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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배우,국민배우를 만나다
2001-03-14

동지여,정년퇴직 없는 동지여

◆안성기 vs 야쿠쇼 고지 한,일 국민배우가 말하는 삶과 영화

“한국이 처음이라고? 그랬나?” “그러게요. 이렇게 가까운 줄 알았더라면….” 안성기와 야쿠쇼 고지(役所廣司). ‘국민배우’라고 말을 하면 그저 마주보며 씩 웃어버릴 듯한 이 한·일 두 국민배우의 만남은 성공한 남자들 특유의 격조와 몇번 만나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을 듯한 막역함으로 처음부터 멋들어졌다. 둘이 손을 맞잡고 있으니 다른 듯 같은 모습을 비추는 거울을 마주한 듯한 이들은 생일도 똑같은 1월1일. 1952년생인 안성기가 1956년생인 야쿠쇼 고지보다 4살이 위다. 1996년 오구리 고헤이 감독의 <잠자는 남자>에 출연하며 처음 만났던 이들은 그때 일본에서 몇달을 함께 보내며 급속하게 가까워졌고 “이복형제 역으로라도 함께 또 영화를 하자”고 말할 만큼 형제에 가까운 우정을 나누었다. <쥬바쿠> 홍보차 야쿠쇼 고지가 한국을 찾으면서 이들의 재회는 성사됐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기로 소문난 두 배우. 야쿠쇼는 이 만남 직전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안성기의 이름을 세번이나 꺼내며 자신이 그를 흠모하고 존경한다는 사실을 밝혔고, 안성기 역시 “야쿠쇼야말로 일본 최고의 배우”라고 치켜세웠다. 97년 안성기가 일본에 들렀을 때 만나곤 햇수로 4년 만인 이번 만남에서 그들은 짧은 시간 동안 그나마 여러 취재진의 시선에 둘러싸인 채이긴 했지만, 뜨거운 ‘동지’의 눈빛을 나누기에 여념없는 모습이었다. 마음이 통하는 남자 사이는 이런 건가, 한국말로 말을 건네면 한국말로 답할 것 같고 일본말로 말을 건네면 일본말로 답할 것 같다는 말을 하며 껄껄 웃는 이들. 이 멋진 중년의 두 배우에게서는 혀끝에서 나오는 어느어느 나라 말보다 훨씬 진득한 그들만의 무엇인가가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편집자

■프롤로그

안성기(이하 안) 곤니치와.

야쿠쇼 고지(이하 야쿠쇼)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하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오구리 고헤이 감독에게 한국에 가서 안성기씨를 만난다고 했더니, 덕분에 골프 실력 늘었다고 전해달라더군요.

안 아, 그래요. 오구리 감독 한번 초청해서 해야지.

안 예전에 80년대에는 일본영화가 한국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 내가 출연한 영화가 일방적으로 소개되고 해서 늘 관계가 불편했는데, 이제 3차까지 개방이 돼서 일본의 좋은 영화들을 거의 다 볼 수 있게 됐어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양국 관계를 위해서도 상당히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야쿠쇼 4년 전 <잠자는 남자> 때문에 만났을 때, 그때 한국영화계가 일본영화의 전성기 때와 비슷하다고 말을 했었는데, 지금 와보니까 한국영화들이 훨씬 대작이 많고 에너지가 느껴지네요. 그때가 전성기가 아니었나봐요. (웃음)

안 어떻게 보면 억울하기도 해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것이 빨리 됐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빨리 봤을 텐데…. 그렇게 서로 자연스럽게 교류함으로써 좋은 문화가 많이 들어오게 돼서 잘된 일이 아닌가 해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죠. 이렇게 가까운 나라끼리 교류한다는 것은.

야쿠쇼 아까 기자회견 때도 그 얘길 했지만, 한·일 문화교류를 안성기씨가 <잠자는 남자>로 열어준 게 아닌가 합니다. (웃음)

안 아이 참,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이런 딱딱한 얘기만 하게 돼서…. (웃음) 부산국제영화제 얘기는 혹시 들어보셨는지.

야쿠쇼 초청받은 적도 있는데 갈 수 없었습니다.

안 꼭 오시죠. 많은 영화인들이 국적을 떠나서 만나는 진짜 좋은 장소인 것 같아요. 부산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에 영화배우 하기 잘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죠.

