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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웅의 일상어 사전] 친구 누나
권혁웅(시인) 2014-12-05

[ 칭구 누나 ]

겉뜻 교회 오빠의 반의어 속뜻 교회 오빠의 동의어

주석 전국의 공용 화장실 남자 칸에는 동일한 낙서가 있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로 시작되는 소설 말이다. 한 사람이 전국을 돌면서 쓴 글 같다. 차이가 있다면 어디까지 썼느냐인데, 그건 작가의 그날 장 컨디션에 따라 다르다.

화장실 소설에서는 왜 그토록 자주 친구 누나가 등장하는 걸까?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문자설. “친구 누나”란 글자를 재배치하면 “누구나 친~”이 된다. 친구 누나란 말이 화장실 작가에게 누구나 친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으로 무의식중에 각인되어 있다는 거다. 친(親)이라는 한자에는 ‘친하다, 사랑하다, 가깝게 지내다’ 등의 뜻과 더불어 ‘새색시’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 친구 누나란 모든 이와 친할 수 있는 존재, 새색시와 같은 존재다. 둘째, 욕구설. 이것은 “누나”가 명사로는 ‘남자보다 나이 많은 여자’란 뜻이지만, 동사로는 ‘누다’의 의문형이라는 데서 온 추측이다. ‘누다’란 ‘몸 안의 것을 몸 밖으로 배설하다’란 뜻이다. 친구 누나를 적을 때마다, 화장실 작가는 거듭해서 ‘잘 누고 있나, 다 눴나?’를 되뇐다는 얘기다. 물론 화장실 작가가 배설하는 것은 대소변만이 아니다. 셋째, 쾌락설. 공자는 다음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않은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즐겁지 않은가? 친구가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은가? 이중에서 세 번째 즐거움을 순수하게 표현한 게 친구 누나다. 아니, 이 먼 동네에 와서도 친구를 만나다니! 그것도 누나까지! 친구 누나는 친구라는 즐거움에 추가된 잉여쾌락이었다가, 친구가 빠지고 나서 순수한 쾌락으로 남았다. 즐거울 수밖에.

어느 쪽이든 친구 누나는 교회 오빠의 반대말이다. 교회 오빠가 ‘그냥 아는 교회 오빠’의 준말이라면, 친구 누나는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의 준말이다. 전자가 아무 사건도 발생하지 않은 사이라면 후자는 가능한 모든 사건이 발생할 사이다. 그런데 뒤집어서 생각하면 이렇다. 교회 오빠와는 이미 무슨 일인가 생겼다. 그걸 덮기 위해서 ‘그냥 아는 교회’라는 수식어가 필요했던 셈이다. 친구 누나와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일이 일어났으면 하는 소망이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가는 상황을 설정하게 한 것이다. 전자의 기조가 내숭이라면 후자에 깔린 감정은 연민이며, 전자가 감춘 커플이라면 후자는 드러난 솔로다. 아, 교회 오빠와 친구 누나는 서로 아무 상관없는 척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지시하는 사이였구나. 친구네 집에 놀러간 사람이 사실은 교회 오빠였구나.

용례 화장실 낙서에는 서명도 있다. WXY. X가 작고 W와 Y는 크게 쓴 세로쓰기다. Z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이 소설이 아직 다 완성되지 않았다는 작가 나름의 겸양의 표현이겠다. 소설을 완성하려면 여자 화장실에 가보아야 하는데 작가로서는 그곳에 갈 수 있는 방도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나도 가보진 못했지만, 거기에는 이렇게 시작하는 소설이 있을 것이다. “친구네 집에 갔는데 친구는 없고 그냥 아는 교회 오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