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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우정, 10년
송경원 2015-01-14

2015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어느덧 10회를 맞이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1월15일부터 2월15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2006년부터 총 143명의 친구가 뽑은 240여편의 영화를 상영하며 진한 우정을 나눠온 이 영화제는, 올해도 어김없이 영화를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소중한 추천작을 건네받아 관객과의 만남을 준비 중이다. 2006년 첫발을 디딜 당시 <씨네21>에서 첫 번째 후원릴레이를 했던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감독, 평론가, 영화인 등 18명의 친구들이 선택한 총 23편의 영화가 극장에서 당신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마스터피스로 불릴 만한 작품부터 쉽게 만나기 힘든 희귀작까지, 다양한 보물 중에서 여기에 8편의 영화를 골라 친구들의 각양각색 추천사와 함께 전한다. 함께해서 더 소중한 순간들. 이제 10년, 아직 10년이다. 앞으로도 계속될 영화의 친구들을 위해, 이 겨울 시네마테크가 마련한 선물꾸러미를 펼쳐보자.

그때 그곳에 내가 있었다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선택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Til Madness Do Us Part

왕빙 / 2013년 / 227분 / 홍콩, 프랑스, 일본 / 컬러 / DCP / 청소년 관람불가

중국의 한 정신병원에서 출발하는 카메라는 내내 병원 안을 맴돈다. 범죄자, 정신질환자, 정치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뒤섞인 병원은 차라리 감옥이라 부르는 편이 어울릴 것 같다.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는 그곳에서 긴 시간을 견뎌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4개월간의 기록이다. 왕빙 감독은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대신 가만히 응시하는 쪽을 택했다. 그 시간은 관객에게도 지난하고 버겁다. 타자의 시간을 그저 기록하는 것을 넘어 함께 버텨내고 만질 수 있도록 하는 것, 왕빙 감독의 카메라는 늘 그래왔다. 일체의 인터뷰와 내레이션 없이 진행되는 영화는 그들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출발하는 카메라의 겸손한 태도가 그들의 감정에 투명하게 접속할 수 있는 넉넉한 통로가 되어준다. 정성일 평론가는 왕빙 감독의 카메라와 함께 한동안 이들의 곁에 머물렀다. “다른 이유는 없다. 거기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왕빙 곁에서 그해 겨울 내내 거기 머물렀다. 그날 그 이야기를 영화의 친구들에게만은 하고 싶어졌다. 현장에서 얻은 배움을 영화제의 친구들과 나누고 싶다.”

살 떨리는 기시감

한창호 영화평론가의 선택

<토니 마네로> Tony Manero

파블로 라라인 / 2008년 / 97분 / 칠레 / 컬러 / 35mm / 청소년 관람불가

들불 같은 남미영화의 열기를 느낄 수 있는 영화다. <토요일 밤의 열기>의 주인공 토니 마네로(존 트래볼타)에게 강박적인 집착을 보이는 52살의 라울이 현실과의 괴리 때문에 무너져가는 모습을 담았다. “칠레는 우리와 매우 유사한 현대사의 트라우마를 지닌 나라다. 70년 후반 영화관에선 매일 <토요일 밤의 열기>가 상영되고 TV에선 미국의 버리이어티 쇼 포맷을 그대로 따라한 오락 프로그램이 방영된다. 동시에 다른 한쪽에선 미국 문화에 빠져드는 모습이 아주 적고 흐릿하게 그려진다. 정신적으로 미국의 식민지가 된 남미, 구체적으로는 칠레의 사회조건이 비유되어 있다. 다이렉트 시네마처럼 다큐적인 겉옷을 입고 70년 후반 피노체트의 오랜 독재, 정치적 폭력, 공포 그리고 미국의 존재가 비가시적으로 그려졌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너무 강한 기시감이 들어 영화를 보는 내내 손에 땀이 났다.” 시민들을 겁박하는 독재의 그림자와 미국 대중문화에 무방비로 노출된 환경이 오늘날 우리의 거울처럼 보인다. “게다가 간혹 섹시하기도 하다.”

