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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사의 아수라장] 해악성 트로이카가 완성됐다
김선(영화감독) 사진 백종헌 2014-06-27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영화 속 언어표현 개선’ 토론회 관람기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에서 이메일이 하나 왔다. ‘영화 속 언어표현 개선’ 토론회에 초대한다는 이메일이었다. 순간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영등위는 제한상영가 남발과 납득 불가한 등급 분류로 검열기관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영등위가 이젠 아예 오명을 팩트로 인정하듯, 대놓고 사전개입해서 언어를 순화하겠다고 한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토론회에 가고 싶어졌다. 영등위가 얼마나 언어를 사랑하는지 보고 싶어서.

하지만 뻔하다. 토론회에 가지 않아도, 제목만 봐도 영등위의 목적은 뻔해 보인다. 영화 속 언어표현을 빌미로 등급 분류를 강화하겠다는 거다. 선정성과 폭력성은 이미 많이 걸고 넘어졌으니, 언어라는 새로운 트집거리를 잡아서 영화계를 옥죄려는 거다. 이로써 영등위는 등급 분류의 세 가지 기준 트로이카를 완성한 것이다. 선정성, 폭력성, 언어. 그리고 이 트로이카 완성의 첫 공표가 이번 토론회임이 틀림없다.

토론회에 갔다. 예상대로, 토론회는 영등위의 등급 강화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첫 운을 뗀 박선이 영등위 위원장은 “영화계에 개입할 의도도 없고 영화를 순화할 의도도 없고, 단지 언어적인 측면에서 등급 분류를 고민해보는 자리”라고 말했지만, 거짓말이었다. (언어를 고민하자며 언어로 기만하다니, 못돼도 너무 못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토론회의 발제문들은 하나같이 등급 분류 강화를 통해서 장기적으로 언어를 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등급을 강화하면 자연스럽게 영화 제작자들이 (더 낮은 등급을 받기 위해서) 자체검열을 하게 될 것이고, 영화 속 언어가 순화된다는 논리였다. 한마디로 영등위의 무소불위의 무기, 등급을 좀더 강하게 휘둘러보겠다는 결의의 장이었다.

사실 이런 반문화적인 전략을 (이렇게 비싼 프레스룸을 빌려 세금 낭비를 하면서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더 어이없던 것은 그 전술적 허접함이었다. 토론회의 발제문을 보자니, 하나같이 고등학교 토론반 수준의 허접한 발제문들이었고, 말이 토론회지 패널들이 자기 생각을 떠드는 셀프 웅변대회에 가까웠다(대학원 수업도 이 정도는 아니다. 증말).

여러 가지 허접한 발언들이 많았는데, 생각나는 것부터 적어보면, 우선 고려대학교의 윤영민 교수의 욕설의 상-중-하 분류 발제다. 욕설의 강도와 빈도를 상-중-하로 구분해서 가장 강한 욕설 정도를 보이는 영화에는 더 강한 등급을 줘야 한다는 주장인데, 이보다 더 1차원적으로 영화를 사고하는 건 불가능하단 생각이 든다. 등급의 기준도 세부적으로 나눌수록 모호해지고 복잡해지는데(그래서 언제나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은데), 욕설이 등급 결정의 준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저분은 과연 대학교수가 맞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또한 윤영민 교수는 “영등위의 최근 등급 결정이 일관되지 못하다”라고 지적하면서, (욕설의 강도와 빈도가 높은 괘씸한 영화들에) 더 강한 등급 분류를 내려달라는 훈훈한 셀프 비판을 잊지 않았는데, 이런 덕담 현상은 다음 발제자에게도 일관되게 드러났다. 다음 발제자는 영등위 심의위원 노영란씨였는데, 그녀는 “욕설은 글씨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은 다르다”면서 아예 한국영화 속 욕설 장면을 편집해서 틀었다. 아름다운 영화를 욕설이 망치고 있다는 취지에서 욕설 장면만 편집해서 튼 것인데, 제물이 된 영화는 한가인의 “좆같애 씨발” 대사가 나오는 <건축학개론>, 마동석의 “자이리톨 뽑아서 뽀사뿌리기 전에 닥쳐라. 씨방새아” 대사가 나오는 <통증>, 중학생들끼리 싸우며 “눈 깔어. 뒤질래, 병신새끼야” 대사가 나오는 인권영화 <어떤 시선> 등이었다. 영화의 욕설만 떼어서 욕설의 해악성을 시청각적으로 훈육한 (아, 이 영화의 감독들이 알면 얼마나 분노스러울까. 만약 내 영화가 저 자리에서 욕설의 예로 제시되었다고 하면 바로 들고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씨발) 이분이 특히 강조한 것은, 청소년영화의 욕설 예방이었다. “요즘 영화는 극장에서의 선택이 아니라 IPTV 등 비자발적 시청이 있을 수 있으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영화에선 언어를 더 순화해야 한다”는 개입 발언의 근거는 놀랍게도 본인 초딩 아들의 말버릇이었다. 요즘 당신 아들의 말버릇이 “개좋아”, “개맛있어”, “개재밌어” 등 “개”라는 접두어를 말마다 붙이는 건데, 그것이 듣기가 너무 싫더라는 것이다. 아들의 말버릇을 고치고픈 개인적인 욕망을 대한민국 등급 시스템에 적용한 것이 무척이나 황망했다.

