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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특집] <28> 정유정 작가

개와 인간의 시간

소설 <28>은 ‘불볕’이라는 뜻의 도시 ‘화양’에서 28일간 펼쳐지는, 인간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생존을 향한 갈망과 뜨거운 구원에 관한 이야기다.

“개에게 인간은 곧 세계였다.”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을 쓴 작가 정유정의 2013년작 <28>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개와 인간, 그리고 이들의 경계에 서 있는 늑대개를 소재로 써내려간 이 소설에는 사람과 개 모두에게 전염되는 ‘인수공 통전염병’이 세 가지 소재를 관통한다. 이야기의 뼈대는 서울의 가상도시 ‘화양’(華陽)에 퍼진 전염병이다. 개와 사람의 눈을 빨갛게 만든 뒤 피를 토하며 죽게 만드는 치명적인 전염병이 돌자 정부는 도시를 봉쇄하고, 극단적 상황에 내몰린 등장인물들은 인간성의 민낯을 보여준다.

독특한 소재만큼이나 <28>은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가파른 상승세로 주목받았다. 간호사, 소방관, 수의사, 기자 등 주인공 6명의 시선을 통해 가파른 전개를 이어가는 구성도 인기에 한몫했을 것이다. 정유정 작가는 “이 책이 재난소설로 불렸으면 좋겠다”고 말한 바 있다.“소록도에서 한센병을 앓던 이들의 다큐멘터리와 구제역 살처분 뉴스를 보면서 소설의 모티브를 생각해냈어요.” 실제로 그는 하룻밤 사이에 <28>의 뼈대를 완성했다. 그는 “동물이 화를 당하면 인간도 당하는 것이며, 나만 살겠다는 건 결국 공멸을 의미한다”며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이야기를 펼쳐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수공통전염병을 소재로 쓴 건, 그의 전 직장 덕이 크다. 오랜 간호사 생활을 한 그는 등단 10년차 늦깎이 작가다. 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때, 그가 살던 광주의 한 병원에는 이동식 컨테이너가 등장했다. 병상이 모자라 환자 수백명이 컨테이너에 줄지어 누워 있던 모습은 소설 속 한 장면이 됐다. “사실 이번 소설은 간호사 출신이라서 아이디어를 얻은 게 많아요. 기자로 등장하는 김윤주라는 인물은 제 성격을, 간호사인 김수진은 제 개인사를 반영한 인물이죠.”

미국의 추리작가 스티븐 킹을 ‘롤모델’로 삼는 그는 치밀한 구성에 신경을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 속 화양은 경기도 의정부를 변형한 공간이다. “우선 공간을 만들어두고, 그 상황에 맞는 인물을 집어넣어요.” 개썰매의 세계, 개 행동학 등 전문 영역의 내용도 등장한다. “책을 쓰기 전에 석달 정도 이론 공부를 했어요. 전문서적을 보다가 개와 인간의 특징을 모두 담고 있는 늑대개 ‘링고’를 만들 수 있었죠.” 생생한 동물묘사는 그의 성장 배경과도 관련이 깊다. “14살 때까지 전남 함평에서 자랐는데 개, 고양이, 칠면조, 닭 등 동물에 둘러싸여 자랐죠.” 두 고양이와 함께 글을 쓰는 그는 10년째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캣 맘’이다. “작가보다는 소설가로, 소설가보다는 훌륭한 이야기꾼으로 불렸으면 좋겠어요.”

광주항쟁 사건일지를 참조한 이유 그는 전염병으로 봉쇄된 화양을 표현하면서, 광주항쟁의 사건일지를 가져와 참조했다.“정부가 군대를 움직였던 현대사의 한 부분이에요. 제가 살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고요. 어릴 때 어렴풋하게 조각난 기억을 맞췄어요. 소수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고 희생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막고 잊어라 하죠. 이런 희생을 당연히 생각하면 안 되죠. 배려, 이해할 수 있어야 하죠.”잔혹한 이야기를 담은 새 작품을 내놓으면서 “과연 독자가 좋아해줄까 좀 불안했다”며 “잔혹함 속에 숨겨둔 메시지에 주목해달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