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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피카추] 우리 아빠가 고치라고 했단 말야

<관상>을 보다 성형에 대해 생각하다

<관상>

<닥터>

아빠는 내가 서른이 될 때까지 쌍꺼풀 수술을 하라고 졸랐다. 우리 아빠는 한참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 상고 3학년 시절, 수업 시간 내내 성냥개비로 눈꺼풀을 그어댄 끝에 홑꺼풀에서 쌍꺼풀로 다시 태어난 의지의 사나이다. 그래서인지 남의 외모에도 엄격해서 내가 스물을 넘긴 이후에는 립스틱이라도 바르지 않으면 밖에 못 나가게 했다. 다른 아빠들은 화장이 진하면 못 나가게 한다던데.

그래도 서러웠다, 내가 쌍꺼풀이 없는 게 누구 때문인데. 나는 항의했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아빠 눈에는 내가 심은하로 보여야 하는 거 아니야? 친아빠 맞아?” “… 그러니까 수술비는 아빠가 줄게.” 그러고 보니 여동생이 태어나자마자 아빠한테 처음 들었다는 말은 이런 거였다, 못생겼네. 우리 아빠 브라보, 키는 작지만 잘생겼지, 그리고 난 키만 닮았어.

<관상>을 보면서 나는 아빠만큼이나 거침없는 아버지를 만났다. 천재 관상가 김내경 선생님이 그와 한 핏줄이 맞나 싶게 잘생긴 아들에게 하는 막말, 너는 상(相)이 할아버지를 닮아서 벼슬하면 목이 달아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너는 얼굴 때문에 안된다는 소리다. 아, 부모가 아니라고 하면 아닌 거구나, 우리 아빠는 냉정한 게 아니라 그냥 객관적인 거였구나.

성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기생집에서도 드러난다. 내경은 “얼굴이 동그스름하니 예쁘장하지만 밋밋해서” 남자에게 인기가 없는 기생 코에 수박씨 하나를 붙여주는데, 그 기생은 나중에 점 하나를 박고 승승장구한다. 가만있어 보자, 얼굴이 동그스름하니 예쁘장하지만 남자에게 인기가 없다가 점 하나 붙이고 갑자기 치명적인 팜므파탈로 변신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맞다, 구은재! 점 하나 붙이고는 다른 여자가 됐다고 우긴다며 가루가 되도록 까인 드라마 <아내의 유혹>은 놀랍게도 관상학적인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 어쩐지 몹시 끌리더라니.

<미녀는 괴로워>

이처럼 성형은 쓸모가 많은데도 왠지 몹쓸 짓 취급을 받는다. 김창완이 파괴 본능을 지닌 성형외과 의사로 연기 변신을 시도한 괴작 영화 <닥터>를 보자(참고로, 변신한 김창완 때문에 괴작이 된 건 아니다). 그는 자기 취향에 맞춰 성형한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는 정신이 나가 온갖 미친 짓을 일삼는데, 그중 가장 경우 없는 짓은 이것이다. 싸구려 시술을 하고 와서 고쳐달라고 한다며 환자를 내쫓는 것. 그러잖아도 돈 내고 이 영화를 보는 자신에게 분노하고 있던 나는 다시 한번 분노했다. 이보시오 의사 선생, 그 아줌마라고 싸구려 시술을 하고 싶어서 했겠소. 성형이 화를 부르는 공포영화 <신데렐라>는 그보다 심하다. 애들이 조금 예뻐지고 싶다는데 그걸 그렇게 싸잡아서 욕하냐.

물론 <미녀는 괴로워>처럼 성형으로 열린 신세계를 찬양하는 영화도 있다. 하지만 그 영화의 결론도 결국엔, 얼굴이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예뻐야 여자지. 맞는 말이긴 하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처럼 모든 남자에게 여자의 마음만 보이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낳아준 아빠도 거부하는 외모를 반성하며 나는 필라테스 학원에 등록했다. 어느 날, 필라테스 강사는 투덜거렸다. 지방 분해 주사를 맞고 있는데 너무 아프다는 거였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결합해 아름다운 몸매를 가꿔주기 때문에 연예인들에게도 엄청나게 인기가 많은 필라테스라며! 그런 필라테스의 프로조차 시술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러니 타고난 그대로만 살지 않는다고 욕하지는 말자. 타고난 그대로 살고 있다며 아빠한테 욕먹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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