야쿠쇼 다른 나라 영화제에 가봐도 그 도시의 사람들이 자원봉사하고 하는 걸 보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구나 실감하곤 합니다.

나의 첫발자국, 그날 이후

안 잠깐, 어떻게 불러야 하나, 야쿠쇼상이라고 해야 하나? 야쿠쇼상은 배우를 늦게 시작했죠? 다른 직업도 가졌었고. 몇년 정도 하셨죠?

야쿠쇼 10년 됐죠. 영화배우 한 것은.(야쿠쇼 고지가 영화계에 데뷔한 것은 85년 <담포포>를 찍으면서다. 당시엔 연극과 TV를 병행했기 때문에 이렇게 답한 것 같다.) 연극도 했었지만. 이것저것 하고 있었는데 <잠자는 남자>의 오구리 감독이 영화만 하라고 해서 영화만 했죠. 그런데 요즘은 너무 많이 하는 게 아니냐, 그러세요. (웃음)

안 그럼 요즘에는 주로 영화만 하시나요?

야쿠쇼 지난해에 오랜만에 13편짜리 드라마를 하긴 했는데, 그것말고는 영화만 했어요.

안 <잠자는 남자>할 때 그 얘길 했던 게 기억나요. 한국이 부럽다, 영화배우가 아직 있다니, 했는데 야쿠쇼상이 ‘영화배우’이니 일본도 이제 부러울 게 없겠네요.

야쿠쇼 (웃음)

안 내가 본 야쿠쇼상 영화는 <우나기> <쉘 위 댄스> <쥬바쿠> 이렇게 세편하고 내가 함께 나온 <잠자는 남자>인데, <쉘 위 댄스>는 아주 감동적이었고…. 앞에서 이런 얘기 해도 될는지 모르겠는데, 흔히 일본영화는 연기가 과장된 것이 많다고들 하는데, 야쿠쇼상은 연기가 상당히 자연스러워서 그런 것이 관객을 많이 불러모으지 않았나 생각해요.

야쿠쇼 <쉘 위 댄스> 얘기를 하셨는데, <잠자는 남자>를 끝내고 바로 <쉘 위 댄스>를 찍었어요. 그 사이에 3개월 동안 댄스교습소를 다니면서 춤연습을 했죠, 오구리 감독 몰래.

안 (웃음) 야쿠쇼상, 우리 영화를 많이 못 봤겠죠.

야쿠쇼 안성기씨 나오는 영화를 골라서 봤는데요. (웃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안 저는 요즘 우리 영화가 상당히 좋아지고 있다, 그런 느낌들을 갖는데, 한국하고 일본하고 서로 좋은 점들을 많이 배워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야쿠쇼 일본영화는 상업적으로는 성공 못하는 작품들이 많이 있는데, 그래도 종종 젊은 작가들은 저예산으로 작가성을 살려서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들지요. 일본 국내에서보다는 해외에서 작품성을 평가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서 일본 관객이 일본영화를 외면하다가 다시 눈을 돌리게 됐어요. 한때는 호러영화가 많았죠. 나 역시 <큐어>도 했는데, 호러가 돈이 된다고 많이들 만들었죠.

안 그거야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죠. 이번에 중국 가서 <무사>를 찍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유럽에서는 촬영은 어느 나라 사람이, 녹음은 어느 나라 사람이, 이런 식으로 정말 유럽공동체라는 느낌이 드는데, 우리도 한국, 일본, 중국이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구요. 중국은 물가가 싸니까 장소를 제공하고, 일본은 녹음이나 현상기술이 뛰어나니까 그쪽으로 참여하고 배우들도 여러 나라 배우들이 함께 출연하는 식으로요.

야쿠쇼 네…. 근데 그럼 어느 나라 말로 하죠? (웃음)

안 그렇네, 그럼 또 잠자야 하나? (웃음) 우리나라 어느 제작사에서 야쿠쇼상하고 나하고 같이 하는 작품을 하자고 그런 얘기도 있었는데, 그게 실현됐으면 하는 생각도 드네요.

