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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의 도를 아십니까] 이런 무당 조심하세요

<박수건달> <청담보살> <만신> 등에서 만난 무당

<박수건달>

<만신>

근심 걱정 없이 해맑아서 골치였던 상사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나 놀기만 하다가 그 천성을 버리지 못하고 직장에서도 계속 놀고만 있는 철부지로 살아온 세월이 어언 반세기, 상사에게도 드디어 험한 세상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인가. 나는 기뻤다. 기쁜 나머지 3X년을 갈고닦은 필살의 애교를 장착하고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부당니임, 요즘 무슨 걱뎡 있으쩨요?” 그는 흠칫했다. 겁먹은 것 같았다. “아니, 뭐… 옆집에 무당이 이사를 와서….” 굿이라도 한다는 건가. “그건 아닌데… 그 무당이… 닭을 잡아.” 겁먹은 그의 눈이 촉촉해졌다.

상사의 이웃인 박수무당은 이따금 두집 사이 공터에서 하얀 수탉을 잡아 피를 뿌린다고 했다. 심약한 도련님은 그 피비린내와 비명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태생이 잡초인 나는… 오옷, 제대론데! 흥분하고 말았다. 나도 연화보살과 같은 건물에 살아봤지만 닭 피는커녕 병아리 눈물도 구경 못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진짜 무당이구나, 감탄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닭 잡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무당이라고 믿고 있는 걸까, 이건 <전설의 고향> 비슷한 것들을 보고 생긴 편견이 아닐까. 그리고 궁금해졌다. 진짜 무당이란 무엇일까. 그리하여 나는 무당을 만나기 시작했다. 실물을 만나면 돈이 많이 드니까 그냥 영화로.

30년 가까이 무속을 연구해온 무속 칼럼니스트 조성제 선생(a.k.a. 삼신할미)에 따르면 “맛을 봐야 맛을 안다고, 사기꾼 무당은 사전에 알 수가 없고 피해를 당해봐야 안다”고 한다. 그리고 피해를 당하면 구제받을 방법은 거의 없다고도 덧붙인다. 30년 동안 뭘 연구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욕을 먹을 각오로” 만든 가이드가 있으니 ‘이런 무당 조심 베스트10’이다. 착한 무당도 이와 비슷한 행태를 보일 수는 있지만 어쨌든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고.

여기엔 이런 무당들이 있다. 큰 신이 들어왔다고 내림굿을 강요하는 무당, 앉자마자 반말하고 욕하면서 기죽이는 무당, 진한 화장에 장신구로 몸을 감싼 무당…. 그런데 읽다 보니 어딘지 낯이 익다 싶었다. 투잡의 서글픔이 가슴 절절했던, 아직도 <박수무당>으로 제목을 헷갈리는 영화 <박수건달>이었다(<박수무당>도 있다. ‘궁녀와 무당간의 사랑을 통한 원초적인 성의 신비’를 보여주는 70년대 영화인데, 궁녀와 무당과 원초적인 성의 신비가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꼭 한번 보고 싶다).

<박수건달>의 광호(박신양)는 14년 전 영화 <약속>에서 입던 옷을 도로 입고 나온 것 같은 건달이다. 어느 날 갑자기 동물들과 말을 섞는 초능력이 생긴 그는 초면에 반말지거리를 하며 제대로 신이 내렸다고 겁주는 무당들에게 내림굿을 받는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화장도 곱게 한다. 그리고 점을 치기 시작한다.

이렇게만 보면 사기꾼에게 당한 피해자이자 그 자신이 사기꾼이 된 셈이지만, 그래서야 주인공이 될 수 없다(아니, 될 수도 있으려나). 광호는 전천후 무당이다. <고스트 앤 크라임>의 알리슨처럼 죽은 사람을 보고, <사랑과 영혼>의 오다메처럼 영혼을 몸에 받아들여 춤을 추고, <스폰>의 스폰처럼 유령 군단을 대동한다. 못하는 거 없이 다 한다. 아르바이트라도 이 정도면 ‘직장의 신’이 될 수 있겠다. 2009년 영화 <청담보살>에 따르면 연 3조원 규모라는 광활한 시장이 그 앞에 펼쳐져 있다.

