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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x cross]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지금의 온도’로 그린다
이다혜 2014-09-22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만화가 아오노 슌주

사진 노마 아키라

도쿄 쇼가쿠칸(소학관) 출판사의 미팅룸에 두 남자가 함께 들어섰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어느 쪽이 만화가고 어느 쪽이 편집자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그 자신이 그린 만화책의 네모칸에서 슬쩍 빠져나온 것 같은 인상이면서도 “생긴 것도 다르고 절대 내 이야기가 아니고 전부 상상이고 망상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웃음 짓는 아오노 슌주는, 인터뷰 내내 진담과 농담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을 탔다. 그의 만화책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독자를 만화가에 대한 망상에 빠지게 만들 만큼.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제목이 재미있다. 고등학생 때 성적 안 나오면 부모님에게 하던 변명 같은 느낌도 들고. =처음 이 아저씨 이야기를 생각했을 때는 제목이 달랐다. 연재가 결정되면서 처음 단편으로 선보였던 타이틀이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이었고 그걸 장편 전체 제목으로 삼았다. 까부는 제목이 좋겠다 싶어서. … ‘최선을 다했어’라는 사람은 굉장히 많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럴 리가 없거든. 어쩌니 저쩌니 해도 결국 스스로는 여유를 갖고 하고 있을 테니까. 그래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쪽이 더 솔직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 제목 때문에 나에게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열심히 하는 사람 바보로 만든다고. 열심히 하지 않는 쪽이 더 멋있는 것 같냐고 말이다. 절대 그럴 리가 없잖아.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은 만화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남자의 고군분투기다. 자전적인 내용도 많겠다. =그건 일본 인터뷰에서도 자주 받는 질문이고 독자들도 자주 묻지만 그런 것은 일절 없고 (진지한 얼굴로) 보다시피 시즈오와 나는 외모도 전혀 다르다. (웃음) 전부 망상이고 상상이다.

-시즈오가 무엇을 위해 만화를 그릴까 갈등하고 자문하는 대목이 있다.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스스로를 격려하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뿐이라 그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 이런 걸로 돈을 받아도 되는 건가 자괴감이 들 때도 있어서 상품으로서의 만화의 밸런스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지금은 자신감을 갖고 하고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읽는 사람간의 거리를 줄여가야 한다. 그러면서 실력이 좋아지면 보람을 느끼게 되고. 독자에게 전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시즈오의 아버지와 딸, 편집자 등 주변 사람들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재미를 더한다.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주변에서 참고한 인물도 있나. =기본적으로는 전부 이미지다. 외모는 주변인과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내면, 인물상은 전부 상상이다.

-만화에는 담당편집자 무라카미가 등장한다. 지금 담당편집자 이름을 보니 가미무라 마사키씨다.평범하고 성실한 편집자 같던 극중 무라카미의 반전 강한 마지막을 보면 작가가 편집자에게 복수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자신에게 솔직하기로 결심한 무라카미는 직장을 그만두고 여장을 하고 술집에 나간다.-편집자). 그 이야기를 보고 담당편집자가 뭐라고 하지는 않았나. =(가미무라, 끼어들며) 없었다. 없었지. 멋대로 그려버렸다. (아오노) 음, 조금 전에 주변 사람들과 만화 속 인물들이 관련이 없다고 말했지만 가미무라씨만은 모델이 되어주었다.(웃음)

-2권에 실린 독자편지 부록도 재미있었다. “아버지의 책꽂이에 있었습니다”라는 17살 여고생의 글이 있고, 아버지가 보낸 “울었다”도 있다. 마치 만화 속 딸과 아버지가 보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건 전부 멋대로 쓴 팬레터다. 팬레터가 너무하다 싶게 오지 않기에 오겠지, 이렇게 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렸다.

-주인공 시즈오처럼 누구나 처음에는 데뷔를 목표로 하지만, 사실 데뷔를 한 뒤가 진검승부다. =나는 데뷔 전이 더 힘들었다. 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심했으니까. 데뷔 전에는 누군가 시켜주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한다면, 연재를 시작한 뒤에는 내가 책임을 전부 져야 하지 않나. 데뷔한 뒤가 더 낫다. 압박감은 있지만 그 질이 다르다고나 할까.

