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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특급칭찬
권혁웅(시인) 2014-08-15

[ 특끕칭찬ː ]

겉뜻 최상급의 칭찬 속뜻 일급칭찬

주석 드라마 <밀회>는 ‘천상천하 유아인독존’이나 ‘물광’ 같은 유행어를 낳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유행어는 ‘특급칭찬’일 것이다. 개인 오디션을 보러 온 선재(유아인)와 나란히 앉아서 피아노 연주를 마친 혜원(김희애), 선재에게 다가가 볼을 꼬집으며 말한다. “이거, 특급칭찬이야.” 이 말 때문에 수많은 애인들, 후배들, 제자들 볼이 수난을 당했지. 볼 꼬집기는 본래 체벌에 속하는데 어째서 최상급 칭찬으로 변했을까?

많은 이들이 평했듯이 둘의 연주 장면은 서정적이고 섬세하고 에로틱하다. 연주에 몰두한 선재와 달리 혜원의 눈은 자주 악보와 건반을 벗어나 선재를 향한다. 선재의 연주 실력에 놀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눈빛은 아련하다. 너는 연주에 몰두해 있구나. 나는 네게 몰두해 있어. 그래서 너를 잡을 수가 없구나. 지금의 너는 선율과 하나이고 너는 음악이니까. 연주가 끝난 뒤에야 그녀는 그를 꼬집는다. 꼬집는 건 비틀어서 잡기 혹은 틀어쥐기다. 저 단호한 손짓을 보건대 혜원은 선재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특급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특급(特級)이라고 쓰면 일등급 가운데 가장 좋은 등급을 말하며, 우리가 한우나 한돈에 흔히 붙이는 명칭이다. 선재의 볼살은 최고다. 그러니 뒤에 붙은 ‘칭찬’이란 말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이거 특급×특급(=초특급)이야. 손은 만지는 몸이고 볼은 만져지는 몸이다. 에로틱할 수밖에. 특급(特給)이라고 쓰면 특별히 준다는 뜻이다. 이번엔 ‘천상천하 유아인독존’에 빛나는 선재의 볼이 아니라, ‘물광’으로 빛나는 혜원의 손이 주인공이다. 이거, 칭찬으로 네게 주는 손이야. 이때의 손은 (선재가 나중에 연주할 곡 가운데 하나인) <반짝반짝 작은 별>이고 볼은 그 별이 뜬 발그레한 하늘이다. 에로틱할 수밖에. 특급(特急)이라고 쓰면 특별급행(特別急行)의 준말이며, 가장 빠른 운송 수단을 말한다. 연애의 세 단계(손을 맞잡는다, 입을 맞춘다, 손과 입이 아닌 부분을 맞댄다) 가운데 첫째와 둘째 단계를 단번에 건너뛰는 급행, 익스프레스(express)다. 빠르게 진도 나가게 해줄게. 이때의 손은 특급열차이고 볼은 그 열차가 가닿을 목적지다. 에로틱할 수밖에. 세 번째 뜻은 선재의 볼이 최종의 목적지가 아님을 말해준다. 둘은 아직 연애의 첫째와 둘째 단계,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그래서 그토록 두근거리는 것이다. 마음은 급하고 갈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특급칭찬은 아직 특급칭찬이 아니다. 그것은 일급칭찬이다.

용례 이 장면에 쓰인 곡은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환상곡>이다. 듀엣곡이 필요했다고 해도 왜 굳이 이 곡을 고집했을까?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이 아니고? 전자는 같이 앉고 후자는 따로 앉기 때문이다. 전자는 한배를 탈 수 있다. 반면 후자는 그다지 환상적이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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