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곡사의 아수라장
[곡사의 아수라장] 분탕질의 추억
김곡(영화감독) 2014-06-13

대한민국 영화계의 ‘겐세이맨’ 조희문

공공미디어센터 미디액트는 조희문 전 영진위 위원장에 의해 지원이 끊겼다.

우연히 접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장 공모 기사. 영화진흥을 위한 국가기관에서 짱을 뽑는 중이란다. 이번엔 잘 뽑아야 한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들었다. 이런 자동반사적 리액션은 순전히 단 한분 때문이다. 우린 그분 때문에 영진위의 가치를, 짱의 가치를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 바로 조희문이다.

1. 분탕질 비긴즈

내가 조희문을 처음 알게 된 건 스크린쿼터 논쟁이 뜨거웠던 2003년이다. FTA와 쿼터 축소를 트레이드하려는 노무현 정권의 정책에 반발해 모든 영화인들이 쿼터 사수를 외치던 그때, 쿼터 축소에 찬성하는 유일한 영화인이 한분 계셨으니 그분이 바로 조희문 교수였다. 논쟁은 당시 손석희의 <100분토론>까지 이어졌는데, 조희문은 정부관료와 함께 쿼터 축소 찬성 패널로 나왔더랬다. 정지영 감독님을 필두로 한 쿼터 축소 반대쪽의 주장은 명확했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오히려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것. 이에 조희문의 발언은 놀라웠다. 무슨 말을 했냐고? 솔직히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도 안 나는데 왜 놀랐냐고? 이런 식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하나의 안전장치만 가동하지 말고 여러 가지 다양한 정책을 통해서 한국 영화계가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뭥미? 스크린쿼터 얘기하자고 나왔는데 웬 뜬금없는 다양한 정책 타령인가? 게다가 뜬금없는 말을 왜 저리 길게 하는가? 교수라는 양반이 논점을 흐리고 시간만 지연시키는 물타기식 발언으로 토론을 망쳐놔도 되는 건가? 휴우, 한국영화를 싫어하는 영화인, 물타기를 구사하는 어용학자, 그것이 조희문의 첫인상이었다.

2009년 조희문이 드디어 빅 놀라움을 선사했다. 무려 영진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것이다. 뭐? 스크린쿼터 축소를 찬성하던 양반이 영진위 위원장이 되었다고? 영화인들은 우려했고, 그 우려는 곧 현실로 드러났다. 조희문이 영진위 위원장으로서 가장 먼저 그리고 유일하게 했던 일은 영화 죽이기였다. 영화단체, 영화제, 시네마테크 등의 지원을 축소하거나 중단했으며, 영화아카데미와 영상원 등 영화 교육기관들의 구조조정을 감행했고, 영화제작지원사업에도 실질적으로 겐세이(관여라는 말은 관대하다. 너무나 치졸한 방법으로 조작했기에 겐세이란 단어가 어울린다)해서 분탕질을 한 것이다.

하지만 겐세이의 증거들이 속속 밝혀졌고, 반발과 사퇴 요구가 터져나왔다. 당시 이명박의 문화 죽이기 정책을 비판하던 민주당에도 영진위 사태는 좋은 건수였다. 조희문은 국정감사에서 영진위 파행운영에 대한, 나아가 유인촌과 이명박의 문화정책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막아내야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그의 물타기화법은 여전했다. “심사과정에 개입했습니까? 안 했습니까?”란 문책에, “저는 영진위 위원장으로서 다양한 목소리들을 수렴하는 데 힘썼고 심사에는 관여한 적이 없으며 심사결과가 바뀌었다면 심사위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이 수렴되는 과정에서 유동적으로 결과가 변화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점을 이 자리에서 밝힐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제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고 싶습…” 요딴 식으로 물타기와 시간지연 작전을 구사했으나, 죄의 유무를 따지는 국정감사에선 통하지 않았다. 야당의원들이 입을 모아 “모랄해저드가 심각하니 사퇴하라”고 소리쳤고, 조희문은 그 겐세이적 언동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1년간의 분탕질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의 분탕질은 위원장 사퇴로 일단락되었으나, 분탕질이 남긴 흔적은 참혹했다. 많은 영화단체나 영화제들, 영화 교육기관들이 신음하는 가운데, 가장 많은 피와 눈물을 흘린 곳은 단연 공공미디어센터 미디액트였다. 시민들의 참여와 활동을 고무하는 퍼블릭액세스 운동의 중추 역할을 담당했던 미디액트는, 조희문의 분탕질에 의해 지원도 끊기고 광화문 터전에서도 쫓겨났던 것이다. 지금은 신촌에 둥지를 틀고 꿋꿋이 제 길을 가고 있지만, 난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분해서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다.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

2. 데스 오브 분탕질

그렇게 행정가로서의 생명은 끝이 났고,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지던 그는, 올해 초 다시 우리를 놀래켰다. 임용비리에 연루되어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된 것이다. 당시 상명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오지랖병을 못 고쳤는지 저 멀리 영상원 임용비리에 연루되어 적발된 것이다. 쌤통이라는 분들도 있었지만, 난 억울했다. 영화죽이기에 열을 올렸던 인간이 고작 뒷돈 받은 걸로 잡히다니. 살인범이 사기죄로 잡힌 것만 같아, 제대로 된 형량을 받지 못한 것 같아 억울했다.

