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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권혁웅(시인) 2014-05-30

[내가 왜: 화난는지 몰라]

겉뜻 상대방의 잘못에 대한 추궁 속뜻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고백

주석 여자는 단단히 화가 나 있다. 그녀 앞에서 남자는 점점 더 작아진다. 사과해야 하는데,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잘못을 지적해주면 좋으련만 웬걸, 그녀는 오히려 반문한다.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모른다는 대답은 불쏘시개다. 그녀의 분노는 더욱 맹렬히 타오를 것이다. 그렇다고 안다고 해서도 안 된다. 더 무서운 질문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알면 말해 봐. 남자는 자신도 모르는 얘기를 아는 사람이 되어, 무서운 불가해(不可解) 앞에 선다.

남자는 지금 심문을 받고 있다. 실제로 법도 저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저 질문을 심문대 앞에서 말하면 이렇다. 네 죄를 네가 알렷다! 이 호통이 감추고 있는 것은 법이 내 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내게 묻는 거지. 너는 네 죄를 아느냐고. 나는 도무지 모르겠다고.

법은 원래가 모순투성이다. 법은 ‘하라’(Do)는 당위 명령과 ‘하지 말라’ (Do Not)는 금지 명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둘은 같은 것이다. 법은 동굴 속에서 술래잡기하는 연인처럼 말한다. “안 돼요, 돼요, 돼요…” 여기서 ‘하지 말라’는 명령은 ‘하라’는 유혹의 다른 버전이다. 에덴동산의 진정한 교훈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은 먹으라는 명령과 늘 짝을 지어 온다. 그 맛을 볼 때까지 에덴동산의 시간은 정지해 있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으므로, 그 자신이 모순으로 가득 차 있으므로, 법은 호통은 치지만 자신이 잘못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아니,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법은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사과하고 심지어 울기도 하지만, 결코 자신의 과오를 시인하지는 않는다. 법은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징벌을 말하면서도 그것이 모순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법은 그 자신이 불법이라는 사실도 모른다.

따라서 여자가 내가 왜 화났는지 몰라? 라고 물을 때 “알아” 혹은 “몰라”라고 대답하는 것은 올바른 대답이 아니다. 그 대답은 여자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정당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남자는 이렇게 대답해야 옳았다. 자기가 모르는 걸 왜 나한테 물어?

용례 그녀의 저 “왜?”라는 질문은 결코 해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이라는 점에서, <아바타>에서 인간이 그토록 얻으려 애썼던 광물인 ‘언옵타늄’과 같은 것이다. 광물에 그 이름이 붙은 순간, 언옵타늄은 끝내 인간의 것이 되지 못할 운명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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