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별 볼 일 없네
권혁웅(시인) 2014-06-13

[ 별 볼 일 엄ː네 ]

겉뜻 중요하지 않거나 매력적이지 않다 속뜻 사랑하는 이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

주석 ‘별 볼 일 없다’를 ‘별로 볼 만하지 않다’로 읽는 데 반대다. 저 ‘별로’는 부정어와 함께 쓰여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하지 않다’란 뜻을 만든다고 한다. 고작 부정하기 위해서 ‘별’과 ‘보다’가 동원된다는 말인가? 저 예쁜 두 개의 입술소리(‘ㅂ’)와 든든하게 떠받치는 세 개의 설측음(‘ㄹ’)과 저 귀여운 모음들(‘ㅕ+ㅗ+ㅣ’)이 무시하고 부정하고 거절하기 위해 낭비된다는 말인가?

저 별은 우리가 아는 밤하늘의 그 별이어야 한다. 그리고 별들이 우리를 낳았다. 우주가 처음 탄생해서 38만년까지는 가장 가벼운 원소인 수소와 헬륨만 있었다고 한다. 더 무거운 원소들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별의 탄생을 기다려야 했다. 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핵융합반응이 원자핵을 결합시켜 다른 원소들을 낳은 것이다. 별의 질량이 커짐에 따라서 탄소와 산소가, 네온과 나트륨과 마그네슘과 알루미늄이, 규소와 황과 철이 생성된다. 철보다 무거운 원소는 적색거성이나 초신성폭발에서 만들어진다.

우리 생명체를 이루는 주요 원소는 산소, 수소, 탄소, 질소, 인, 황, 철 등이다. 수소를 제외하면 모두가 별에서 온 원소들이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별의 자식이며, 이것은 비유가 아닌 엄연한 사실이다. 큰 별이 생명을 마감하면서 초신성 폭발로 우주공간에 퍼지면 그 잔해에서 새로운 별이 태어난다. 우리 태양계도 그렇게 해서 생겨났다. 다른 별의 잔해가 없었다면 우리 몸을 이루는 원소들은 존재할 수 없었다.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도 그렇게 별이 되었을 것이다.

세월호의 세월은 ‘歲月’이 아니라 ‘世越’이라고 한다. 세상을 넘어가겠다니, 저 배는 어떻게 저런 잔인하고 어처구니없는 메타포를 달고 출항했을까? 그 배를 타고 아이들은 별로 돌아갔을 것이지만, 우리는 안다. 저 별은 세상을 떠난 곳에, 세상 너머에 있지 않다. 아이들이 바로 별이며, 그 별은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우리 모두가 별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떠나보냈던 바로 그 아이들의 자식이다.

적어도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이 일상어는 새로운 뜻을 갖게 되었다. 별 볼 일 없다고? 저 아이들을, 저 빛나는 별들을 다시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안다. 저 아이들은 자본과 권력과 무력이 여전히 지배하는 이 보잘것없는 세계보다 훨씬 오래도록 빛나리라는 것을. 문명은 만 년을 조금 넘었을 뿐이지만 태양은 그보다 5000배나 오래 되었으며, 문명은 잘못 다룬 원자력 하나에도 멸망할 테지만 태양은 앞으로도 수십 억 년 동안 유지될 거라는 걸.

용례 <별에서 온 그대>의 도민준(김수현 분)이 400년 전 지구에 도착하고서도 천송이(전지현 분)보다 연하남이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저 아이들도 그럴 테지만 ‘별그대’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