이제는 다시없을 이벤트

박찬욱 감독의 선택

<천국의 문>(디렉터스 컷) Heaven’s Gate(Director’s Cut)

마이클 치미노 / 1980년 / 216분 / 미국 / 컬러 / DCP / 15세 관람가

“<천국의 문>은 마이클 치미노의 작가적 욕심이 가장 왕성할 때 스튜디오의 간섭이 배제된 상황에서 가장 큰돈을 들여 만든, 역사에서 딱 한번 있었던 이벤트 같은 영화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천국의 문>은 아직 보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영화인데 아직 못 봤다. 블루레이도 사놓았지만 꼭 극장에서 보고 싶어서, 그리고 새로운 복원판이 나왔기에 친구들과 함께 보고 싶어 선택했다.” 시네마테크의 절친 박찬욱 감독다운 선택이다. <천국의 문>은 1890년대 와이오밍주에서 일어났던 존슨 카운티 전쟁을 소재로 제작된 영화다. 당시 4400만달러라는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 갔지만 북미에서 고작 300만달러의 수익을 거두며 최악의 흥행작 중 한편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북미 시장의 차가운 반응과 별개로 여러 가지 의미심장한 성취를 거둔 영화이기도 하다. 미국의 기원과 어두운 역사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성찰하고 있으며 1890년대 서부를 생생하게 묘사했다. “어려서부터 서부극을 좋아해왔고 미국에서 서부극을 만들고 싶어 하는 감독의 한 사람으로 이 영화를 볼 생각에 마음이 설렌다.”

무섭고도 아름다운

봉준호 감독의 선택

<조디악> Zodiac

데이비드 핀처 / 2007년 / 157분 / 미국 / 컬러 / 35mm / 청소년 관람불가

“무섭고도 아름다운 영화를 큰 화면으로 관객과 보고 싶었다.” 봉준호 감독의 선정 이유는 간결하지만 그 어떤 평보다 선명하게 영화의 핵심을 짚어준다. 그의 표현처럼 <조디악>은 무섭고도 아름다운 영화다. 로버트 그레이스미스의 논픽션 소설을 바탕으로, 1969년 샌프란시스코 일대를 공포에 몰아넣은 연쇄살인마 조디악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데이비드 핀처의 터닝포인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건일지를 눈앞에 펼쳐놓은 듯 집요하고 치밀한 전개, 허점을 찾기 힘든 장면의 완성도, 물샐 틈 없는 연결을 통해 관객을 압박하는 무게감이 일품이다. <쎄븐> <파이트 클럽>에서 현란한 스타일을 즐겨 사용했던 핀처는 <조디악>에서 느린 화면과 이에 걸맞은 치밀한 미장센을 선보이며 일약 스릴러영화의 대표주자로 거듭난다. 개봉 당시 일부에서 ‘미국판 <살인의 추억>’이라고 불리기도 했다는 점에서 왠지 납득이 가는 선택이다. “큰 화면으로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자신이 사랑하는 영화를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킨다는 것이 중요하다.”

극장이라는 경이로운 체험

김조광수 감독의 선택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yssey

스탠리 큐브릭 / 1968년 / 141분 / 미국, 영국 / 컬러 / DCP / 15세 관람가

1968년 처음 공개됐을 때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도 혹독한 비평의 칼날과 조롱을 피해갈 수 없었다. 하지만 40여년이 지난 지금 SF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고전으로 자리잡았다. 우주에 대한 묘사는 물론이고 창의적인 연출과 카메라 기법은 아직까지 여러 영화에 영감을 주고 있다. “내가 처음으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본 건 영화과에 입학했던 1983년이었다. 학과방에서 화질 나쁜 비디오로 보고도 입이 떡 벌어졌다. 우주 공간이나 우주선 등 그 당시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비주얼을 접했고 이야기의 철학적 깊이에 두번 놀랐다. 그러다가 90년대 후반인가 2000년대 초반에 DVD로 다시 보았는데, 이건 그전에 본 것과 전혀 다른 영화였다. 훨씬 더 많이 보였고 훨씬 더 많이 들렸다. ‘경이롭다’는 표현이 딱 맞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극장에서 볼 기회가 없었다.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가 무엇일까 떠올렸을 때 딱 생각나는 영화였다.”

