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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구] 무지개 넘어 소년이 온다
윤혜지 사진 백종헌 2014-07-14

<내 심장을 쏴라> 여진구

정유정 작가의 <내 심장을 쏴라>에서 하늘로 날아오르기 전의 승민에게 수명은 말한다. “널 따라온 건 알고 싶어서야. 내가 뭘 원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단서를 찾을 수 있을까 해서.” 여진구가 수명의 자취를 쫓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자신의 “무지개 너머 세상”은 어떤 풍경을 품고 있는지 궁금하기 때문에. 한창 <내 심장을 쏴라>를 촬영 중인 여진구를 조금 일찍 불러냈다. 평범한 소년인 동시에 주목받는 젊은 배우의 일상과 비일상에 대해, 여진구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인터뷰 직전에 기말고사를 마치고 왔다고. 공부는 많이 했나. =사실 많이 못했다. 아… 성적이 걱정된다.

-배우로서 인정받고 있으니 공부까지 욕심내지 않아도 될 텐데. (웃음) 전에 심리학을 전공하고 싶다고도 공공연히 이야기했다. =공부를 놓치기는 싫다. 연기도, 공부도 할 땐 진지하게 한다. 심리학을 전공하겠다고 한 건 연기에 도움이 될 만한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다. 대학 생활을 꼭 경험해보고도 싶다. 노력을 하고 있기는 한데 글쎄…. (웃음)

-평범한 학생들의 시간이, 생활이 궁금한 건가. =그러고보니 그런가? 연기를 하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어도 재밌게 지냈을 거다. 지금 친한 친구들도 같은 동네에 살며 초등학교부터 쭉 같이 다닌 애들이다. 주변 친구들보다 빨리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건 기쁜 일이다. 우린 한창 진로를 고민할 나이니까. 예전엔 친구들이 내가 유명한 사람들 만나고 학교 빠지는 걸 부러워했는데 지금은 하고 싶은 일을 일찍 찾은 걸 제일 부러워한다.

-수학여행도 가봤나. =물론이다. 가능한 한 학교 행사에 빠지지 않는다. 수학여행 가서는 잠도 안자고 논다. 계속 친구들이랑 얘기하고 싶고 장난치고 싶다.

-촬영하지 않을 땐 어떻게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나. =혼자 있을 땐 기분이 많이 가라앉는 편인데 그것도 좋은 것 같다. 잠도 자고,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는다. 게임은 자주 안 한다. 취미에 한번 빠지면 잘 헤어나오지 못한다.

“보면 볼수록 노안이다! 여 배우 스스로도 인정한다. (웃음) 그런데 그게 열여덟살 배우한테는 엄청난 장점이 아닌가 싶다. 덩치도 좋고, 목소리도 근사하고, 벌써 남자 냄새가 나니까. 그 나이에 이십대 중반의 감정까지 소화하는 배우가 달리 누가 있겠나. 캐스팅하려고 만났을 때 ‘승민을 하라고 했다면 못했겠다. 수명이는 내가 잘할 수 있겠다’고 잘라 말하더라. 사실 캐릭터 자체만 보면 더 눈에 띄는 건 승민이잖나. 자기의 재능과 역량이 어떤 캐릭터에서 더 풍부하게 나타날지를 잘 알고 있었다. 표현만 하는 게 아니라 절제도 할 줄 안다. 그래서 나는 꼭 진구야, 안 하고 여 배우라고 부른다.” <내 심장을 쏴라>를 제작 중인 주피터필름 주필호 대표

-<내 심장을 쏴라>에서 짝이 된 이민기와는 <얼렁뚱땅 흥신소>에서 먼저 만났다. =민기 형은 내가 기억이 안난다더라. 사실 나도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때 나는 열한살이었다.

