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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ituary] 사제와 함께 영화를 보았네
주성철 사진 최성열 2013-10-22

베네딕도 미디어 임인덕 신부, 향년 78살로 선종

1990년대를 관통한 시네필들이라면 분도출판사에서 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봉인된 시간>이나, ‘비짜’ 비디오로 볼 수밖에 없었던 무수한 걸작들을 정품으로 출시한 베네딕도 미디어(www.benedictmedia.co.kr)의 VHS테이프를 접하지 않은 이들이 없을 것이다. 바로 그 중심에는 한국에서 40여년을 살면서 출판, 영화 보급 등을 통해 선교 활동을 벌인 독일인 임인덕(독일명 하인리히 세바스티안 로틀러) 신부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임 신부는 지난 10월13일 새벽 4시경(한국 시각) 독일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서 지병으로 선종했다. 향년 78.

1955년 베네딕도회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 입회한 그는, 1965년 사제서품을 받고 이듬해 한국 왜관수도원에 선교사로 파견됐다. 1972년부터 왜관수도원의 분도출판사 사장에 부임해 20여년간 운영을 맡아왔으며, 출판뿐 아니라 영화를 비롯한 시청각 자료를 사목 활동에 활용했다. 프레드 진네만의 <사계절의 사나이>(1966), 프랑코 제피렐리의 <나사렛 예수>(1977)를 비롯해 찰리 채플린 영화들을 한국어로 더빙해 대학가와 전국 본당의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영사기를 돌렸다. 영사기를 든 채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다녔다.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큰 영사기를 소중하게 다뤄야 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통행에도 방해가 되어 언제나 버스표를 2장 샀다. 하나는 내 자리, 다른 하나는 영사기 자리.”

또한 그는 <해방신학>(1977) 등 판금 서적들을 간행해 수많은 민주 인사와 운동권 노동자들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사회참여 활동도 활발히 했다. 특히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분도출판사의 책임자였던 그는 광주의 진실을 국내외에 알린 주인공이기도 하다. 광주쪽 수도원의 신부들을 통해 그 실상을 알게 됐지만, 정작 국내 신문들은 시민들의 ‘폭동’이라는 얘기만 반복했던 것. 당시 나름의 미디어 장비를 갖춘 곳이 바로 왜관수도원이었기 때문에, 밤새 장비를 돌려 보도용 테이프를 제작했고 서울로 올려 보냈다. 하지만 관련자들 누군가가 고문에 못 이겨 결국 그의 이름을 얘기했고, 그는 수도원으로 찾아온 군인들에게 끌려 감옥에 가기도 했다. 1982년에는 사진작가 최민식을 지원해 당시 문화공보부의 압력 속에서도 빈민층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은 그의 사진집을 펴내기도 했다. 김지하의 <검은 산 하얀 방>, 이해인 수녀의 시집 역시 분도출판사에서 낸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시네필들에게 그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십계> 연작,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1954),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거울>(1975) 등의 예술영화 비디오를 처음으로 국내에 출시하면서다. 켄 로치의 <레이디버드 레이디버드>(1993), 알렉산더 소쿠로프의 <어머니와 아들>(1997), 에릭 로메르의 <가을 이야기>(1998) 등도 그가 아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영화들이다. 이후 변화하는 매체 환경 속에서 <나무를 심은 사람>(1983) 등 프레데릭 벡의 애니메이션 컬렉션, 안제이 바이다의 <재와 다이아몬드>(1958) 등을 DVD 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인한 골반 파열로 네 차례 큰 수술을 받은 그의 몸은 성하지 못했다. 매번 작품들을 출시할 때마다 지팡이를 짚고 서울 곳곳의 언론사들을 직접 방문하며 홍보했다. 이후 급속도로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과 수도원, 그리고 독일을 오가며 지난해 자크 리베트의 <잔다르크>(1994)를 출시한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몇년 전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왜관수도원을 찾았던 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액자 옆에 나란히 있던 찰리 채플린의 포스터가 잊히지 않는다. 그 옆에서 소년 같은 웃음을 짓던 그는 한국 인천에 처음 도착하던 날 먹었던 볶음밥의 맛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했고, 제일 처음 본 한국영화인 유현목 감독의 <공처가 3대>(1967)는 자막이 없어도 너무 재밌었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바로 “더이상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부재와 침묵을 이야기하는” 잉마르 베리만의 <침묵>(1964)이라고 했다. 그렇게 그는 저 멀리 침묵의 세상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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