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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찾아가는 사십대의 모험담 <관능의 법칙>

꽃 같은 이십대가 끝나고 서른을 바라보는 29살 여자들의 이야기, <싱글즈>가 나온 지 십년만에 권칠인 감독은 마흔대에 접어든 여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관능’에 관한 영화를 들고 돌아왔다. 중간에 십대부터 사십대까지 세대를 아우르는 <뜨거운 것이 좋아>도 있었지만 왠지 <관능의 법칙>은 <싱글즈>의 후일담처럼 보인다. 영화와 함께 관록이 더해진 배우 엄정화 때문이기도 하지만 테마의 일관성이 큰 몫을 한다. 다만 <싱글즈>의 주인공들에게 ‘어떻게 더 멋진 여성이 될 것인가’가 문제였다면 <관능의 법칙> 속 사십대 여성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여전히 여성일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처럼 보인다.

케이블 TV PD인 신혜(엄정화)는 오래된 연인이 어린 여자와 바람을 피워 뒤통수를 맞았지만 사내 비밀 연애였던 터라 속시원히 분풀이도 하지 못한다. 어느 날 우연히 원 나이트를 하게 된 외주 제작사의 막내 PD가 진심으로 다가오자 신혜는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사귀게 된다. 주유소 사장의 부인인 미연(문소리)은 ‘섹스=사랑’이라고 여기며 남편에게 규칙적인 관계를 요구한다. 하지만 미연의 남편은 그녀 몰래 비아그라를 복용해가며 욕구를 채워주느라 고역이고 마음은 점점 더 멀어진다. 다 큰 딸과 함께 사는 해영(조민수)은 목수인 성재(이경영)와 딸 눈치를 보며 달콤한 데이트를 즐기는 중이다. 딸이 결혼해서 나간 뒤에도 성재가 결합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자 해영은 심란해진다. 신혜에게 새로 찾아온 사랑은 어린 녀석의 야심 같아 의심스럽고, 미연에게 남편의 사랑은 의리가 되어버려 섭섭하고, 해영에게 사랑은 남들 같은 절차가 생략돼서 서운하다.

사랑, 배신, 불륜, 이혼, 암투병 등 이 영화 속 에피소드들은 뻔하고 식상한 맛이 있지만 또 그래서 남 일 같지가 않다. 주변의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일이고 계속 일어날 일들이기 때문이다. 미연의 남편은 극악스러운 미연에게 “왜 이렇게 변했냐?”라고 한탄하듯 말한다. 미연은 눈썹을 치켜뜨며 “변한 건 당신이거든”이라며 응수한다. 노래에도 있지만 ‘세월 흘러가면 변해가는 건 어리기 때문’이다. 마흔이 훌쩍 넘은 이들이 ‘어리다’는 건 삶이라는 하나의 작품이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다. 해영의 불만들이 암세포 앞에서 사그라지고 마는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리 나이는 오르가슴보다 암이 어울리는 나이인가봐”라는 자조와 “그래도 우리가 우아한 맛은 있지”라는 자부를 오락가락하며 자아를 찾아가는 사십대의 모험담이 지루하지 않게 펼쳐진다. 제각기 다른 포스가 있는 세 여배우의 앙상블을 보는 재미가 있고,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은 대사에 날선 유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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