-수명의 별명은 ‘미스 리’다. 원작대로라면 가녀린 캐릭터라 여진구와 쉽게 매치가 안 된다. 머리도 긴데. =다들 그렇게 말한다. (웃음) 영화에선 원작만큼 가녀리지 않다. 머리는 가발을 썼다. 머리 길이?… 스포일러가 될까봐 말해도 될지 모르겠다. 허리까지 내려오진 않는다. (웃음)

-제작자인 주필호 대표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의 화이에게서 수명을 봤다”고 하더라. “수명을 연기하겠다는 이십대 배우가 거의 없었는데 여진구가 수명을 연기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줬다”고 했다. =캐릭터 자체에 흥미를 느꼈다. 정신적인 병을 앓고 있으면서 주변을 맴돌며 관찰하는 캐릭터다. 똑똑해 보였다. (웃음)

-승민 역의 이민기와 스물다섯 동갑내기 역할이다. =민기 형이 예전부터 계속 반말하라고 한다. 이제야 겨우 존댓말, 반말 섞어서 할 수 있게 됐다. 나이 차가 많이 나서 어려울 것 같았는데 형이 밝고 재밌게 잘 대해준 덕에 부담을 덜었다. 그래도 연기할 땐 그 캐릭터가 되니까 나이가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캐릭터를 만들 때 독하게 연습하기로 유명하다.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원이 주요 무대인데. =맞고 때리는 건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 때의 경험으로 크게 어렵지 않았다. 바쁘게 촬영에 들어가야 했던 상황이라 정신병원을 직접 찾아가볼 순 없었다. 치료받는 모습이나 약물투여 부작용에 관해 공부하고 싶었는데 알아보기가 힘들더라. 감독님께 조언을 구했더니 실제로 정신질환자 치료 경험이 있는 간호사님을 찾아봐주시기도 했고, 정신과 치료를 받아본 분을 소개해주셔서 여러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기존의 정신질환자 캐릭터와는 다르다고 생각해서 이미 나온 영화나 드라마를 참고하진 않았다. 캐릭터에 반영하진 않았지만 ‘흔들리는 눈빛’을 표현하기 위해 미국 드라마 <프린지>를 보기는 했다.

-정유정 작가의 원작은 얼마나 참고했나. =원작에 비해 조금 더 외향적인 캐릭터가 됐다. 제일 아쉬운 게 중요하고 좋은 대사를 어쩔 수 없이 놓고 가야 할 때였다. 소설 속에 좋은 말이 많아서 관객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영화로 만들기 위해 놓아야 하는 것들이 많아 어쩔 수 없었다.

-대사보다 내레이션이 더 많다. 말로써 드러내지 못하는 부분들은 어떻게 표현했나. =그래서 한 마디 한 마디에 의미를 담을 수 있길 바랐다. 초반에 캐릭터를 무겁게 잡았는데 감독님은 조금 더 밝고 가볍기를 원하셔서 같이 조율해갔다. 후반엔 대사가 좀 있다. 수명이 목소리를 내는 장면에서 내면적으로 큰 변화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관객도 그걸 느낄 수 있게 대사 톤에 많이 신경 썼다.

“테크닉도 테크닉이지만 배우가 가진 독특한 에너지가 있어 연기 외적으로도 좋은 기운이 발산되더라. 나의 ‘여진구 사용법’엔 조금 아쉬운 게 있었다. 장르나 당시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가볍고 웃을만한 게 많았다. 그런데 진구에게는 홍혜성 캐릭터가 시한부이니 직접 드러내지는 않되 그 운명을 안고 연기해달라고 했었다. 워낙 연기에 진지하게 임하는 친구라 하연수와의 멜로를 표현하는 데에도 의아해하는 게 많았다. ‘감독님, 저는 사랑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감정을 잘 모르겠어요’ 하더라. 요구한 게 많아 힘들고 어려웠을 거다. 미안함이 남는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진구가 이번만큼 가볍게 연기해본 적이 없었다는 데에는 개인적으로 의의를 두고 있다. 지금까지 힘 있는 연기만을 해온 진구의 첫 캐주얼 연기가 이 작품이었으니까.” <감자별 2013QR3>을 연출한 김병욱 PD

-지난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는 “고등학생일 때 어른을 연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스물다섯살의 수명이 과거의 모습을 보며 느끼는 감정들을 표현하기가 힘들긴 했다. <감자별 2013QR3>에서도 사랑이라든가, 하는 어른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웃음) 아무래도 배우에게 풍부한 자산이 되는 경험이 중요한 것 같다.

