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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피카추] 부동산이 재난일세

<컨저링>을 보며 공포에 떨었던 진짜 이유는…

<컨저링>

<살인소설>

영화를 보다가 유령이 나오는 집을 보면 정말 무서워진다. 어떡해, 어떡해, 저 집에 귀신 있는데… 가 아니고, 저 집 팔지도 못하는데. 그렇다, 나는 그게 제일 무섭다. 5년 전부터 전셋값이 오르면서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다가 결국 포기하고 경기도로 나와 대출을 잔뜩 끼고 오피스텔을 사버린(오피스텔은 전세자금 대출이 안됐다) 나에게 <컨저링>은 유령영화가 아니었다. 엄청난 부동산 사기 영화였다. 큰맘먹고 장만한 스위트홈에 보이지 않는(아니, 가끔 보이긴 하지만) 세입자라니, 나갈 거 아니면 월세라도 내시오.

난생처음 와보는 경기도 신도시에서 살 곳을 찾아 헤매는 내게 부동산 아줌마는 말했다, 월세 내느니 대출 이자를 내라고. 뭐, 대충 맞는 말이기는 했다. 그리고 동네 부동산 시세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좋다는 점에서는 일단 만족했다, 이사한 내 집에서 누군가의 목소리와 웃음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나는 불안했다. <아미티빌>이나 <샤이닝>을 보면 자꾸 목소리가 들리던데, 이러다가 나도 악령에 씌어 살인마로 변신하는 건 아닐까, 그럼 대출금은 안 갚아도 되는 건가. 딸이 (절반만) 자기 집을 장만한 걸 축하한다며 (아무리 식구라지만 빈손으로) 놀러와 있던 엄마에게 소리 죽여 물었다. “엄마, 저 소리 들려?” 엄마는 내 등짝을 후려쳤다. “그럼 안 들리냐! 그러니까 엄마가 잘 알아보고 계약하라고 했지! 하여튼 모자라가지고.”

중견 건설사가 지은 신축 오피스텔, 층간 소음 따위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고 장담했던 이 오피스텔은 과연 장담한대로 천장은 엄청 두꺼웠지만 벽은 엄청 얇았던 것이다. 그 목소리는 옆집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속삭이는 소리였다. <컨저링> 식구들은 퇴마사라도 부른다지만 나는 누굴 부르나. 차라리 층간 소음 있는 아파트가 부러웠다. 어린 시절 쥐떼가 천장을 달리는 집에서 살았던 나는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아파트잖아, 베란다도 있고 욕조도 있다고.

그래서 <살인소설>을 보는 내내 나는 남편 편이었다. 애 엄마가 이 집에서 나가자고 남편에게 조를 때마다 나는 남편과 더불어 발끈했다. 이봐요 아줌마, 이 집 나가면 갈 데가 없잖아요, 책 써서 돈을 벌어야 이사를 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에요! 나는 유령이 자꾸 가져다놓는 필름 꾸러미보다 집을 팔면 내야 하는 양도세와 오피스텔만 유독 비싼 부동산 복비가 훨씬 무서웠다.

<감기>

그러다보니 명색이 재난영화인 <감기>에서도 내겐 오직 부동산 관련 발언만 들렸다. 그 영화에서‘경기도의 강남’ 분당 아저씨는 말한다. “우리 다 중대형 아파트 사는 사람들인데!” 분당엔 오피스텔이나 원룸이나 소형 아파트 따위는 없는 건가. 그래도 격리된 중대형 아파트 거주 분당 시민들이 경계선을 향해 달릴 때, 나도 함께 울었다. 그래, 나도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이번 생에선 안되겠지, 아마. 서울시에서 무상급식 찬반 투표를 할 때 나도 참 안 하고 싶었지만(투표를 안하면 무상급식이 통과되는 거였다), 경기도민이어서 이러나 저러나 투표 안 했다. 하지만 왠지 서운했어.

그러던 어느 날, 오피스텔 시공사가 벽을 한겹 더 붙여주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벽간 소음이 기준치를 넘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기들이 잘못했다는 소리는 죽어도 하지 않았다. 입주자 잘못이라고 했다. 특이한 직업을 가진 일부 입주자 때문에 소음이 너무 커서 굳이 공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 직업은 이랬다. 성악가, 바이올리니스트, 음원 제작자. 나는 궁금했다, 작곡가면 작곡가고 가수면 가수지, 음원 제작자는 무엇인가. 집에 들어앉아 휴대폰을 쌓아놓고 벨소리만 만들고 있는 폐인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한번 본 우리 오피스텔 주민, 유명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인 뮤지션에게 마음 깊이 감사를 표하며 그 사람이 리더인 밴드의 음원을 다운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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