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40대 가장의 씁쓸한 현재 <청춘예찬>
이화정 2014-01-01

청춘을 과시하던 세대가 있었다면 믿기는가. 아마도 지금 힘겹게 살아가는 ‘88세대’의 눈에는 20년 전에 출몰했던 ‘신세대’ 혹은 ‘X세대’가 외계인처럼 여겨질 것이다. 물질적 풍요를 만끽하고 자기중심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자신감 백배의 그 청춘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청춘예찬>은 강의실 대신 당구장과 만화방을 들락거렸던, 취업 준비는 뒤로하고 온통 섹스 생각만 하던 그 별종들의 후일담이다.

‘키 크고 잘생겨서’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킹카 한태평(김남희). 양다리는 기본에 마음만 먹으면 어떤 여자도 사귈 수 있는 자신만만한 남자다. 하지만 영광의 나날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군 제대 이후 취직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상사와 거래처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제약회사 영업직의 고충이 일상이 되고, 여자친구의 임신으로 예정에도 없던 결혼까지 하게 된다. ‘아다’(숫총각)라고 놀리던 공부벌레 동창생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동안, 샐러리맨 신세를 면치 못하는 자신을 보고 태평은 되뇐다. “예전엔 내가 정말 특별한 줄 알았어.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원 오브 뎀(One of Them)이야.”

<청춘예찬>은 <응답하라 1994>와 같은 시기의 청춘을 다루고 있지만 정감 있는 내레이션으로 그 시절을 마냥 추억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90년대 청춘기는 태평과 그의 친구들에게 닥친 우울하고 참담한 현재를 강화하는 도구에 더 가깝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밀려난 평범한 남자의 열패감을 통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결국 궁지에 몰린 40대 가장의 씁쓸한 현재다. 자신만만했던 청춘기 때 유희의 대상이었던 섹스는 이제 패배와 좌절을 상쇄할 변태적 습관으로 묘사될 뿐이다. 주인공 태평과 또래인 감독이 “직접 듣고 겪은” 에피소드를 활용한 덕분에 한층 사실감이 부각되지만, 과거와 현재의 극명한 대조 외에 서사의 다른 돌파구가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