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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의 승리를 외치다 <패션왕>

꿈은 없다. 이번 생은 망했다. 존재감 없는 성격 탓에 빵셔틀로 낙인 찍힌 기명(주원)은 강원도에서 서울 고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실생활에서도 패션에서도 짝퉁 인생이었던 그는 우연히 유명 간지남 남정(김성오)을 통해 멋의 세계에 눈떠간다. 남정의 쇼핑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멋의 신공을 익히게 된 기명은 신학기가 되자 학교에서 화려한 패션니스타로 데뷔하지만, 그를 견제하는 원호(안재현) 패거리에 의해 또다시 학교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시간이 흐른 후 패션 오디션에 지원한 기명, 과연 그는 이번 생에서 잃어버린 꿈을 찾을 수 있을까. 기안84의 동명 웹툰의 영화화로 유명세를 탄 <패션왕>이 찾아온다. 관전 포인트는 얼마나 똑같이 만들었나가 아니라 얼마나 영리하게 각색했느냐다. 영화와 원작의 싱크로율은 매우 낮은데, 오히려 이 점이 영화의 장점으로 빛을 발한다. 무기력하던 주인공에게 활력을 불어 넣었고 ‘기승전병’ 방식이던 웹툰의 불균질한 서사도 가다듬었다. 오리지널 병맛 스타일에서 불쾌한 부분을 최소화하되 원작이 견지하던 싼티 패션 스타일은 최대한 살렸다. ‘간지’라는 주제 구현에 불기피한 표현을 제외하고는 외래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브랜드를 대신해 ‘상표’라는 어휘를 고집한 것이 단적인 예다. 불필요한 고가 브랜드의 PPL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이 영화의 ‘찌질한’ 사치스러움이 나날의 일상과 동떨어진 하이패션의 럭셔리함과 다르다는 것이다. “상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입고 간지만 나면 그만이다” , “없는 자들이 있는 자들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멋(간지)뿐이다”라며 <패션왕>은 브랜드가 아니라 멋의 승리, 돈이 아니라 스타일의 승리를 외친다.

화려한 패션을 소재로 하여 꽃미모의 배우들을 동원했지만 영화 자체의 스타일과 주제를 확고하게 견지해간 영화 <패션왕>은 웹툰을 영화화한 영리한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원작과 사뭇 다른 캐릭터로 각색되었기에 주연배우의 싱크로율 비교는 무의미하다. 복학생 간지남으로 등장하는 김성오의 존재감은 상당히 압도적인데, 그는 기명의 성장을 돕는 스승이자 주제를 전달하는 범상치 않은 역할을 담당했다. 영화는 패션 배틀과 오디션을 활용했지만 누구를 영웅으로 만들지도 누구를 패배자로 만들지도 않았다. 촌스럽고 뻔뻔하지만 밉살스럽지 않은 데다가 어딘가 짠하기까지 하다. 의도적으로 과장, 억지, 개연성 없음을 영화의 전면에 드러낸 영화 <패션왕>은 외양으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허세와 위선에 대한 조롱이자, 무형의 가치인 패션을 무기로 한 전복의 놀이로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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