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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어놓은 감정의 경계 <사랑에 빠진 것처럼>

인생에 있어 사랑에 빠지는 데 적합한 ‘타이밍’이 있을까? 젊은 시절의 사랑은 풋풋하지만 경험이 없어 삐걱대고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서 늘 촉박하다. 노년의 사랑은 경험과 시간은 축적되어 있지만 자칫 경박하다는 소리를 들을까 그 시도조차 자제되거나 사소한 감정 표현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늘 사랑을 갈구하고 욕망하지만 어떤 사랑도 완벽한 타이밍을 갖추고 진행되는 법은 없는 듯하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늘 흥미진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카피하다>에서 골동품의 진품과 가품이 가진 아우라와 진짜 사랑과 가짜 사랑의 모호한 경계를 견주어 보여주었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이번 영화에서는 그와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결을 가진 사랑에 관한 고찰을 보여준다.

남자를 접대하는 바에서 일하는 아키코(다카나시 린)는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자 하는 남자 친구 노리아키(가세 료) 때문에 늘 불안하다. 게다가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대학생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는 그에게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터놓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아키코는 술집 주인으로부터 명망 있는 누군가를 만나보라는 제안을 집요하게 받지만 남자 친구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서 한사코 거절한다. 잠에 취해 실려간 그곳에서 아키코는 모교의 은퇴한 노교수 타카시(오쿠노 다다시)를 만나게 된다. 아르바이트와 시험 공부에 지친 아키코는 타카시의 침대에서 숙면을 취하고 다음날 타카시는 아키코를 학교 앞까지 데려다준다. 주변 사람들의 눈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할아버지와 손녀처럼 보인다.

이 영화에서 관계와 사랑에 관한 한 모든 진짜는 가짜에 가깝고 가짜는 진짜처럼 보인다. 아키코는 노리아키를 사랑하지만 그에게 보여주는 그녀의 모습은 가짜에 가깝고 노리아키는 아키코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녀의 말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그녀를 대하는 방식도 사랑이라기엔 너무 폭력적이다. 타카시와 아키코는 따뜻하게 서로를 이해하는 듯 보이지만 서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며 결정적으로 그들의 관계는 서로의 이해타산을 위해 주선된 것이다. 타카시는 노리아키를 만나 인생에 관한 진언을 들려주지만 그것은 타카시가 실천하지 못했던 것이며 거짓된 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에 노리아키에게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 분명 허구의 영화를 찍고 있으면서도 가세 료에게 ‘절대로 연기를 하지 말라’고 했던 키아로스타미의 아이러니한 주문처럼 이 영화는 인간이 그어놓은 감정의 경계들을 마법처럼 흩트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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