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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모든 걸 내려놓고 마음껏 뒹굴려고 한다

단편 <민우씨 오는 날>로 2년 만에 복귀한 강제규 감독

서울시 논현동에 있는 강제규 감독의 사무실은 토요일인데도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단편영화 <민우씨 오는 날>의 스탭들이 다음날 예정된 촬영의 사전 점검을 위해 끊임없이 사무실을 들락거리고 있었다. 이번 단편 작업은 강제규 감독의 단순한 워밍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마이웨이>(2011) 이후 지난 2년 동안 그는 영화계 공식 석상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때문에 확인되지 않는 괴담 풍문이 돈 적도 있었다. <은행나무 침대>(1996), <쉬리>(1999), <태극기 휘날리며>(2004) 까지 잇달아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우며 흥행 신기록 제조기라 불렸던 그가 <마이웨이>로 참담한 흥행 참패를 맛볼 것이라 예상했던 이는 많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마이웨이>의 홍콩 상영으로 인연을 맺은 홍콩국제영화제가 그에게 제안한 단편 프로젝트를 재기의 발판으로 삼은 그는 지난 시련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민우씨 오는 날>의 2회분 촬영을 앞둔 1월18일, 2년 만에 강제규 감독을 만났다.

-촬영은 잘 진행되고 있나. =배우들이 출연하는 분량이 5회차, 인서트컷을 찍는 분량이 2회차, 합쳐 총 7회차 촬영이다. 내일과 모레 촬영할 2회차만 남겨두고 있다.

-그간 찍었던 장편영화들의 테스트 촬영 회차보다 적을 것 같다. =데뷔한 뒤 갈수록 회차가 늘어났다. <은행나무 침대>가 69회차 정도, <쉬리>가 75회차 정도 찍었다. <태극기 휘날리며>가 136회차, <마이웨이>는 156회차였다. 회차를 모두 합쳐보니 영화 12편 정도 찍은 것과 같더라. 보통 영화는 시작할 때 ‘언제 끝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끝이 안 보이는데 이번에는 시작하자마자 끝나니까 재미있었다.

-데뷔 뒤 단편 작업은 처음 아닌가. =어제 지인들을 만났는데 그들도 단편과 장편은 어떻게 다른가 하고 물어보더라. 장편에 비해 단편은 특유의 가벼움 같은 게 있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해보니까 그렇게 다른 건 없었다. 현장에서 숏을 만들어가야 하고, 연출자로서 매 순간 선택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장편이나 단편이나 영화 만드는 건 비슷했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81학번) 시절 친구들과 단편영화를 만들었던 기억도 났겠다. =많이 났다. 대학 다닐 때 단편을 많이 찍었다. 연출했던 작품이 5편 정도였다. 부전공이었던 촬영을 맡은 작품까지 합하면 6편 정도 된다. 친구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찍었던 기억도 나고, 그 당시의 순수함과 열정도 그리웠다. <민우씨 오는 날>을 하게 된 것도 그간 영화를 만들면서 가졌던 시간, 태도를 한번쯤 되돌아봐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을 느껴서다. 나의 출발점을 다시 확인하고픈 갈증 혹은 갈망이 컸다.

-<민우씨 오는 날>은 홍콩국제영화제쪽이 제작을 지원한다. 어떻게 제안을 받았나. =홍콩국제영화제는 매년 3월에 열린다. 영화 상영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매달 아시아 각국의 감독과 배우들을 초청해 관객과의 대화, 세미나, 포럼 등을 운영한다. 지난여름 <마이웨이>를 상영한 뒤 홍콩 관객과 만나는 시간을 가진 적 있다. 그때 제안을 받았다.

-영화제가 진행하는 제작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건 이번이 처음 아닌가. =그런 제안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여러 감독들이 특정 주제로 단편을 만드는 옴니버스 프로젝트라든가, 어떤 제품을 간접적으로 알리기 위한 홍보성 프로젝트 같은 것들이라 선뜻 하고 싶진 않았다. 반면 홍콩영화제는 내가 하고 싶은 거라면 아무것이나 만들어도 좋다고 하더라. 단점은 예산이 적다는 것. 그 돈으로 무엇을 찍을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고민을 약간 했는데 나를 원점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했고, 그래서 제안을 수락했다.