어쨌든 구속됐으니 이젠 어떤 아카데미에서도 그를 불러주지 않으리라. 학자로서의 생명마저 끝났다고 조희문이 슬퍼하고 있다면 난 말해주고 싶다. 슬퍼할 필요 없다고. 당신의 학자로서의 생명은 이미 죽어 있었으니까. 그 증거는 무수히 많겠지만, 그중 으뜸으로 최근 발견한 이 유튜브 영상을 꼽고 싶다. 아아,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 케이블방송에서 정기적으로 영화비평을 하는 꼭지였는데, 그는 거기서 오멸 감독의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이하 <지슬>)를 논평했다. 그는 “<지슬>은 강자와 약자의 이분법적 프레임을 관객에게 강요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진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며, 그 근거로 제시한 논지는 “<지슬>은 흑백영화기 때문에 흑백논리가 강하다”였다. 아아, 이게 무슨 개똥 같은 비평인가. 흑백영화가 흑백논리면, 컬러영화들은 죄다 톨레랑스냐? 반박하기에도 민망한 이 비평에서 나는 조희문의 여전히 안 먹히는 물타기화법을 재확인했고, 도저히 학자의 것이라고 보기엔 부끄러운, 조박하다 못해 유아적인 씨부림을 보았던 것이다(설마 하는 분들이 계실지 몰라 링크를 공개한다. http://www.youtube.com/watch?v=v-a8RKGO1SQ).

그리고 이후에 발견한 기사는 더 안습이었다. 구속되기 석달 전 어느 세미나에서의 그의 어록을 발견했는데, 내용이 가관이다. 재계의 보수단체가 ‘바른용어쓰기’ 세미나를 열었는데 문화계 대표로 참석한 조희문은 “표현의 자유를 선동의 자유로, 문화제는 시위현장공연으로, 문화는 선전기반환경으로 바꿔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화가 선동이라고? 그럼 문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모두 선동꾼이고,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모두 조종당하고 있단 말인가? 이건 <지슬> 논평의 물타기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문화예술의 가치를 폄훼하여 보수권력에 기생하려는 기회주의적 파시즘에 가깝다. 더 웃긴 건, 조희문의 발언은 다른 패널에 비해서도 강성의 발언이었는데 재계가 주관한 세미나라서 문화계 인사가 그토록 강성 발언을 할 필요까진 없었다는 사실이다. 왜 그런 불필요한 강성 발언을 쏟아냈을까. 아직도 행정가로서의 야욕이 남아서였을까. 어차피 영화계에선 어디에도 갈 데가 없으니, 재계단체가 좋아할 만한 발언을 하면 어디 한자리라도 꿰찰 수 있다는 얄팍한 셈이었을까. 어쨌든 조희문의 이 선동의 자유 발언은 그가 구속 전에 한 마지막 공식발언이 되고 말았다. 구속으로 그의 생명이 끝났다고 본다면, 그의 유언이 되어버린 셈이다. 아아, 유언이 표현의 자유를 선동의 자유로 바꿔 부르자는 거라니 참으로 장렬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3. 메멘토 분탕질

조희문은 죽었지만 우리는 그분의 죽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를 기억해야 한다. 첫 번째 기억사항: 학자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그 상상력은 창작자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지슬>을 보고 흑백영화의 흑백논리가 어쩌고 할 거면 교수가 아니라, 신입생 전공필수 ‘영화의 이해’부터 다시 들어야 한다.

두 번째 기억사항: 행정가는 자신의 생각을 집행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는 사람이다. 여러 사람의 말을 듣고 이해관계를 따져서 최대한의 이익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최대한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 심사위원에게 전화해서 본인이 관여한 작품을 지원하라는 둥 헛짓거리할거면, 당장 초등학교 도덕수업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 물론 교학사 교과서로 공부하면 아니된다.

세 번째 기억사항: 영진위가 그만큼 중요한 기관이다. 대한민국 영화계가 흥하고 있어서 자생력이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흥하는 만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커지고 있다. 자생력이 죽고 있다는 말과도 통한다. 부와 빈의 밸런스를 정부가 관리해야 한다. 영진위, 할 일이 많다. 조희문 같은 겐세이 족속이 위원장으로 다시 온다면 자멸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영진위 위원장, 이번엔 제대로 뽑길 바란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