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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교회 오빠
권혁웅(시인) 2014-11-14

[ 교회 오빠 ]

겉뜻 알고 지내는 사이 속뜻 깊이 사귀는 사이

주석 여자 연예인들이 남자친구와 있는 장면을 들키면 그런다. “그냥 아는 교회 오빠예요.” 여기서 ‘그냥’과 ‘아는’과 ‘교회’는 모두 같은 뜻이다. 진지하거나 심각하지 않고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왜 꼭 교회가 등장할까? 절 오빠나 성당 오빠, 모슬렘 오빠나 만신 오빠가 등장하는 건 본 적이 없다.

파파라치의 시선을 먼저 따라가보자. 그러면 <처용가>의 21세기 판본이 펼쳐진다. 서울 밝은 달 아래 밤늦도록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아는 교회 오빠로구나. 둘은 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가? 아, 그냥 교회 오빠 거라니까! 본디 내 것도 아니고 뺏긴 것도 아니라니까! 뒷부분이 예전의 <처용가>와는 다르지만, 이해하지 못할 얘기는 아니다. 처용의 시선이 아니라 아내의 시선으로 본다면 불륜의 현장을 들킨 것도 아니니 신경질이 날 만도 하다. 왜 저런 난감한 자리에 교회 오빠가 출현할까? 교회의 독특한 가르침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육신이 선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기지만 육신이 자꾸 죄를 짓게 만든다는 거다.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로마서 7장 25절) 그러니까 인간은 고등어자반을 가르듯 둘로 딱 나뉜다. 마음(영혼)은 성결하기를 원하지만 육신의 소원은 정욕이다. 그러니 잠자리를 멀리할 수밖에. 역신처럼 어마, 뜨거워라, 도망갈 수밖에.

이것은 물론 오해다. 사도 바울이 육신이라고 부른 것은 단순한 육체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는 인간이 한번에 신처럼 성스러워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도 인간은 죄를 짓는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잘못하기 쉬운 성향을 육신이라고 비유해서 말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런 이상한 이분법은 순결 콤플렉스를 낳는다. 교회에서는 배우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동정과 처녀성을 지키겠다는 순결 선언 같은 게 지금도 있다. 속궁합도 봐야 한다는 선인들의 지혜는 이쪽 동네에서는 발붙일 틈이 없다.

“그냥 아는 교회 오빠예요”라고 할 때, 그녀는 자신은 절대로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일상어 용법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은닉하고 있다. 순결 콤플렉스는 중세의 초야권(봉건영주가 영지에 거하는 모든 여자의 첫날밤을 차지할 수 있는 권리)의 변형이며, 초야권의 강제적 내면화다. 순결 콤플렉스는 여자들에게 주입된 남자들의 이데올로기다. 그것도 여자들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포장된. 그러니 나쁜 일상어 용법으로 반박하는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교회 오빠들은 너무나 신실해서 식사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용례 영화 <롤러코스터>에서도 저 대사가 나온다. 마준규(정경호)가 아이돌 스타와 스캔들이 터지자, 극중 여자친구(수영)에게 “아는 교회 동생”이라고 변명한다. 가수 수영은 정경호와 실제로 연인이었으며, 스캔들이 터지자 이들은 “그냥 아는 교회 오빠 동생 사이”라고 대답했다. 두 경우 모두 그냥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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