-<민우씨 오는 날>은 한국전쟁 때 헤어진 남편 민우(고수)를 기다리는 아내(과거/문채원, 현재/손숙) 이야기다. 어떻게 출발하게 된 이야기인가. =현재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는 몇편의 프로젝트 중 분단으로 고통받고 있는 인간과 그가 겪는 아픔을 소재로 한 영화가 있다. 평소 단편을 만들게 된다면 메시지가 선명한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 이야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감기에 걸려 열흘 동안 집에 틀어박혀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쭉 써내려갔다.

-고수, 문채원과는 이번이 첫 작업이다. =평소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던 배우들이었다. 이야기에 1940년대와 현재가 등장하는데 두 시대 모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1940년대 가족사진이 소품으로 필요해 찍었는데 무척 잘 어울리더라.

-두 배우가 감독님을 어려워하진 않던가. =모르겠다. (웃음) 고수씨는 사석에서 몇 차례 만난 적 있어 덜 그러는 것 같고, 문채원씨는 사석에서 본 적은 있는데 대화는 별로 나눠보진 않았고. 그런 생각은 들었다. 이게 장편이 아닌 단편인데 이 친구들이 함께해줄까. 그런데 흔쾌히 수락을 해줘서 고마웠다.

-<쉬리>는 분단을 배경으로 한 첩보영화였고, <태극기 휘날리며>는 한국전쟁을 스크린으로 불러낸 전쟁 블록버스터였다. 이번 영화는 분단으로 고통받고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인데 분단과 한국전쟁이라는 소재에 관심을 놓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다른 장르나 소재에도 관심이 많다. 한국전쟁과 분단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쉬리>를 제작할 때였다. 그전에는 ‘한반도는 분단이 고착화되어 있고, 남과 북은 다른 나라다’ 정도의 부끄러운 상식만 갖고 있었다. 당시 3개월간 베이징에 머물면서 북한, 분단 등 영화와 관련한 내용을 취재했는데 그때만큼 분단 문제, 시대의 아픔을 밀도 있게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내 영화 인생에서 가장 의미있는 가치관이 형성된 소중한 시기였던 것 같다.

-<마이웨이> 이후 <민우씨 오는 날>을 찍기 전까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다.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시나리오작가(<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1990),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 <게임의 법칙>(1994), <은행나무 침대> <쉬리> 등)로서, 감독으로서, 제작자(<쉬리>, <단적비연수>(2000), <베사메무쵸>(2001), <태극기 휘날리며>)로서 보내왔던 지난 시간을 반성했다.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가야 할지 등에 대해 생각했다.

-그간 해왔던 작업들을 되돌아보니 어떤 생각이 들던가. =<쉬리>는 산업으로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고, <태극기 휘날리며>는 1천만 관객을 동원했다. 매편이 산업적으로나 장르적으로나 어떤 의미가 부여된 작업들이었다. 그러다보니 나도 모르는 어떤 짐을 어깨에 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한국영화의 새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만들고자 했던 영화와 만들기를 원했던 영화 사이의 간극이 컸던 것 같다. 결국… 그런 시행착오의 과정이 있었던 것 같다. 또 작품을 선택할 때 소재와 시장 확장이라는 외연에 얽매여 스스로를 감금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마이웨이>는 처음으로 흥행에서 실패했다. =<마이웨이>가 내게 어떤 영화인지 진솔하게 이 영화를, 이 영화의 결과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이 영화에 대한 평가와 결과를 인지하고, 느끼고,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최근에 와서야 객관적으로 좀더 편안하게 <마이웨이>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여러 측면에서 많은 것을 일깨워준 소중한 영화다. 감독으로서 조금 더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해 거치는 수련같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영화라는 건 다양한 방향에서 평가를 받는다. 평론가, 기자, 관객의 평가만큼이나 만든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영화를 평가하는 것도 중요한 가치다. 영화를하는 과정에서 실패, 이 단어가 적합한지 모르겠으나, 그동안은 실패를 통해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고민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영화의 성패를 떠나, <마이웨이> 덕분에 나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가 됐던 것 같다.

