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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십칠 대 일로…
권혁웅(시인) 2014-10-24

[ 십칠때일로 ]

겉뜻 전설의 싸움꾼이었다는 자랑 속뜻 겨우 철이 들었다는 고백

주석 누구에게나 왕년이란 있어서 술자리 어디서나 무용담이 차고 넘친다. 내가 말이야, 고2 때 우리 학교를 평정했거든. 17 대 1로 싸웠는데 말이야, 공중으로 이단옆차기를 하면 추풍낙엽처럼 녀석들이 떨어졌지. 싸움꾼의 이야기는 월척을 놓친 낚시꾼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손가락만 했던 고기가 점점 커져서 급기야 낚시꾼 자신과 키를 다투듯, 싸움 이야기에서는 상대의 수가 점점 늘어난다. 하나가 셋으로, 셋이 다섯으로, 다시 일곱으로… 급기야 17 대 1로. 그런데 이상하다. 18 이상은 없다. 왜 그 숫자는 늘 17에서 멈추는 것일까?

17은 소수(素數)다.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눠지는 수를 소수라고 부른다. 2, 3, 5, 7, 11, 13, 17… 이 모두 소수다. 그건 하나만 알고 자기만 안다는 뜻, 남들과 공유할 무엇이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매미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매미는 유충으로 땅속에서 오랜 기간을 보낸 후에 성충이 되어서 잠깐 번식하고는 죽는다. 매미가 지상에 출현하는 데 걸리는 햇수는 종에 따라 5, 7, 13, 17년이다. 매미는 어떻게 소수를 공부한 것일까? 이유는 두 가지, 천적과 다른 매미를 피하기 위해서다. 매미의 생활주기가 소수가 되면 천적과 만나는 주기를 최소로 줄일 수 있다. 게다가 다른 매미마저 소수 해에 출현한다면 종이 다른 매미끼리 만나는 시기가 훨씬 미뤄지므로 먹이를 두고 경쟁하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북미에 사는 13년 매미와 17년 매미는 221년에 한번 만날 뿐이다.

“내가 17 대 1로…”라고 말할 때, 소리나는 대로 적으면 대(對)가 아니라 때(time)다. 그는 자신의 무용담이 “내가 17(살) 때 (일어난) 일로…”라고 말하는 것 아닐까? 하나와 자기만 아는 나이, 1과 자기 자신으로만 나눠지는 삶, 바로 사춘기의 특징이다. 이걸 넘으면 어른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그는 더이상 어린 자신과 싸우지 않는다. 매미가 허물을 벗고 어른이 되듯, 그는 무용담의 세계를 벗어나 청춘과 비상(飛翔)과 고함과 짝짓기의 세계로 들어간다. 17 대 1의 세계는 저 뒤에 두고.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연소자다. 법이 허용하는 어른의 한도는 19살이다. ‘17 대 1’이 그 자신이 허물을 벗는 경계를 표현한다면, ‘19금’은 외부에서 부과한 사춘기의 경계를 표현한다. 왜? 19도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는 18이 있다. 온갖 수가 합성된 수다. 이미 17을 넘었는데 다시 19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저 말이 욕이 될 수밖에. 툭툭 튀어나올 수밖에.

용례 영화 <비트>에서 민(정우성)에게 한방에 나가떨어진 환규(임창정)의 입에서 저 대사가 나온다. “너 운 좋은 줄 알아. 지난해 17 대 1로 다구리치다가 허리를 삐끗했지. 그게 아니면 넌 뒈졌어. 이 새끼야.” 이런 뜻이다. 난 지난해에 사춘기 졸업했어. 그리고 지금은 열여덟이지. 난 청소년도 어른도 아니야. 그러니 욕이 안 나오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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