다음 발언자는 탁틴내일이라는 청소년문화센터의 이현숙 대표의 발언이었는데, 청소년 폭력이 영화 속 욕설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걸 들으며 어느 시대에 살고 계신 분인가 의아스러웠다. 탁틴내일은 청소년들의 성폭력을 상담하고 치료해주는 일도 한다고 들었는데, 성폭력이라는 민감하고 위중한 사안을 다루는 단체의 대표가 저런 근시안적인 시각을 지녔다는 게 놀랍고 안타까웠다.

하지만, 나는 단언컨대, 앞의 그 어떤 발언들도 이분의 발언만큼 놀랍지 않았다. 이분의 발언은 이번 토론회에서 나왔던 그 어떤 발언보다 허접했으며, 심지어는 내가 <자가당착: 시대정신과 현실참여> 제한상영가 행정소송을 하면서 들어왔던 박선이 위원장의 그 어떤 궤변보다 더 궤변적이었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이런 발언을 한 분이 영화평론가란 사실이다. 바로 김시무 영화평론가다. 김시무 평론가는 자신도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면서 언어순화 역시 옹호하는 이중적인 입장”이라고 운을 띄우며, “무엇보다 영화 제작자들이 언어순화에 힘써야 한다”고 영화 제작자들의 자체검열을 우선적으로 제시했다. 토론회에 참여한 유일한 영화인이다 보니 영화인을 대변해서 말한다는 게 영등위의 등급 강화 발표회의 취지에 완전하게 부합하는 발언이 되고 말았는데, 그건 그렇다쳐도, 이후에 말씀하신 근거들이 허접해도 너무 “개허접”했다. “얼마 전 장훈 감독의 <고지전>을 케이블 방송에서 시청하게 되었는데, 욕설이 너무 많아 ‘삐∼’ 처리가 빈번하게 되다보니 영화 시청이 불편하다”는 게 그 근거였다. 즉, 온전한 TV방송과 시청을 위해서라도 영화 속 욕설을 줄여야 한다는 거다. “극장 상영 외의 방송까지 감안해서 영화를 만들어야 현명한 영화 제작자”라는 조언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방송에서의 ‘삐∼’ 처리를 방지하기 위해서 욕설을 줄여달라니. 그러나 그의 궤변은 이제 시작이었다.

김시무 평론가는 나름 영화쟁이다운 등급제도 분석을 잊지 않았는데, 미국 등급 분류표와 우리나라의 등급 분류표를 비교하며 “미국의 등급은 5개이고, 우리나의 등급은 (제한상영가가 현실적으로 상영 가능한 등급이 아니므로) 4개뿐이기 때문에, 미국에서 18세로 분류되는 영화가 우리나라에선 12세로 분류될 수 있다”며 등급 강화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제한상영가의 현실적 폐해 때문에 오히려 등급을 강화해야 한다니, 실로 놀라운 궤변이 아닌가. 제한상영가라는 치명적 오점을 오히려 방어와 공격의 준거로 사용하는 저 아스트랄한 궤변. 수학여행에서 참사가 벌어졌으니, 수학여행을 금지한다는 충격적 궤변에 버금가는 클래스. 아마 궤변의 왕 박선이 위원장도 처음 들어보는 신선한, 그리고 지금의 영등위에 전략적으로 꼭 필요한 궤변이었으리라. 벌써부터 박선이 위원장의 함박웃음이 눈에 선하고, 김시무 평론가님은 조만간 영등위의 심사위원으로 추대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해본다.

이런 허접한 발언과 궤변들이 난무하던 영등위의 토론회가 끝날 때쯤,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무의미해 보이는 이벤트가 실제로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다시 말해, 논의들이 허접할수록 영등위의 등급 강화의 정당성이 더 확립되는 건 아닐까? 왜냐하면 등급 강화는 논리가 필요 없으니까. 그렇다. 허접에 논리가 없듯이, 폭력에도 논리가 없다. 지금 영등위의 등급 강화는 영화계에, 나아가 볼 권리를 지닌 관객에게 가하는 폭력이며, 그 폭력의 정당성은 허접한 논의와 궤변들에 기초한다.

이번 토론회는 영등위의 또 한번의 어이없는 짓으로 웃어넘길 일이 아닌 것 같다. 역설적이게도 욕설의 해악성을 알리는 척하며 관객에게 욕설을 해대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영등위의 폭력을 규탄해야 한다. 이제는 선정성-폭력성-언어의 “해악성 트로이카”로 영화를 죽이려는 저 말살정책을 막아야 한다.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보수정권 믿고 까불고 있다면 판단착오랍니다. 얼마 못 갈 거 같잖아), 영등위의 이번 토론회, 아니 등급 강화 발표회의 해악성에 제한상영가를 내려야 한다. 금지되어야 할 것은 영화 속 욕설이 아니라, 영화 속 욕설을 이용해 관객의 볼 권리를 뺏으려는 저 영등위다. 영등위는 영화인들과 관객의 욕설이 실제로 물리적 폭력으로 바뀌기 전에, “개반성”하고 알아서 물러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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