야쿠쇼 4년 전 일본에서 만났다가 마지막 헤어질 때 안성기씨가, “이복형제 역할이라도 함께 하고 싶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네요. (웃음)

배우로 늙어가다

안 아, 저거 좀 궁금한 것 있어요. 요즘 저 같은 경우에는 촬영현장에서 제가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인 경우가 종종 있어요. 야쿠쇼상은 어떤지.

야쿠쇼 일본은 한국 정도는 아니에요. 저는 제가 항상 최연소라고 생각하고 연기해 왔는데, 어느새 중간이 됐어요. 일본은 스탭 중에 나이 많은 사람들이 많아서 최연장자가 되는 경우는 없고, 다만 <쉘 위 댄스> 할 때는 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저랑 동갑인데 중견감독 소리를 들어서 아, 내가 나이를 먹었구나 생각했죠.

안 그건 정상인 것 같아요. 시대적인, 우리의 어떤 상황이 있어서, 지금 우리는 활발한 중견 50대가 없는 거거든요. 선배가 있고, 중간쯤 된다는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일 것 같아요. 요즘 전 솔직히 외로운 때가 많아요. (웃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사랑하는 영화

안 야쿠쇼상은 출연작이 몇편 정도 돼죠?

야쿠쇼 음, 한 스물세편 정도? 확실하진 않아요.

안 (웃음) 나도 그런데, 한 육십몇편 정도? (웃음) 좋아하는 작품이랄까, 의미있는 작품 몇편을 꼽는 게 가능할까요?

야쿠쇼 <가미가제 택시>하고 <잠자는 남자>가 전 제일 애착이 가요. 하라다 마사토 감독의 <가미가제 택시>는 처음으로 영화 일이 재미있다고 생각하게끔 한 영화이고, 영화를 하면서 쇼크를 받았던 작품은 <잠자는 남자>거든요. <잠자는 남자>를 찍고 바로 <쉘 위 댄스>를 했는데, 만약 그 순서가 거꾸로였다면 둘 다 전혀 다른 작품이 됐을 거예요. <잠자는 남자>의 오구리 고헤이 감독이 천천히 말하라고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그게 힘들다는 것을 깨닫곤 쇼크를 받았어요. 그뒤로 연기가 많이 바뀌었지요. 안성기씨는 어떠신가요?

안 몇편 꼽는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에요. 굳이 한다면, 이장호 감독과 만나고 또 배우로 인정받기 시작한 <바람불어 좋은 날>, 임권택 감독과 만나고 연기자의 기반을 다진 작품인 <만다라>,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던 <고래사냥>, 관객은 없었지만 재미나게 찍었던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 그리고 <하얀 전쟁>은 내가 베트남어를 전공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작품이고, 영화도 좋았고,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던 <투캅스>, 그리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정도를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감독의 한마디

안 이제 영화배우로 10년이 됐으니 함께 작업했던 감독한테 들었던 어떤 말 중 절대 잊을 수 없는 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야쿠쇼 꼭 어느 분의 영향을 받았다기보다는 선배들의 작품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따라하면서 많이 배웠던 것 같아요. 어떤 말을 얘기하자면,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수많은 작품들을 보면서 깨달은 것이지요.

안 내가 80년 <바람불어 좋은날>을 할 때였지요. 물론 성인으로서 데뷔는 그전에 했지만, 그래도 일반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게 그 작품인데, 거기서 중국집 배달부 역으로 나왔어요. 이렇게 사람들이 죽 다 나를 보고 있고, 그런 속에서 철제가방을 들고 어리숙하게 걸어가는 장면이었는데, 내가 너무나도 어리숙하게 하니까, 이장호 감독이 “그렇게 해서 뭘 하겠냐”고 하더라구요. 심한 말도 아니었는데, 그렇게 핀잔을 들었다는 게 나는 굉장히 가슴이 아팠어요. 칭찬은 못 들을망정 내가 이런 소리나 듣나, 싶었죠. 그날 내가 울었어요. (웃음) 그리곤 그 다음날부터는 참 잘했죠. 다행히 그 작품이 잘됐고, 그 다음부터 하고 싶은 작품을 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비치는 이미지,원하는 이미지

