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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현재와 화려했던 과거 <블루 재스민>

뉴욕에서 상위 1%의 삶을 누리며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었던 재스민(케이트 블란쳇)은 어느 날 남편 할(알렉 볼드윈)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곧 이은 이혼에 파산까지 겪으며 모든 것을 잃게 된 그녀가 찾을 수 있는 곳이라고는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여동생 진저(샐리 호킨스) 뿐. 하지만 ‘루이비통’ 가방 하나만 들고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 흘러온 재스민과 그녀와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유전자’를 가진 진저와의 생활이 평탄할 리 없다. 모든 일들은 꼬여만 가고, 정신쇠약 증세가 점점 심해져 가는 재스민 앞에 때마침 구원 같은 남자 드와이트(피터 사스가드)가 나타나고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블루 재스민>은 2004년 <멜린다 앤 멜린다> 이후, 런던(<매치 포인트> <카산드라 드림> <환상의 그대>)을 거쳐 바르셀로나(<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와 파리(<미드나잇 인 파리>), 그리고 로마(<로마 위드 러브>)까지 이어졌던 긴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고향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우디 앨런의 신작이다. 우디 앨런은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재스민의 우울한 현재와 뉴욕에서의 화려했던 과거를 계속해서 교차편집하면서 두개의 지역, 두개의 시간의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시킨다. 대조를 이루는 시공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똑같은 샤넬 재킷을 입고 에르메스 버킨 백을 들고 프라다 선글라스를 낀) 재스민뿐이다. 마치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이 100년 전 과거의 파리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에 성공한 것처럼 <블루 재스민>에서의 재스민 역시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예상치 않게 불쑥 등장했다가 어느새 끝나버리는 재스민의 과거는 그래서인지 플래시백이라기보다 일종의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재스민을 과거로 돌려보낼 타임머신은 이 영화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영화 전체에서 느껴지는 멜랑콜리한 정서는 바로 이 때문이다.

<블루 재스민>의 한축이 멜랑콜리라면 또 다른 한축에는 재스민의 과거를 둘러싼 ‘비밀’과 이 비밀을 들키지 않으려는 재스민의 거짓말이 빚어내는 긴장감이 놓여 있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뉴욕에서의 과거는 <매치 포인트>나 <스쿠프>(혹은 <또 다른 여인>)의 방식으로,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현재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우디 앨런 스타일’인 <애니 홀>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어쩌면 <블루 재스민>은 자신이 구축한 ‘맨해튼’의 세계 속에 끊임없이 히치콕의 스릴러를, 그리고 베리만의 세계관을 변주하며 녹여내려 했던 우디 앨런의 오랜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이룬 작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블루 재스민>을 가장 빛나게 만드는 것은 재스민을 완벽하게 연기해낸 케이트 블란쳇일 것이다. 물론 드라마 <럭키 루이>의 ‘뉴요커’ 코미디언, 루이스 C. K.를 만나는 것도 이 영화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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