과학관 같은 곳에 자료사진으로 팔리거나, 광고사진으로 팔리기를 기대하며 쌓여 있다. (웃음)

-정말 엄청난 오로라를 보게 될 경우엔 순수한 관찰자로서의 욕망과 그걸 담아야 하는 사진가로서의 욕심이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엔 뭘 택하나. =세팅이 된 상태라면 자동으로 카메라가 돌아가니 앉아서 보면 된다. 그런데 한번은 흐린 날이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오로라가 쏟아진 적이 있다. 그럴 땐 사진 찍을 정신이 없다. 짧은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 볼 건지 찍을 건지. 미련 없이 사진을 포기했다.

-또 언제 떠나나. =올 12월에 간다. 혜성과 오로라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때라 이번엔 그걸 찍으려고 한다. 아직 안 가본 데가 너무 많다.

-오로라 중독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그 매력을 말로 표현한다면 어떤 건가. =최근에 라디오에 출연해서 카타르시스라고 표현했는데, 그것보다는 훨씬 강렬한 체험이다. 본 사람들끼리 하는 말인데, 오르가슴을 맛보는 느낌이다. 365일 중 오로라 여행가는 60일을 빼곤 거의 300일을 집에만 있는데, 그때도 영상만 틀어놓고 가지 못해 배 아파하며 지낸다. 더 강한, 더 밝은 오로라를 찍어보고 싶다. 죽을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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