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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오! 마돈나] 뮤지컬계의 흑조

시드 채리스 Cyd Charisse

<밴드 웨건>

뮤지컬은 대개 해피엔딩이다. 우리가 들뜬 사랑의 행복에 빠졌을 때 노래하고 춤을 추듯, 뮤지컬은 그런 경쾌한 감정을 전면에 내세운다. 모든 어려움이 비현실적일 정도로 극복되고, 결국에는 주인공들이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띠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그래서 뮤지컬은 대체로 유쾌하고, 뮤지컬 스타들은 밝고 경쾌하다. 주디 갈런드의 천진한 표정, 줄리 앤드루스의 편안한 미소를 떠올리면 되겠다. 시드 채리스는 이들과 다르다. 보통의 뮤지컬 스타들이 ‘백조’라면, 채리스는 거의 유일한 ‘흑조’다. 어둡고, 종종 범죄적이다. 어찌 보면 필름누아르에 어울리는 배우가 타고난 춤 솜씨로, 뮤지컬의 전설이 되는 독특한 경력을 남겼다.

<사랑은 비를 타고> 속의 팜므파탈

시드 채리스의 이름을 알린 작품은 <사랑은 비를 타고>(1952)이다. 불과 10분 남짓 출연했는데, 자신의 스타성을 알리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주인공 진 켈리가 거의 완성된 시대극을 어떻게 현대 뮤지컬로 바꿀 것인지 상상하는 장면에서다. 보통 ‘브로드웨이 멜로디 발레’(Broadway Melody Ballet)라고 불리는 시퀀스다. 켈리는 이제 갓 뉴욕에 도착한 시골 출신 뮤지컬 지망생으로, 채리스는 갱스터의 애인으로 나왔다. 여기서 채리스의 아이콘인 긴 다리와 하이힐, 그리고 다리 전체를 드러내는 스타킹 스타일의 하의가 제시됐다(마돈나, 비욘세 등 수많은 뮤지션들이 흉내내는 그 스타일).

순진한 남자 켈리를 깔보는 듯한 시선, 마치 ‘사랑의 레슨’을 펼치듯 관능적으로 움직이는 몸동작, 특히 긴 다리로 켈리의 몸을 감싸는 동작 등은 ‘흑조’(黑鳥) 채리스의 캐릭터를 단숨에 각인시키는 순간이었다. 말하자면 이 장면은 뮤지컬 속의 필름누아르이다. 팜므파탈이 단지 춤만으로 한 남자를 얼마든지 추락시킬 수 있음을 충분히 보여줬다. 주로 밝고, 경쾌했던 뮤지컬이 한순간이지만 필름누아르의 범죄적인 관능에 못지않은 퇴폐미를 표현했는데, 이것은 채리스의 캐릭터에 크게 빚진 것이다. 말하자면 채리스는 뮤지컬 장르에 누아르의 범죄 정서를 이식한 독보적인 배우였다.

페티시를 자극하는 긴 담뱃대를 입에 물고, 켈리의 신체 일부인 안경을 자신의 허벅지에 비비는 동작은 아마 채리스의 ‘어두운’ 캐릭터를 구체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우연인지, 그때 채리스는 <판도라의 상자>(감독 게오르그 팝스트, 1929)에서 유명한 요부로 나왔던 루이즈 브룩스의 검은 단발머리 스타일을 하고 있다. 훗날 뮤지컬의 ‘검은 히로인’으로 성장하는 채리스의 캐릭터는 짧게 등장한 <사랑은 비를 타고>에서 날카롭게 예언된 셈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공동연출자인 진 켈리와 스탠리 도넌이 채리스의 필름누아르 성격을 간파한 셈인데, <밴드 웨건>(1953)의 빈센트 미넬리 감독은 이를 더욱 확대했다. <밴드 웨건>은 채리스가 주연으로 나온 첫 작품이다. 원래 발레리나 출신인 채리스는 여기서 자신의 발레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전반부는 규율과 격식을 갖춘 발레리나로, 그리고 후반부는 브로드웨이 출신 댄서인 프레드 아스테어를 만나 점점 자유로운 댄서로 변해가는 역할이다.