-공교롭게도 <태극기 휘날리며>가 올해로 개봉 10주년이다. =세월이 참 빠르다. 그사이 한국영화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1천만이라는 숫자가 익숙한 지금과 달리 당시만 하더라도 1천만은 상상하기 어려운 숫자였다. =<쉬리> 이후 대작들이 많이 기획, 제작됐다. 그때 많은 영화들이 실패하면서 영화산업 안팎으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에 대한 투자가 쉽지 않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태극기 휘날리며>도 촬영 막바지에 투자가 완료될 정도였다. 당시 투자사의 마케팅팀 회의에 들어가 1천만 관객을 목표로 마케팅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때 사람들이 그 말을 나의 희망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한국의 인구를 감안하면 1천만 관객은 당시에는 꿈의 숫자였지만 나는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실미도>(2003년 12월24일 개봉)와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 2월5일 개봉) 모두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당시 개봉일을 두고 고민이 많았을 텐데. =2003년 말쯤 강우석 감독님에게 전화가 왔다. <태극기 휘날리며>를 언제 개봉할 거냐고 물어보셔서 연말에 개봉할 거라고 대답했다. 강우석 감독님도 <실미도>를 12월에 개봉하겠다고 하시더라. 맞붙을 수가 없잖아. <태극기 휘날리며>의 CG를 더 손보고 싶었기 때문에 외려 잘됐다 싶었다. 그래서 <실미도>가 먼저, <태극기 휘날리며>가 나중에 개봉했다.

-2월5일 개봉했으니 10주년이 얼마 안 남았다. 개봉 1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는 없나. =자축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를 진단하고 돌아보는 것이다.

-<쉬리>부터 <마이웨이>까지 기획, 시나리오는 물론이고 마케팅까지 영화 공정의 전 과정에 깊숙이 관여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대기업 투자배급사 중심으로 산업환경이 재편된 지금, 그런 스타일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기획/개발, 투자, 프로덕션, 후반작업, 마케팅 등 모든 공정이 세분화된 건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확실히 제작 시스템이 안정화된 건 있다. 그렇다고 우리와 함께하는 파트너들이 긴 시간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진행해온 창작자만큼 작품에 대한 장점과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단순히 영화 외적인 요소만 보고 그걸 포장해 관객에 노출시켰을 때 생기는 부족함이나 한계가 분명 존재한다. 영화의 색깔과 본질에 접근하려는 대화와 노력이 의미 있는 시간이라는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걸 간과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현재 준비 중인 작품은 무엇인가. =<민우씨 오는 날>과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있고, 다른 영화사로부터 감독을 제안받은 작품도 몇개 있다. 중국이나 일본 등 아시아쪽 제작사가 연출을 요청해온 프로젝트도 있고.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고민 중인데 봄이 되면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민우씨 오는 날>은 언제 볼 수 있냐는 질문에) 3월 열리는 홍콩국제영화제에서 먼저 공개한 뒤 봄쯤 국내 관객도 영화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신작은 규모가 큰 작품이 될까, 아니면 그간 해왔던 작품과 다른 영화가 될까. =그런 생각이 든다. <쉬리>는 첩보 액션영화였고, <은행나무 침대>는 판타지 멜로였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마이웨이>는 전쟁 블록버스터라 무거워진 느낌이 있다. 영화에 좀더 쉽게 다가가고, 영화와 뒹굴어야 하는데 과거에는 그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지금부터라도 나를 더 많이 열고, 즐겁게 영화를 만들고 싶다. 강제규 하면 대작보다 경쾌하고 재미있는 영화가 떠오를 수 있도록 영화와 놀고 싶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강제규 감독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있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그 말이 전작에 대한 후회나 아쉬움으로 들리지 않았다. 실패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빨리 다음 영화를 만들어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고 싶다는 단단한 각오처럼 느껴졌다. 인터뷰 다음날, 그는 <민우씨 오는 날> 6회차 촬영을 <씨네21>에 공개했다(<민우씨 오는 날> 촬영현장 기사는 <씨네21> 941호에 실릴 예정이다). 현장을 취재한 윤혜지 기자의 말에 따르면, 강제규 감독은 한시도 가만있지 않고 현장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촬영을 이끌었다고 한다. “처음 영화할 때 가졌던 순수함과 열정을 쏟아붓고 싶다”는 그의 신년 계획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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