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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ash on] 사는 게 내 영화 제목과 비슷한 것 같네
사진 백종헌김소희(영화평론가) 2014-11-20

양심적 병역거부한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유예기간> 김경묵 감독

<얼굴 없는 것들>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김경묵 감독이 병역을 거부했다. 학교의 위계적인 문화에 대한 반감으로 고등학교를 자퇴했던 그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순서였는지 모른다. 예상되는 1년6개월의 수감에 대한 무력감을 이겨내며 꼼꼼하게 소견서도 썼다. ‘어둠은 빛보다 어둡지 않다’라는 문구를 쓸 때 특히 힘이 들어갔다. 처음에 한두장으로 끝내려고 했던 소견서는 다섯쪽을 꽉꽉 채운 뒤에야 멈췄다. ‘겁 없는’ 감독이던 그가 그 어느 때보다 ‘두려움’이라는 감정과 깊이 마주한 시간이었다. 오는 11월19일 첫 심리 공판을 앞둔 김 감독을 만났다. 영화 대신 소견서가 이날의 텍스트였다.

-소견서를 쓰는 데 며칠 걸렸나. =9월 초부터 쓰려 해봤지만 2주간은 아무것도 못 썼다. 그냥 ‘병역을 거부합니다’라고만 써낼까 싶었는데 소견서라는 게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기도 하지 않나. 왜 안 써질까를 생각해보니 내가 쓰려던 게 당시 느꼈던 가장 절실한 감정이 아니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을 돌이켜보니 두려움이었다. 그것을 확장하니까 군대 내의 폭력에 가닿았다. 쓰기 시작해 완성하기까지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소견서를 보니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길러지는 데 대한 두려움이 큰 것 같더라. =주변에서 ‘어떻게 가보지 않고 군대를 아느냐’란 얘기도 많이 하는데 한국 사회에 군대식 문화가 만연해 있지 않나. 학교는 가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고 사회 전반적으로 상명하복에 따른 위계질서와 차이를 관용하지 않는 문화에 거부감을 느꼈는데 그 정점에 있는 교육기관이 군대다. 징역형이 두렵고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군대가는 것보단 낫겠다 싶었다.

-후원회 이름을 ‘양심없는 것들’이라고 지었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면 ‘군대 갔다온 사람들은 비양심적이냐’고 한다. 사람들은 양심을 선악의 문제로 인식하는데 헌법재판소에서 규정하는 것도 그렇고, 내가 생각하는 양심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신념을 뜻한다. 국가의 기준으로 보면 ‘비양심’일 수도 있겠다 싶어 ‘양심’이라는 말을 역설적으로 사용했다.

-수감을 앞둔 스트레스가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난 적이 있나. =잠을 잘 못 자고 가끔 투옥된 상황에 관한 악몽을 꾼다. 무의식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모양이다. 깨고 나면 슬프다. 가족도 많이 힘들어한다. 개중에는 병역거부 선언한 이후 부모님이 드러누우셔서 번복한 사람도 있는데 이제 그 마음이 뭔지 알겠다. 내가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 ‘커밍아웃’이란 용어를 쓴 이유도 그것이 가족과 지인들이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성 소수자의 커밍아웃과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정연순 변호사가 변론을 맡기로 했다고. =항소를 할 예정은 아니다. 무죄를 받아봐야 재판만 길어진다. 오히려 심리적인 도움을 많이 얻는다.

-현재 상황에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살면서 국가 폭력을 당한 이들에 대해 공감해왔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내 문제로 다가온 것은 처음이었다. 고통, 힘겨움 같은 것들이 반갑진 않은데 그런 경험이 나중엔 이야기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올해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 <유예기간> 등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활발하게 활동한 것도 병역거부를 염두에 둔 행보였나. =기간이 겹치다 보니 그리된 것이긴 한데 어찌 보면 사는 게 영화 제목과 비슷한 것 같다. 지금은 어떤 것이 ‘끝’나고 ‘트랜지션’(이행) 중에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영화 제목을 미리 지어본다면. =되게 희망적으로 지어야 할 것 같다. 내가 20대 때 만든 영화 제목에 모두 ‘less things’(~없는 것들)가 들어갔는데 더는 그런 제목은 쓰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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