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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대중영화 장인의 유작 <테레즈 데케루>

프랑스 랑드 지방의 영향력 있는 정치가의 딸 테레즈(오드리 토투)는 사랑대신 위세를 택한다. 그녀는 단지 가문과 가족의 세를 유지하기 위해 이웃에 사는 부유한 가문의 아들 베르나르(질 를르슈)와 정략결혼한다. 1928년의 일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녀의 삶은 차츰 불행해진다.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그녀의 마음이 황폐해져서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낀다. 어린 시절부터 친남매처럼 지내온 베르나르의 동생 안나가 미모의 젊은 청년과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테레즈의 불행함은 상대적으로 더 커지고, 그녀는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일으킨다. 남편의 처방전을 위조하여 그를 죽이려다 실패하는 일이 벌어진다. 테레즈는 그 대가로 오랜세월 집안에 갇혀 수인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테레즈 데케루>는 프랑스의 유명 작가이며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한때는 누벨바그 이후 기대주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는 품위 있는 프랑스식 대중영화를 만드는 장인 정도로 남게 된 클로드 밀러의 작품이다. 2012년 밀러가 타계하면서 그의 유작이 됐다. 십여년 전 <아멜리에>로 혜성같이 나타나 귀여운 여인의 또 다른 모델을 제시했던 오드리 토투가 세월이 흘러 이 영화에서는 참담한 삶을 살아가는 중년의 여인을 연기한다. 영화에서 테레즈와 견줄 만큼 중요한 역할인 베르나르는 프랑스의 중견 배우 질를르슈가 연기한다.

“오두리 토투 생애 최고의 연기”(<뉴욕 타임스>)라는 상찬은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토투는 이 영화에서 탁월하지 않다. 그녀가 시종일관 유지하는 테레즈의 표정으로서의 무표정은 이상하게도 기계적이라는 인상을 지우지 못한다. 뛰어난 건 오히려 베르나르 역을 맡은 질 를르슈의 연기다. 매력 없고 고지식하지만 자신을 독살하려 했던 여인에게서 끝내 사랑과 연민을 거두지 못하는 한 남자의 무력함을 그는 섬세하게 연기하고 있다. 사실상 영화는 테레즈의 베르나르 독살 시도의 동기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서사적 탄탄함보다는 인물들의 표정이나 상황에서 관객이 능동적으로 추론해내기를 기대하는 편이다. 하지만 관객이 그런 능동적 감정이입을 하기에는 영화 자체에 무딘 구석이 많다. 이 영화의 설레는 순간은 초•중반부를 대표하는 갈등의 서사와 그림 같은 풍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애증의 폭풍이 모두 지나가버린 영화의 후반부, 어느 한적하고 평범한 날 카페에 테레즈와 베르나르가 함께 앉아 있는 그런 짧은 장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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