하지만 나는 전문가를 선호한다. 나는 보신탕은 보신탕집에서, 삼계탕은 삼계탕집에서 먹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적인 무당과 전통의 박수, 타로 카드를 마음에 드는 대로 골라잡을 수 있는 <청담보살>의 점집(21세기답게 ‘포춘 살롱’)은 내 엄격한 기준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입주 점쟁이 셋 중 하나만 영험 있어 보인다는 것이 약점이지만. 선대로부터 업을 이어받은 태랑(박예진)은 “무당이 무형문화재가 되는 세상”에 걸맞게 무당이라는 호칭을 거부하는 세련된 역술인이다(무당이 무형문화재가 되는 세상이라면서 왜?). 동업자처럼 부적을 남발하지도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점괘를 바꿔 말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자존심 있는 전문가다. 하지만 굿을 안 한다. 진짜 무형문화재인 만신 김금화에 따르면 “굿 열두 거리를 제대로 못 배우면 신내림을 받고도 점쟁이나 선무당으로 남게 된다”던데. 그렇다, 하려거든 제대로,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 해도 그것을 갈고닦는 것은 사람의 몫. 그리하여 나는 <만신>을 만났다.

<만신>의 주인공 김금화는 열일곱에 내림굿을 받은 큰무당이다. 그에게 내림굿을 해준 외할머니는 손녀에게 “만신이 된다는 것은 뭇사람이 참지 못하는 고통을 숱하게 참는 것”이라고 가르치면서 아이를 붙들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60년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김금화는 자신의 모진 인생살이 때문에 흘린 것만큼이나 많은 눈물을, 다른 이들의 아픔을 위해 쏟았다. 사람들은 그를 만나 물길을 열었다. 억울하고 분하고 아파서 가슴을 치다가 그 모든 응어리를 김금화의 눈물과 함께 흘려보냈다. 김금화는 말한다, 굿은 신명나는 잔치이며 눈물겨운 한풀이라고. 그런 무당만 있다면 굿하다가 패가망신할 일은 없겠다.

좋은 일이 있어서 무당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짜 무당을 만난 적은 없지만 사주를 본 적은 있는데, 도대체 언제까지 돈도 없고 남자도 없는 인생을 보낼 것인가, 심란했던 20대 후반의 일이었다. 그리고 사주에 돈도 없고 남자도 없다는 명쾌한 대답을 얻어 듣고는 그러면 그렇지, 하며 돌아왔다. 그래서 무엇이 달라졌을까. 어차피 없다는데 구차하게 얻으려 들지 않는다. 그냥 되는 대로 혼자서 나물 먹고 물 마시고 배 두드리며 살고 있다.

조성제 선생이 이르기를 무당은 엑소시스트와 다르다고 했다. 엑소시스트는 귀신을 쫓아내지만 무당은 귀신과 사람을 연결하기 때문이다. 무당이 박대받는 세상, 그럼에도 시절이 험하여 사기꾼 무당이 창궐하는 세상이다. 그 와중에 진짜 무당을 만난 마음은 개운하였다. 무(無)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사람은 하늘과 땅 밑, 어느 곳에라도 연을 대고 있다. 그 사이에 한 송이 꽃이 있어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꽃송이를 피우니, 기댈 곳 없는 이들이 그 꽃대를 잡고 한숨을 뱉는다. 말없이 듣기만 하는 꽃잎에 한(恨)을 속삭인다. 김금화의 자서전 <만신 김금화>의 부제는 ‘인간 세상에 핀 신의 꽃’이다.

<청담보살>

무당이 되고 싶나요?

성공적인 무당이 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기술

외국어 무당도 한류가 대세인가 보다. 외국이라고 무당이 없는 건 아닐 텐데 얼마나 용하다는 소문이 영계에 퍼진 건지, 한 트럭은 될 법한 이국의 영혼들이 <박수건달>의 광호를 찾아온다. 문제는 언어. 무슨 한을 품은 건지 알아먹어야 풀어주지. 스스로 귀신이 될 때까지 시달리고 싶지 않다면 외국어를 공부하자.

가무 신이 내리면 작두를 타는 것은 기본이요, 청동으로 만든 거대 떡시루를 입에 물거나 내장을 비운 거대 돼지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춤을 추는 괴력이 솟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굿을 위한 춤이다. <사랑과 영혼> <박수건달>을 봐도 그렇고 미국 드라마 <고스트 위스퍼러>에도 자주 나오는 장면들을 봐도 그러하니, 영혼들은 영매의 몸에 들어가면 마지막으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불러주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평소에 연습하자.

사교술 “내 말을 믿을 수 없겠지만….” 죽은 자들과 소통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모든 영화와 드라마와 소설에서 빠지지 않는 대사다. 영혼들은 막무가내여서(왜 아니겠는가, 가만히 앉아 사람 부리기만 하면 되는 건데) 생판 모르는 사람한테 가서 내가 사실은 영혼 좀 보는 사람인데, 라며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하라고 떼를 쓴다. 그게 말처럼 쉽다면 무당 안 하고 보험왕이 되겠다. 하지만 한번 달라붙은 귀신은 천금으로도 떼어낼 수 없으니 환한 미소와 능수능란한 화술을 연마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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