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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어처를 만드는 고집스러움

리얼리티에 근거해 설계된 <인터스텔라>의 기술적 성취들

“100% 구현할 수 없는 아이디어라면 과감하게 버린다.” 언젠가 스탠리 큐브릭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디어를 마음먹은 대로 완벽하게 영화로 구현할 수 없다면, 단 1~2%의 결함이 있더라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는 얘기다. 큐브릭의 1968년작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예로 들어보자. CG 기술이 태동하던 시절, 세트와 열악한 시각효과 기술만으로 인류의 우주탐험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내야 했던 큐브릭은 자신이 구현할 수 있는 것과 구현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일례로 모노리스의 존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모노리스는 고도의 발전된 존재로서 인류의 진화를 돕는 중요한 역할로 암시되지만, 제작 당시 기술의 한계로 인해 그 활약상이 다소 단조로운 방식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었다. 풍부한 영화적 자원과 기술이 뒷받침된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는 수십년 전 큐브릭의 영화가 재현하지 못했던 우주의 모습과 다양한 존재들을 보다 수월하게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놀란이 우주를 담아내는 방식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줬다던 큐브릭의 태도와 닮아 있다. 구현할 수 없다면 과감하게 버릴 것.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범주의 CG를 사용할 것.

크리스토퍼 놀란이 시각기술과 특수효과로 점철된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놀란이 CG와 VFX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아님을, 오히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구현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몇몇 장면들을 <인터스텔라>에서 보았다. 우주를 주요 배경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 중 하나는 우주의 전경이나 우주선의 동선 전체를 보여주는 숏이 전무했다는 것이다. 우주라는 광활한 공간의 아름다움과 유려함을 활용하려는 시도- 우주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많은 감독들이 쉽게 현혹되는 연출 방식이기도 하다- 가 이 영화에 없다. 모든 장면들은 지극히 주인공의 입장에서 경험하고 체험하는 것들을 전달하기 위해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인터스텔라>의 많은 장면들은 시점숏으로 촬영되었다. 우주선이 도킹을 하거나 탐사선이 행성에 착륙할 때, 심지어 지구에서 쿠퍼가 자동차를 타고 옥수수밭을 달릴 때조차 <인터스텔라>의 카메라는 대상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기보다 시점숏을 밀어붙인다. 마치 우주선의 몸통에 카메라를 부착하거나 보디캠을 사용해야 가능할 법한 이 장면들은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기 위한 지극히 현실적인 설계들이며, 보는 이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 걸어들어가 함께 사건을 체험하는 듯한 감흥을 준다. VFX를 사용하는 방식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 영화에는 <그래비티>의 경우처럼 라이팅을 정교하게 세팅해 얻을 수 있는 이미지보다 질감이 거칠고 때로는 콘트라스트가 극단적이나 보다 실제에 가깝다고 느껴지는 이미지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말하자면 <인터스텔라>의 욕망은 서사를 한층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에픽을 뒷받침하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에 있지 않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그것이 가능할 법한 장면인가라는 점이다. 리얼리티에 근거해 치밀하게 설계된 <인터스텔라>의 장면들은 화려한 시각효과로 점철된 뭇 우주영화들이 획득하지 못한 무게감과 위압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점이 SF 블록버스터로서 이 영화가 성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만든 대부분의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선 뉴 딜(New Deal)이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라즈 알 굴의 요새, <다크 나이트>의 배트텀블러 자동차 추격 신, <인셉션>의 병원 폭파 장면 등을 훌륭하게 구현해낸 이 미니어처 특수효과 회사는 <인터스텔라>에서도 놀란의 요청에 의해 인듀어런스호와 착륙선, 레인저호 등을 직접 만들었다. 미니어처의 도움을 받지 않더라도 모든 것들이 구현 가능한 시대, 여전히 빅어처(더이상 모형의 크기가 작지 않다)의 도움을 빌려 자신이 원하는 이미지를 얻고자 하는 놀란의 고집스러운 행보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인터스텔라>의 리얼리티는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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