-지난 5월 종영한 <감자별 2013QR3>은 촬영 기간도 길었고, 일상적이면서도 판타지가 섞인 이야기라 연기하기에는 더 자유로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맞다. 정말 자유로웠다. 내 평소 모습을 보여준다 생각하고 편하게 했다. 감독님의 팬이기도 했고, 코믹한 연기를 해보고 싶었던 마음도 커서 참여했는데 정말 좋았다. 나도 모르게 대사톤이 진지하게 잡혀 있었던 것 같은데 <감자별 2013QR3>을 통해 많이 깨달았다. 웃고 웃기는 연기를 하는 게 화내고 우는 연기보다 더 어렵다. 정말 쉬운 연기란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함께 일했던 영화인들은 다들 “완성형”이라고 입을 모으던데. =완성이라니…. 나는 항상 내 캐릭터를 100%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해본 것뿐이다. 캐릭터들도 자기만의 삶을 갖고 있는데 얼버무리고 가게 되면 그 캐릭터한테 미안해진다. 대충 하다가는 금방 힘들어지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하고. 순발력으로 덮을 수 있는 건 없다. ‘진구가 여기선 집중하지 못했구나’ 하고 보시는 분들은 다 안다. 오히려 열심히 하더라도 대단한 선배님들이 보기에 쟤 별로 노력 안 하는구나 생각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당연하게 최대한을 하는 거다.

-내년이면 데뷔 십년이다. 기분이 어떤가. =크게 와닿지 않는다. 십년차 배우? 생각조차 해본 적 없다. (웃음)

“진구는 몸도 건강하지만 마음도 굉장히 건강한 친구라 인간으로나 배우로나 옆에서 오래 지켜보기가 참 좋다. 조언? 괜히 조언이랍시고 하는 게 배우로서 잘 성장하고 있는 그 친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내가 진구 칭찬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말해도 진구가 겉멋 들거나 우쭐해할 사람이 아니란 걸 잘 알아서다. 그 친구에게 필요한 게 있다면 자연스럽게 쌓여갈 삶의 경험뿐일 거다.”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를 제작한 파인하우스필름 이준동 대표

-지금은 작품을 직접 고르나. =다들 비슷할 거다. 시나리오 받게 되면 내 생각을 말씀드리고 출연을 결정한다. 내가 하고 싶고, 재밌게 할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하는 게 먼저지만 아직은 주변의 얘기도 많이 들으려고 한다.

-절대 못할 것 같은 캐릭터도 있나. =…무서운 거? (웃음) 아니, ‘절대’는 아니다.… 그런데 찍다보면 무섭지 않을까?… 아무래도 못할 것 같은데. (웃음) 블록버스터 같은 건 못할 것 같다기보다 진짜 힘들 것 같다. 배우들이 몸에 뭐 붙여놓고 쫄쫄이 같은 옷 입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뭔가 있는 것처럼 연기하고. 정말 굉장해 보인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아직 다른 시나리오는 아무것도 못 읽어봤다. 지금은 <내 심장을 쏴라>를 촬영 중이라 이것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무지개를 넘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처음엔 낯설고 두려운 일이다.” 수명의 첫 내레이션이다. 여진구에게도 ‘무지개’가 있다면. =처음 작품 들어갈 때 항상 그렇다. 막막하고, 잘 모르겠고, 이게 맞나 싶고. 그래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있더라. 많은 도움을 받아서 어떻게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주변에 감사하게 된다. 개인적인 모습 속에서 무지개를 찾는다면… 다이어트하는 날? 낯설고, 초조하고, ‘내일부터 할까’ 싶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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