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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 on] 영화관람, 일종의 종교 행위와 같아
송경원 사진 백종헌 2014-09-25

미디어시티서울2014에서 가상의 영화로 이뤄진 전시회 연 아티스트 호신텅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인 ‘미디어시티서울 2014’를 찾은 아티스트 호신텅은 마셜 매클루언의 꽤 오래된 명제를 물리적으로 실현시켰다. 이번에 전시된 ‘홍콩 인터-비보스 영화제’는 가상의 영화 28편으로 이뤄진, 영화 없는 영화제다. 홍콩현대미술상 전시와 상하이비엔날레(2012)에서 호평받으며 2012년 홍콩예술진흥상을 수상한 이 전시는 영화 스틸, 포스터, 시놉시스, 예고편까지 모두 가상으로 이뤄졌지만 실제 열리는 영화제와 다를 게 없는 효과를 발휘한다. 관객은 없지만 영화적 체험은 존재하는 색다른 경험의 끝에서 86년생 젊은 작가에게 영화의 오래된 미래에 대해 물었다.

-영화 없는 영화제란 컨셉이 신선하다.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해마다 홍콩국제영화제를 관람하면서 답답했던 부분이 있었다. 10곳이 넘는 장소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다 보니 분명 ‘영화’제인데도 원하는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더라. 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서 출발했다. 홍콩미술관 전시도 일부러 2012년 홍콩영화제 기간에 맞춰 진행했었다.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보다는 영화제를 체험한 관객에게 초점을 맞춘 작품이랄 수 있다.

-영화제를 자주 다니는 편인가. =즐기는 편이다. 타이베이영화제,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처럼 규모는 작아도 특색 있는 영화제에 주로 간다.

-가상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현실을 비틀고 패러디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은 아니다. 영화, 그리고 영화제에 대한 애정의 결과다. 부천이나 부산영화제에 비하면 홍콩영화제는 개성이나 비전이 부족하다.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분위기이고, 관객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아 아쉽다. 그래서 직접 영화제를 상상해봤다. 영화는 원래 가상이고 ‘홍콩 인터-비보스 영화제’는 가상에 대한 가상, 이중적인 체험을 재현한다.

-영화제 제목인 ‘인터 비보스’(Inter-vivos)는 어떤 뜻인가. =라틴어로 ‘삶의 사이에 있다’는 뜻이다. ‘사이에 놓인’ 것이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가상의 팸플릿에서 영화를 소개하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일부러 불일치시킴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싶었다. 서로 연관성 없는 다른 정보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과정에서 관객의 머릿속에 각각의 영화가 그려진다.

-영화 스틸, 포스터 등 전반의 이미지를 사진이 아닌 스케치로 표현했다. =대부분 종이 위에 연필이나 색연필로 표현했다. 가벼운 재료지만 선이 늘어날수록 무게감이 더해지는 게 좋다. 마치 글을 쓰는 것 같은 충족감을 준다. 같은 이유로 그림뿐 아니라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한다.

-개별 영화가 아니라 ‘영화제’를 통해 그러한 속성을 부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영화제에서의 체험이 일반 관람에 비해 특별한 점이 있나. =영화를 본다는 건 일종의 종교 행위와 유사하다. 교회에 들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어둠 속에 잠겨 누군가의 말씀을 듣는다. 저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빛과 소리를 그대로 따를 수도 있고 깊숙이 받아들인 뒤 반발할 수도 있다. 영화제는 2주에 걸친 긴 시간 동안 어둠에 잠긴다는 점에서 흔치 않은 경험이다.

-차기작도 영화를 주제로 한 작품인가. =이번 작품을 보고 나를 ‘필름 페스티벌 아티스트’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하나로 규정되는 걸 원치 않는다. 이전 작업은 ‘지도’를 주제로 했었고 다음 작품은 ‘사전’을 주제로 구상 중이다. 언어나 특정 이미지로 담을 수 없는 마음의 상태를 매번 다른 형태로 구현하고 싶다. 형태가 달라져도 주제는 변하지 않는다. 내 마음은 항상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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