-한국에서는 웹툰이 인기다. 종이잡지가 아니라 인터넷으로 연재되는데. 일본에도 이런 변화가 두드러지나. =얼마 전까지 나도 웹에서 연재를 했었다. 일본도 점점 느는 추세다. 다만 그리는 쪽에서는 종이로 봐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왜 그런가. =그려보고 알았는데 스크롤하는 것과 종이를 넘기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스크롤을 하면 한 화면을 한 페이지로 보게 되지 않나. 잡지의 경우는 페이지를 펼칠 때 지금 보는 페이지 말고 그 맞은편 페이지도 무의식적으로 보게 된다. 그게 굉장히 중요해서, 페이지를 펼쳤을 때 전체적인 분위기를 생각해서 그리는 작가들도 많기 때문에 한 페이지씩 보게 되면 작가의 연출이 반감된다. 여기 이런 그림이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시선을 돌리는 것과 스크롤을 하면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그리는 쪽에서 말하면, 책을 펼치면 두 페이지가 되지만 그것을 한장의 그림으로 생각하고 작업하고 있다. 휴대폰으로 보면 그걸 반씩밖에 못보는 셈이 된다.

-작업할 때 일본에서 유행하는 것들에 신경쓰는 견인가. =…일단 내가 작업할 때는,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지금의 온도로 그린다’고 생각하고 있다. 월드컵이 있고 축구가 인기가 있다고 해서 그걸 그려볼까 하고 생각지는 않는다.

-한국 소설가나 만화가들을 보면 뜻밖에도 작품 활동하는 중에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당신은 어떤가. =엄청 많이 본다. 전혀 상관없다. 나는 나다. 남은 남. 어떤 영향도 없다.

-좋아하는 작가는. =지금이라면 만화잡지 <이키>에서 같이 연재하는 작가 중 마쓰모토 다이요, 한국에도 유명하겠지만 이노우에 다케히코도 좋아한다. 이전 작가 중에는 후지코 F. 후지오. 나의 만화의 시작점은 <도라에몽>이었으니까. 지금도 굉장히 좋아한다.

-(편집자 가미무라, 끼어들며) 시즈오와 도라에몽의 전체적인 모양새(실루엣)는 관계가 있나. =관계없다. 관계있을 리가 없잖아. (웃음) 실례라고.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은 후쿠다 유이치 감독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주인공을 연기한 쓰쓰미 신이치 캐스팅이 만화와는 많이 다르다. 일단 체형부터가 정반대인데. =영화에 대해서는 대체로 ‘노 터치’라고 할까. ‘전부 맡기겠습니다’ 하는 식이었다. 다만 캐스팅에 대해서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만화의 주인공과 닮은 배우는 쓰지 말아달라고. 시즈오에 관해서라면 말이다. 만화를 읽고 영화를 본 사람이 “만화 그대로다”라고 생각해서는 의미가 없다. 영화는 영화니까. 완전히 다른 것이니까. 다른 작품이라는 느낌으로 읽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종이와는 표현방식이 완전히 다르니까. 영화는 물론 봤지만, 다른 작품이라는 느낌으로 봤다. ‘아, 이런 얘기 들은 적 있어’ 하는 기분으로. 너무 만화와 똑같았다면 오히려 안달복달했을 것 같다. 그러니 영화는 영화, 만화는 만화.

-다음 연재작은 어떤 이야기가 될 예정인가.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에서 아저씨 이야기를 한번 해서 다음 작품은 아이 이야기다. 서로 비슷하지 않은 작품들이다. 비슷한 느낌의 작품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연재가 끝날 때는 독자로부터 편지가 많이 왔나. =전혀 오지 않았다. (웃음) 하나만 더 말해도 될까. 한국의 독자들이 볼 테니까. 일본에서는 내가 만화가로서는 그림을 못 그린다는 이미지가 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도 말라. 한국에도 그런 표현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일부러’ 그런 거다. 이유는 비밀이다. 아직은. (웃음)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

아오노 슌주 지음 / 세미콜론 펴냄

한국에서 8월 말 5권으로 완간된 아오노 슌주의 <아직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뿐>은 만화가가 되기 위해 마흔살이 된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둔 오구로 시즈오의 이야기다. 성매매업소에 갔다가 고등학생이 된 딸과 마주치고, 자신의 아버지와는 중2처럼 싸우는 시즈오는 매번 다른 만화 기획안을 들고 잡지사를 찾지만 번번이 거절당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장르를 바꾸고 작가 이름도 바꿔 써가며 노력한다.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는 가족의 눈초리에도 굴하지 않은 그는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해결하는데, 그러면서 사회에 부적응하는 청년 이치노사와와 친해지기도 하고 이혼한 뒤 아들을 그리워하며 지내는 죽마고우를 달래기도 한다. “중년의 절반은 실패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쉽게 굴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실패의 역사가 다릅니다.” 권말 부록으로 들어간 단편/외전들도 재미있는데, 5권 마지막에서는 시즈오의 딸이 과거에 겪은(하지만 아버지에게 이야기한 적 없는) 사연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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