미넬리는 발레복의 채리스를 먼저 보여준 뒤, 나중에는 특유의 붉은 드레스와 스타킹 의상을 입은 ‘위험한’ 채리스를 부각한다. 특히 영화 속 영화로 유명한 ‘여성을 찾는 발레’(Girl Hunt Ballet) 시퀀스는 필름누아르의 공식에 따른 범죄물로 구성했다. 아스테어는 탐정, 채리스는 그 탐정을 유혹하는 팜므파탈을 연기한다. 채리스는 <사랑은 비를 타고>와 <밴드 웨건>, 이 두 작품으로 뮤지컬의 스타가 됐다. 성공은 순식간에 찾아왔지만, 그곳에 도달하기까지는 제법 긴 무명의 시간이 있었다.

채리스의 전설 두 가지

시드 채리스에게 따라다니는 전설이 두개 있다. 먼저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았다는 것이다. 채리스는 병약한 소녀였는데, 소아마비를 앓았고, 그래서 발레를 좋아했던 모친이 딸의 건강을 위해 발레를 시켰는데, 이 덕분에 다리가 멋진 배우로 성장했다는 이야기다. 극적인 반전이 강조된 성장기인데, 할리우드의 홍보 실력을 감안하면 전적으로 믿기에는 왠지 확신이 들지 않는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병약한 소녀가 발레리나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고, 채리스는 10대 때부터 프로 발레단의 단원이었다. 발레 실력 덕분에, 뮤지컬로 유명한 MGM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아서 프리드의 눈에 띄어 영화계에 데뷔했다.

두 번째는 다리에 수백만달러의 보험을 들었다는 이야기다. 1952년 MGM이 양쪽 다리에 각각 100만달러씩, 200만달러의 보험을 들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훗날 채리스는 인터뷰에서 그것 역시 할리우드 홍보의 과장된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도 사실 여부를 떠나 채리스의 다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충분히 설명되는 이야기인 셈이다. 유난히 긴 다리를 가진 채리스의 키는 175cm이다.

아서 프리드에 의해 발탁됐지만, 채리스의 출발은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 1943년 데뷔한 뒤 거의 10년간 단역, 조역에 머물렀다. <밴드 웨건>이 발표될 때, 채리스는 스타로선 비교적 늦은 31살이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매년 뮤지컬의 수작이 발표됐다. 미넬리 감독의 <브리가둔>(1954), 진 켈리와 스탠리 도넌 공동감독의 <항상 맑음>(1955), 루벤 마물리언 감독의 <실크 스타킹>(1957) 등이 이어졌다.

그런데 세 작품 모두 수작으로 평가받지만, 채리스의 ‘어두운 개성’을 살리는 데는 약간씩 모자랐다. <브리가둔>에서 채리스는 낙원의 순결한 처녀로, <항상 맑음>에선 뉴욕 광고계의 여성으로, 그리고 <실크 스타킹>에선 옛 소련의 강직한 공산주의자로 나왔다. 굳이 구분하자면 <실크 스타킹>의 공산주의자 캐릭터가 그나마 채리스에게 약간 어울렸고, 나머지는 다른 배우들이 하면 더 좋을 수 있는 경우였다. <실크 스타킹>에서 채리스는 이국 정서를 자극하는 소비에트 군복 같은 옷을 입고, 남자처럼 힘차고 절도 있는 춤을 선보였다.

뮤지컬 장르가 1950년대 후반에 사실상 사라지면서 채리스의 전성기도 끝나갔다. 여러 작품에 나왔지만, 니콜라스 레이가 감독한 범죄물 <파티 걸>(1958)이 뮤지컬 이후의 작품 가운데는 가장 빛난다. 필름누아르의 주인공 같은 역할인데, 이 영화에서 채리스는 마피아에 연루된 타락한 변호사(로버트 테일러)와 사랑에 빠진 유흥계의 여성으로 나왔다. 여기서도 채리스의 역할이 가장 돋보일 때는 무대 위에서 관능적인 춤을 출 때였다. 말하자면 채리스는 ‘흑조’로 나올 때 가장 자연스러웠고 또 가장 빛났다. 채리스는 뮤지컬 장르에서 ‘스타’로 성장한 유일한 흑조였다. 이 점이 채리스를 영원히 영화사에 남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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