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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학을 품고자 한 이야기 <허삼관>

1950년대 충남 공주. 마을에 허삼관(하정우)이라는 젊은이가 산다. 가난하지만 뱃심 좋은 그는 인기 좋고 아름다운 여인 허옥란(하지원)을 사랑하게 된다. 옥란의 선심을 얻고 싶지만 가진 것이 없는 그는 궁리 끝에 피를 팔고 받은 돈으로 옥란의 선물을 사고 그녀 아버지의 마음도 얻어내면서 마침내 그 집안의 데릴사위가 된다. 10여년이 흐르고 삼관과 옥란은 일락, 이락, 삼락이라는 이름의 아들 셋을 낳아 단란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마을에 풍문이 돈다. 첫째 아들 일락이가 아버지인 허삼관이 아니라 옥란이 시집오기 전 잠시 사귀었던 연인 하소용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일락이가 허삼관이 아니라 하소용의 아들이라는 소문은, 사실로 밝혀진다. 충격을 받은 허삼관은 가장 아끼던 아들 일락이가 미워진다. 사사건건 일락을 구박한다.

영화 <허삼관>은 동시대 중국의 유명한 작가 중 한명인 위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배우 하정우가 데뷔작 <롤러코스터>에 이어 감독으로서 연출한 두 번째 연출작이며, 이번에는 주연도 겸하고 있다. 영화는 소설의 전체 맥락에 충실한 편이지만 대략적으로 굵직하게 세 부분 정도 가닥을 다시 잡고 있다. 영화 초반부에는 삼관이 옥란을 어떻게 아내로 맞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중반부에는 일락이가 누구의 아들인가를 두고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병에 걸린 일락을 허삼관이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 하는 것이 중대한 실마리가 된다.

전반적인 흐름이 크게 모나지 않은 건 감독의 연출 성과로도 느껴진다. 반면에 화려한 캐스팅을 과시하고 있다는 인상은 내내 지워지지 않는 흠이다. <허삼관>에는 동시대 한국 대중영화를 대표하는 많은 주•조연배우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들 대다수가(실상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카메오 출연에 가깝다는 인상을 심어준다. 극중 세계의 인물로 호소력을 발휘하는 대신, ‘어떤 배우가 그 인물을 맡았다’는 이벤트성 기용으로 종종 보인다는 뜻이다. 이상하게도 남녀 주연 역시, 그들의 평소 유능한 연기력과 무관하게, 배역이 아니라 배우로, 즉 허삼관이 하정우로 옥란이 하지원으로 보인다. 이 점이 관객의 극중 몰입을 방해한다. 원작 소설 <허삼관 매혈기>가 작가의 말을 따라 “평등에 관한 이야기”라면, 영화 <허삼관>은 해학을 품고자 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 해학적 이야기에 인물들의 필연과 운명을 느낄 만한 면모가 좀더 사려 깊게 고려됐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깊은 해학과 단발적인 농담 사이에는 그러한 면모를 근거로 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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