안 영화 속에 보여졌던 내 모습을 죽 돌이켜보면, 나는 80년대에는 주로 70년대에 못했던 이야기들, 우리가 건너뛴 이야기들을 하려고 배우로서 노력했던 것 같아요. 또 그런 작품에 참여하려고 애썼고, 그러다보니 행복한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 역을 많이 했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면으로 대놓고 하지 못하니까 바보스럽게, 풍자적인 모습으로 많이 나왔죠. 고독이나 반항이나 그런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섞여서 영화 속에 나타나는 것이지 자기의 모습이 그대로 영화 속에 드러난다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건 다큐멘터리가 아니고는 힘들지 않을까…. 근데, 그 모습이 바뀌어가요. 야쿠쇼상도 인물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배우로 알고 있는데, 90년대 들어와서 사회가 자유스러워지고 예전의 검열 문제라든지 하는 구속에서 자유스러워지니까 인물도 자유스러워지고, 그러다보니까 코미디도 하게 되고, 성격이 종잡을 수 없는 그런 역할도 하게 되는 거죠. 최근에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나 <무사> 같이 나이들면서 또 강한 역할을 하게 된다든지. (웃음) 그것은 시대가 어떤 영화를 요구하느냐에 따라서 나도 부응해가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생각해요. 어떤 역할을 고집하는 건 어려운 일이죠.

야쿠쇼 저도 이미지를 고정하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배우가 자신의 이미지를 고정시키는 것은 안 좋죠. 이미지를 고정시키면 관객이 배우에게 선입견을 가지기 때문에 다른 배역의 연기를 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예전에 스타가 많았을 때에는 스타에 맞게 각본을 썼고, 배우에 맞게 내용도 고치고 했죠. 제가 ‘다가가는 연기’, 그러니까 배우가 캐릭터를 향해 한발한발 다가가는 연기에 대해 얘기하곤 하는데, 그렇게 해선 배우는 가만있고 시나리오 같은 다른 게 다가오는 거죠. 그래서 관객은 각기 다른 영화를 보아도 똑같은 성격의 배우만 보았죠. 저는 관객이 저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다면 그 선입견을 깰 수 있는 배역을 맡고 싶어요. 내가 못하는 역도 있겠지만, 여러 가지 다양한 역들을 끌어내서 좋은 사이클을 유지하며 연기해 나가고 싶습니다.

안 비슷한 생각이군요.

야쿠쇼 저는 젊었을 때부터 중년 역할을 했고, 나이 들어서도 중년 역할을 하는데, 나이 들어 하는 중년 연기가 훨씬 더 재미있어요. 많이 살아왔고, 복잡하게 많은 것들을 겪어왔기 때문에 중년 연기자로서 연기하는 게 더 재미있는 거지요.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빨리 못 뛴다든지 몸을 쓰면 근육통이 생긴다든가 하는 거예요. (웃음)

안 그 얘기 잘하셨는데, 언뜻 듣기로 운동을 잘 안 하신다고…. 물론 <쥬바쿠> 보니까 영화를 찍으면서 충분히 많은 운동을 하신 것 같지만…. (웃음)

야쿠쇼 네….

안 저도 요즘 배우의 정년이 언제일까 그런 생각을 해요. 영화는 내가 좋아하는 건데, 내 몸이 안 따라준다거나 관객이 나를 보기 싫어한다거나 하면 관둬야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몸이 안 따라주는 것에 대해서는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우는 운동을 밥먹듯이 해야 한다고. 그래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저는.

야쿠쇼 만일 60살 먹은 사람 연기를 하려면 배우는 다섯살은 어려야 해요. 왜냐면 60살 먹은 사람은 한번만 뛰면 죽는데, 배우는 그걸 스무번은 해야 하니까요. (웃음)

이런 감독 좋아한다

안 야쿠쇼상은 좋아하는 감독 스타일이 있나요? 난 감독 이전에 인간 대 인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생각을 공감도 할 수 있고, 뜻이 같다고 할까,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그런 사이가 좋은 것 같아요. 대부분 그런 식으로 해왔죠. 배창호 감독 같은 경우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케이스예요. 촬영하면서 다음 작품 얘기도 하고, 얘기를 아주 많이 한 편이죠. 저는 그런 감독을 좋아하기도 해요. 연출 자체만을 너무 생각하기보다는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컨트롤하는 스타일 말이에요. 예를 들면 임권택 감독님도 그렇고. 임 감독님 같은 경우에는 안 보는 것 같으면서 다 꿰차고…. 점심도, 일 늦게 끝나고 제일 마지막으로 먹는 사람을 봤다가 그 사람이 다 먹으면, “이제 시작할까” 한다든지. 그런가 하면 밥도 안 먹이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오늘도 이 인터뷰가 밥을 안 먹이는데…. (웃음)