영감으로 똘똘 뭉친

연상호 감독의 선택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Tokyo Godfathers

곤 사토시 / 2003년 / 92분 / 일본 / 컬러 / 35mm / 12세 관람가

“요절한 천재 애니메이션 감독 곤 사토시의 <동경대부>(한국 개봉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는 그의 작품 중 유일한 코미디영화다. 치밀한 시나리오로 유명한 곤 사토시의 특기가 최고로 발휘된 작품인 만큼 연출자, 시나리오작가에게 좋은 공부가 된다.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에게 영감을 준 작품답다.” 곤 사토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관객을 홀린다. 영화적인 카메라 기법을 과감히 활용하는 한편 애니메이션이기에 가능한 질감으로 독자적인 환상의 세계를 구축했다. 1946년 서부영화 <3인의 대부>에서 모티브를 빌려온 이 작품은 국내 제목처럼 크리스마스에 일어나는 기적 같은 이야기다. 3인의 부랑자가 도심 한가운데에서 발견한 아기의 부모를 찾아주기 위해 애쓴다. 차가운 현대 사회에 대한 냉소적 비판을 잊지 않는다는 점에서 곤 사토시답다. 그럼에도 곤 사토시 작품 중 드물게 따뜻한 온기가 넘치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유쾌하고 감동적으로 즐길 수 있다. 크리스마스와 신년에 어울리는 독특한 색채의 영화다.”

반짝반짝 가슴 벅찼던 기억

배우 한예리의 선택

<퐁네프의 연인들> Les amants du Pont-Neuf

레오스 카락스 / 1991년 / 125분 / 프랑스 / 컬러 / DCP / 청소년 관람불가

“어릴 적 <주말의 명화>에서 보았던 <퐁네프의 연인들>을 다 이해할 순 없다. 하지만 반짝반짝 빛나던 빛깔에 가슴이 벅차올랐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에게 그 황홀한 경험을 전하고 싶어 이 영화를 선택했다.” 강렬하고 파격적이다. 동시에 우아하고 아름답다. <퐁네프의 연인들>을 표현하려면 이토록 모순된 단어들을 연이어 붙일 수밖에 없다. <퐁네프의 연인들>은 사랑과 시력을 잃고 거리를 방황하는 화가 미셸(줄리엣 비노쉬)과 곡예사 알렉스(드니 라방)의 안타깝고 애절한 사랑을 그렸다. 천재라는 칭송을 받으며 번뜩이는 영감을 자랑했던 레오스 카락스가 대중과의 접점을 찾으며 기록적인 흥행에 성공했다. 레오스 카락스 영화답게 강렬한 색의 사용이 두드러지는데 알렉스와 미셸이 술에 취한 채 다리 위에서 춤추는 장면이 많은 연인들의 가슴을 두드린다. 미셸이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렘브란트의 그림 같은 빛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시네마테크의 아이들, 시네마의 기억들

시네마테크의 선택-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선택

<앙리 랑글루아의 유령> Le Fantôme d’Henri Langlois

자크 리샤르 / 2004년 / 210분 / 프랑스 / B&W+컬러 / 베타 / 12세 관람가

시네마테크 10년을 기념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설립자 앙리 랑글루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선정했다. 1935년 ‘시네클럽’을 꾸린 이래 누벨바그 세대에 큰 영향을 끼친 앙리 랑글루아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다.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에릭 로메르, 아녜스 바르다, 필립 가렐 등 누벨바그 대표자들의 입을 빌려 앙리 랑글루아의 흔적을 더듬어간다. “트뤼포는 그와 대화하는 것이 스파이 스릴러를 84쪽부터 읽는 것 같다고 말했고, 고다르는 그를 영화 수태고지의 천사로 여겼고, 콕토는 영화 보물을 지킨 드래건이라고 찬미했다. 감독도, 시나리오작가도, 평론가도 아니었지만 맨손으로 영화의 루브르를 세운, 20세기 영화나라의 첫 번째 시민이었다.” 누벨바그의 주역인 ‘시네마테크의 아이들’은 그로부터 출발했다. 시네마테크 운동의 창시자일 뿐만 아니라 ‘시네마’의 어제와 오늘을 잇는 가교로서 앙리 랑글루아의 행보를 다시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던 ‘앙리 랑글루아의 유령들’을 초대해 세 시간 반 동안 함께하는 자리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과 같이하기에 실로 적절한 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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