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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슬랙커즈
2002-02-26

시사실/ 슬랙커즈

■ Story

운이 좋다면, 48일 뒤 대학 졸업장을 타게 될 삼총사 데이브(데본 사와), 샘, 제프. 이들은 폭탄소동, 전산망 해킹, 시험지 탈취작전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해 대학 4학년까지 진급해온 ‘커닝의 달인들’이다. 그러나 꼬리도 길면 잡히는 법. 기말고사장에서 옆자리에 앉은 미모의 여학생 안젤라(제임스 킹)에게 치근대던 데이브는 마침 그녀를 스토킹하던 변태, 이단(제이슨 스왈츠맨)에게 커닝현장을 목격당한다. 안젤라에게 전해준 전화번호와 이름이 적힌 시험지를 증거로 데이브와 그의 친구들을 협박하는 이단. 이단의 요구는 이들의 발빠른 정보수집력을 이용, 안젤라와 자신을 엮어달라는 것. 그러나 데이브는 임무를 망각한 채 안젤라와 사랑에 빠지고, 이 사실을 안 이단의 집착은 질투를 기름삼아 더욱 활활 타오른다.

■ Review 기우 하나. 이 영화를 <비포 선라이즈> <웨이킹 라이프>로 유명한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91년작 <슬랙커>와 혼동하지 않길 바란다. 또한 80년대 냉전체제 이후 무기력증과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90년대 젊은 세대, 즉 슬랙커(Slacker)들에 대한 보고서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21세기산 <슬랙커즈>는 발랄한 커닝작전에서 연애담으로 이어지는 예비 졸업생들의 소동을 다소 뻔뻔한 성적 조크와 엽기적인 행각으로 버무린 가벼운 섹스코미디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와 <아메리칸 파이> 사이에 착석한 <슬랙커즈>는 이야기보다는 유머스러하게 연출된 개별 장면들의 재미에 더욱 공을 들였다. 뇌쇄적인 요부와 마조히즘적 댄스 파트너로 등장하는 카메론 디아즈와 지나 거손 카메오 출연에서 눈치챌 수 있듯, 어느 하나 평범하지 않은 캐릭터들을 그저 몇몇 신을 위한 소품처럼 사용하고 버린다. 이든의 상상 속 세명의 남녀가 뒤엉킨 거북한 키스신이나, 처음 보는 남자 앞에서 신음소리까지 내가며 기구를 이용한 마스터베이션을 멈추지 않는 안젤라의 룸메이트, 자신의 ‘그것’에 손가락인형을 끼운 채 합창을 즐기는 제프의 모습 등은 두서없이 여기저기에 배치된다. 이렇게 솔직함을 넘어 과장된 뻔뻔스러움으로 승부하던 영화는 결말에 이르자 서둘러 모범생의 옷으로 갈아입고 지퍼를 목끝까지 치켜올린다.

단풍으로 물든 미국의 가을캠퍼스가 만들어내는 평온한 풍경이나 여전히 귀여운 매력을 풍기는 <데스티네이션>의 데본 사와, <아메리칸 파이>의 미나 수바리를 연상시키는 금발의 제임스 킹 등 파릇파릇한 청춘들을 만나는 재미는 쏠쏠하지만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들로 가득한 이 영화는 그다지 모범답안을 베낀 것 같지는 않다. 백은하 luc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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