야쿠쇼 옛날 일본 영화산업이 전성기였을 때는 영화사가 배우를 데리고 있었지요. 회사가 배우를 키우는 시대였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비즈니스로 이용하기도 했지만, 배우를 성장시키는 사람이 있었죠.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감독이 나의 가능성을 봐주고, 새로운 역이라도 시켜주고, 그렇게 나를 발견해주는 게 중요하죠. 서로 대화를 해가면서 감독도 배우를 발견하고 배우도 감독을 발견하는 그런 관계가 바람직해요. 그런 감독이라면 그의 영화에 또 나가고 또 나가고 하죠. 나를 바꿔주는 감독 말이에요. 역시 안성기씨 말대로 인간 대 인간 관계지요.

안 또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방향을 제시해주면, 그게 또 의욕이 나고 좋죠. 그런 아이디어를 많이 가진 감독도 좋은 것 같아요.

관객은 국경을 넘어?

안 일본은 관객층 연령대가 어떻게 되죠?

야쿠쇼 10대, 20대가 대부분이죠.

안 한국 같은 경우는 가장 아쉬운 게, 젊어서 데이트할 때는 극장에서 영화를 많이 보다가도 결혼하고 나이먹고 그러면 다 비디오나 TV로 빠져요. 그것에 비해서 일본은 나이든 관객도 있는 것 같은데.

야쿠쇼 작품에 따라서 달라요. 안타까운 일은 상업영화들이 대개 10대를 겨냥하고 있다는 거죠.

안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부산영화제에 와보고 외국인들이 젊은 관객들이 북적북적대는 걸 보고는 아, 한국영화의 미래는 밝다 그러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그 사람들이 나이 들어서도 그런 곳에 계속 와주고 해야 하는데 나이 들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또 밑에서 젊은 사람들이 올라오고 그런 식이니까요. 참 아쉬워요.

야쿠쇼 그런 걸 보면 확실히 유럽은 문화적인 전통이 강해서 그런지 고연령층의 사람들이 극장에 많이 오죠. 놀라워요.

안 맞아요.

그 작품을 내 품에

야쿠쇼 요즘 영화는 너무 호러나 폭력물이 많아요. 사회 따라 영화도 변하는 거죠. 전 따뜻한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 그런 영화들을 주로 찾고 있죠. 그런데 의외로 그런 작품이 드문 게 현실이에요.

안 나로서는 다가올 하나하나가 다 하고 싶은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요. 내가 얼마나 이 역에 빠져들 수 있나를 생각해서 배역을 선택해야 할 것 같아요.

■에필로그

안 아유, 얘기하면 바로 한국말을 할 것 같은데, 언어 때문에 참. 그렇게 친숙감이 드는데…. “가자!” 그러면 바로 “좋아!” 그러고 갈 것만 같다고요.

야쿠쇼 저도 그래요. 오늘 공항에 내려서 생각한 게 한국이 일본하고 너무 비슷한 거예요. 길도, 사람도 비슷한데 다른 말을 쓰니 이상하더라구요. 신이 시련을 준 것같이. 안성기씨는 4년 전 봤을 때하고 지금하고 하나도 안 달라졌어요. 전혀 안 늙고 오히려 젊어진 것 같네요. 나 혼자 나이먹은 듯해서 질투가 납니다.

안 운동을 많이 해서 오래오래 사랑받는 배우가 되길 바랍니다. 나도 노력하겠지만.

야쿠쇼 저는 이제 영화를 10년 했으니 다음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서 출연작을 결정할 시기죠. 충고대로 (웃음) 운동도 열심히 해서 다음엔 더 젊은 모습으로 만났으면 합니다.

글 문석 기자 ssoony@hani.co.kr

최수임 기자 sooeem@hani.co.kr

사진 정진환 기자 jungjh@hani.co.kr

통역 강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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