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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의 탄생’ <마담 뺑덕>
주성철 2014-10-08

‘나쁜 남자 정우성.’ <마담 뺑덕>을 향한 가장 큰 궁금증은 역시 거기 머문다. 장동건에게 <위험한 관계>(2012), 이정재에게 <정사>(1998)와 <하녀>(2010)가 있었다면, 정우성에게는 딱히 성인 취향의 영화가 없었다. <마담 뺑덕>은 결국 정우성의 ‘멘탈’이 급격하게 붕괴되어가는 치정극이다. 게다가 미학적으로 연출했다기보다 실제 정사를 그려내려 한 것 같은, 지나치게 사실적인 정사 신에서 그야말로 ‘맨몸’을 드러낸다. 지금껏 우리가 알아온 ‘초딩 버전’의 <심청전>은 눈먼 아버지 심학규의 눈을 뜨게 하려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딸 심청의 희생을 다룬, 효(孝)를 칭송하는 텍스트였지만 <마담 뺑덕>의 무드는 사뭇 다르다. 피해자로 알고 있던 심학규가 가해자이기도 했으며, 그 속에는 적나라한 욕망과 집착이 숨어 있다. <마담 뺑덕>의 묘미는 바로 그 서로 다른 입장 사이의 ‘밀당’에서 온다.

불미스러운 사건에 휘말린 학규(정우성)는 지방 소도시 문화센터의 문학 강사로 내려간다. 그곳에서 그는 놀이공원 매표소 직원 덕이(이솜)를 만나고, 걷잡을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학규는 복직과 동시에 서울로 돌아가고 덕이는 버림받는다. 그렇게 8년이 흐르고, 그 사건의 충격으로 시력을 잃기 시작한 학규는 이제 코앞의 물건조차 식별하기 힘들 정도로 거의 볼 수 없게 된다. 그런 그 앞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한 덕이가 ‘세정’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해 옆집으로 이사 온다.

정우성의 변신만큼이나 놀라운 ‘발견’은 이솜이다. 학규에게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을 느낀 이후, 변해가는 모습은 나쁜 계모와 악처의 전형으로 알려진 뺑덕에게 새 기운을 불어넣는다. 그를 추동하는 힘은 ‘막장드라마’라는 화두와 김기영 감독, 혹은 박찬욱 감독의 <박쥐>(2009)를 떠올리게 하는 품격 있는 표현주의 치정극 사이에서의 긴장이다. 전자의 경우, TV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얼굴에 점만 찍고 다른 여자가 되어 나타난 구은재(장서희)처럼 덕이 또한 의상만 바꿔 입고 등장한다. 후자의 경우, 한 남자를 ‘공유’하는 것 같은 학규의 딸 청이와 세정의 모습이 부인(전계현)과 정부(윤여정)가 각각 한 남자(남궁원)를 하루 12시간씩 공유했던 김기영 감독의 <충녀>(1972)를 떠올리게 하는데, 덕이가 면도를 하다 벤 학규의 목의 피를 핥는 장면은 <박쥐>를 연상시킨다. <마담 뺑덕>은 원전에서 지나쳤던 ‘악녀의 탄생’이라는 관점에서 그 둘 사이를 오가는 야심만만한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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