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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래원] 여유를 배우다
윤혜지 사진 최성열 2015-01-19

<강남 1970> 김래원

누아르에 자주 불려나가는 배우들이 있다. 김래원도 그중 하나다. 유하 감독은 이미 김래원에게 한번 러브콜을 보낸 적이 있다. “그 반대예요. 제가 오히려 유하 감독님을 꼭 뵙고 싶었죠. 하필 다른 작품과 겹쳐 고사했는데 이번에 불러주셔서 적극 참여했어요.” <강남 1970>에서 김래원이 연기한 백용기는 “그냥 나쁜 놈”이다. “태생부터 야망이 넘치고 욕심 많은 친구예요. 영화 안에서 용기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에 대한 배려는 사실 없어요. 그래서 감독님을 직접 찾아뵀죠. 감독님은 ‘그냥 깡패’라고 가볍게 일축하시더라고요. 그 말의 행간을 파악하고 나니 바로 수긍이 됐죠.” 김래원에 따르면 <강남 1970>에서 백용기의 몫은 크지 않다. 하지만 김래원에게 <강남 1970>은 “배우가 작품 안에서 해내야 할 몫의 의미”를 깨우쳐준 중요한 작품이다. 김래원은 인터뷰 도중 “이 작품은 종대의 이야기”라고 몇번이나 힘주어 말했다. “용기는 종대만큼 내면이 깊은 인물이 아니에요. 사고 자체가 굉장히 단순하죠. ‘없이 살았기 때문에’ 가지고 싶고, 오르고 싶고, 최고가 되고 싶은 거예요. 지금까지 전 종대 같은 역할을 많이 맡아왔는데 이번엔 아주 단순한 인물이잖아요. 그게 되레 재밌었어요.” “받쳐주는 역할”을 하며 제대로 알게 된 건 ‘흐름을 보는 법’이다. “지금까지 내가 이 신에서 돋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며 왔다면, 이젠 작품이 이 신에서 이 인물에게 원하는 게 뭘까를 생각하게 됐어요. 극 안에서 정확히 내 몫을 해내는 연습을 한 거죠. 보시는 분들은 잘 못 느낄지 몰라도 제겐 굉장한 변화예요.”

그 배움이 진심으로 기뻤는지 김래원은 일주일 전에도 유하 감독에게 감사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제가 요즘 드라마 <펀치>를 찍고 있잖아요? 드라마 현장에 있다보니 감독님 생각이 더 난다고,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문자 보냈어요. ‘그렇게 얘기해주니 고맙네’라는 답장을 받았죠. (웃음)” “배우가 느끼기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무언가를 끄집어내려 한” 유하 감독의 꼼꼼함이 “촬영 중엔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부담”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막 덕분에 김래원이 배운 건 “과하지 않은 연기”를 해내는 법이다. <강남 1970> 촬영 중에도 유하 감독이 김래원에게 수시로 건넨 멘트는 “그러지 마세요. 그냥 편안히 하세요”였다. “너무 밋밋한 거 아닌가? 싶었는데 현장 편집본을 확인하면 감독님이 왜 그렇게 요구하셨는지 알겠더라고요. 감독님은 배우에게서 불필요한 힘을 끌어내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감정을 얻어내는 분이었어요.” 백용기가 ‘어떤 살인’을 하고 난 직후, 시나리오상에 “광기어린 분노”를 표출하는 장면이 있다. “분노가 아니라 두려움이었어요. 촬영 전엔 이렇게 찌르면 되겠다고 가볍게 시작했는데 막상 찌르고 나니까 실제로 손이 덜덜 떨리고 겁이 나더라고요. 촬영 끝나고도 30분 넘게 떨림을 멈추지 못했어요. 어떻게 담겼을지 궁금해요. 그러고 있는 사람 모습이 얼마나 무섭겠어요. 이게 더 리얼한 거죠.”

드라마 <천일의 약속>을 하는 도중 김래원은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작품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디테일도 훌륭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냥 따라가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배우로서 내가 뭔가를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느낌?”(<씨네21> 887호) 그런 의미에서 <펀치>는 김래원이라는 배우의 최대 장기, ‘여유’를 제대로 발휘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김래원은 그것마저도 자신이 중요한 걸 놓쳤던 탓으로 돌렸다. “<천일의 약속>은 저에게 실패였어요. 작품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주인공은 수애씨였는데 제가 저를 어필하려다보니 과해서 연기가 나빠졌죠. 제 몫에 충실했다면 더 좋았을지 몰라요. 그걸 알게 된 지금이라면 더 잘해낼 수 있는데 그럴 수 없으니 아쉽죠. 연기 시작한 지 15년이 넘어서 이런 고백을 하고 있으니 창피한데요. (웃음)”

김래원은 지금 연기를 시작한 이후 가장 ‘나쁜 놈’이 되어 있다. 백용기와 <펀치>의 박정환, 둘 다 잔뜩 궁지에 몰려 악으로 깡으로 분투하는 인물이다. 박정환이 착해질까봐 걱정된 김래원은 처음으로 박경수 작가에게 전화를 했다. “저 어떻게 되냐고, 혹시 인생관이 바뀌게 되냐고 여쭤봤더니 작가님께선 한마디만 하시더라고요. ‘사자의 왕은 죽기 직전까지도 날을 세우고 있다’고요. 바로 ‘예, 알겠습니다’ 했죠.” 반면 김래원 자신은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다. 몸은 바쁘지만 마음은 “전체 흐름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 1970>을 찍으면서 힘 빼는 걸 배우고 난 뒤 <펀치>를 찍는데 감독님이 처음에 제 연기를 싫어하셨어요. 표정이 없다고 하시는 거죠. 양날의 칼이었어요. 잘 말씀드리고 기회를 얻어서 제 생각대로 연기했는데 다행히도 잘한 선택이 됐어요. 진짜 안타까운 건 시간에 쫓기고 제가 부족해서 이 훌륭한 대본을 버리면서 가야 한다는 거예요. 매회 흘리고 가요. 나중에 보면 ‘내가 이것도 놓쳤구나, 저걸 잘못했구나’ 알게 되죠.” 유하 감독과의 작업이 김래원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킨 것 같다. 김래원의 2막이 이제 막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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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리스트 정기빈·헤어 박철(보이드바이박철)·메이크업 김다혜(보이드바이박철)·의상협찬 타임, 산드로, 엠비오, 유니페어, 구찌, 알레그리, 리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