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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스코프] 귀로 영화를 본다는 것
윤혜지 사진 백종헌 2013-11-29

<위 캔 두 댓!> 배리어프리버전 더빙현장

“저는 여러분들이 잘해낼 거라 믿습니다. 암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 넬로가 조합원들을 독려하는 장면이다. 김성균은 짧은 추임새와 강한 어조로 조합원들을 향한 넬로의 신뢰감을 제대로 표현했다.

모두들 숨죽인 채 배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식구들은 스튜디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배우들의 빡빡한 스케줄과 성큼 다가온 영화제 일정을 고려해 더빙 작업을 얼른 끝내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제가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와의 오랜 인연으로 연출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정지우 감독. 배리어프리버전 더빙 작업이 생각 이상으로 즐겁고 보람 있었던 터라 직접 연출한 영화들의 배리어프리버전도 상상해봤단다. “<은교>도 한번 배리어프리버전으로 만들어봐?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 같다.”

‘귀여운 낭랑 18세’로 어필 중인 요즈음이라 진지한 김성균의 모습이 더 오랜만인 것처럼 느껴진다. 김성균은 배리어프리버전으로 각색된 더빙 대본을 받아들고 열심히 넬로의 대사를 되새기는 중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오후, 남양주종합촬영소 녹음 스튜디오에서 <위 캔 두 댓!>의 배리어프리버전 더빙이 진행됐다. 한창 녹음 중이라고 해 조심스럽게 스튜디오 문을 열었다. 눈치를 살피느라 고개만 빠끔 들이밀었는데 난데없는 환호성이 먼저 반긴다. “어서 오세요! 이왕 오셨으니 한마디씩 녹음하고 가셔야 해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정신병원 환자들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든다. 활동가 넬로는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 ‘협동조합180’은 어설프지만 제법 기세 좋게 잘 굴러간다. <위 캔 두 댓!>은 수많은 등장인물,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대사, 복잡한 정치적 상황이 뒤섞인 배경이 특징이다. 보다 쉽고 편한 방법으로 영화를 보도록 하기 위함이 목적인 배리어프리영화로 만들기엔 다소 부적절해 보인다. 그렇지만 정지우 감독은 “정보의 누수”를 감안하더라도, “인물들이 주는 생생함”을 같이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저녁 무렵, 조합을 이끄는 넬로 역을 맡은 김성균이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간편한 차림으로 녹음에 들어간 김성균은 순식간에 넬로에 “빙의해” 영화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대사를 좀더 멀리 던져주시겠어요?” 정지우 감독은 그때그때 들리는 대사의 느낌에 따라 김성균에게 미묘한 디렉팅을 한다. 김성균은 당황하지 않고 똑같은 말을 수차례 반복하며 즉석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대사를 소화해낸다. 정지우 감독은 마음에 드는 버전을 골라내며 더없이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배리어프리영화 제작현장은 일반적인 더빙현장과 약간 차이가 있다. 보지 않아도 영화의 흐름을 알 수 있도록 화면에 음성해설이 추가된다. 사운드도 풍부하게 들어차 있다. 자연히 화면에 사람이 여럿 나오면 고비다. 인물들이 화면에서 마구잡이로 말을 뒤섞고, 점점 누구의 대사인지 헷갈리게 된다. 이탈리아어 대사와 한국어 대사의 싱크가 잘 맞지 않을 때도 있다. “입이 안 맞네. 이 대사를 앞으로 조금만 당겨볼까요?” “이 추임새는 따로 떼어서 더 앞에다 갖다붙이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우니까 앞으로 옮기죠.” 정지우 감독과 사운드 슈퍼바이저 김영록 실장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대사의 싱크를 맞춰나간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김영록 실장의 손을 보던 김성균이 순수한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야, 기가 막히게 맞추시네요. 마술사 같다~.” 영화 <위 캔 두 댓!>의 자유로운 조합 분위기가 그대로 스튜디오 안에서도 펼쳐진다.

오며가며 들르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보태 <위 캔 두 댓!>의 더빙도 슬슬 막바지에 이르렀다. 한두 마디씩 모인 목소리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낼지는 11월28일 열리는 배리어프리영화제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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