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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 on] 우주적 흐름에 영화를 맡긴다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특별전 가진 키들랏 타히믹 감독

키들랏 타히믹은 필리핀 독립영화의 대부이자, 신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지난 30여년간 제3세계 영화를 대표해온 이름이기도 하다. 특별전에서 감독과의 대화를 진행한 시각예술가 허상범은 그와 그의 영화에 대해 “종종 스스로 민족문화에 대한 상징적 캐릭터를 만들고 그 인물을 현실로서 기록하는 미학적 전략을 취한다. <향기로운 악몽>(1977)에서는 최초의 우주인으로 버너 본 브라운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만들고 자신은 그 인물에 팬레터를 보내는 상황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특별전에서 열정적인 퍼포먼스까지 진행한 그는 한국 남부지역의 계단식 논이 보고 싶다며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마치 졸업생처럼 학사모를 쓰고 나와 진행한 퍼포먼스가 무척 인상적이다. (웃음) =할리우드 대학을 20년 만에 졸업했다는 의미다. (웃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다 필요 없고 우리 고유의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 기술적인 장비도 필요하고 이야기도 생각해내야 한다. 어렵지만 계속 고민해야 한다.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대나무 카메라가 바로 그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필리핀은 오랜 식민지 역사를 가지고 있고 언제나 외부 국가의 영향을 받았다. 그런 가운데 고유성을 고민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고유한 지역적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대해 큰 책임감을 갖고 있다. 필리핀 영화계 또한 섹스와 폭력이 빠지지 않는 할리우드식 상업적 영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관객이 좋아하는 그 모든 것을 배격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상업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절대적인 균형이다. 그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리핀에서도 한국 TV드라마 <대장금>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 또한 소중한 지역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매년 ‘대나무 카메라상’이라는 걸 만들어 필리핀의 젊은 영화인들을 돕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가진 <과잉개발의 기억>은 무려 33년에 걸쳐 만든 작품이다. =기네스북에 오르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고(웃음), 세상 모든 영화는 각기 다른 고유하고 독특한 엔딩을 가져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33년 전인데 엔딩에 이를 때쯤엔 내가 72살이다. 당연히 매일 영화를 찍은 게 아니라 1988년까지 찍다가 한동안 방치했다. 애가 셋이어서 아버지로서의 책임도 있었기에 다음에 찍자고 한 게 5년, 10년, 15년 계속 늘어났다. 고백하자면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방한한 적이 있고 영화제가 제작하는 디지털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다 무산된 적이 있다. 그것이 동기가 되어 나머지 부분을 계속 더 찍게 됐다.

-<누가 요요를 만들었나? 누가 월면차를 만들었나?>에 등장하는 필리핀 사람으로 보이는 성모 마리아나 로켓 연료로 사용되는 양파가 무척 흥미롭다. =필리핀 사람 80%가 가톨릭이라 아무 데나 돌 던져서 맞는 사람 다 가톨릭이다. 그래서 교황이 왜 필리핀에 오지 않고 한국부터 왔는지 모르겠다. (웃음) 성모 마리아라는 존재는 현실보다 상위 개념의 우주와 소통한다는 의미도 있고 여성주의적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15년 전 불교 신자가 됐다. 또 당시 세계적인 오일쇼크로 기름이 비싸서 그 대안 연료로 양파를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거다. 그 양파 때문에 성모 마리아가 눈물을 흘리는 건 추가적인 농담이다. (웃음)

-자신의 작품에 거의 대부분 내레이터이자 배우로 직접 출연했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궁금하다. =대부분 특별한 시나리오 없이 찍었다. 어떻게 그렇게 찍을 수 있냐고 물을지도 모르지만, 과정이 구조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따로 제작자가 없고 시나리오도 없으니 뭔가 서둘러 찍을 필요도 없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내적 동기를 반영할 수 있다. 더 크게 말하자면 우주적 흐름에 의해 영화가 만들어진다. 물론 대부분 허구지만 돌이켜보면 굳이 그 둘 사이에 경계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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