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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 × cross] 내 욕구 중 최고는 역시 만화
신두영 사진 최성열 2015-02-09

<찌질의 역사> 연재하는 만화가 김풍

아. 이 단어의 의미를 안다면 만화가 김풍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김풍은 <폐인의 세계> <폐인 가족> 등으로 디시인사이드로 대변되는 이른바 ‘폐인 문화’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10여년 전 얘기다. 지금 김풍은 <더 지니어스: 게임의 법칙>이나 <올리브쇼> 등의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알리고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자취 요리를 선보이는 방송인 같다. 그래도 그는 웹툰 작가라는 타이틀을 버리지 않았고 지금 네이버 웹툰에 <찌질의 역사>라는 만화를 연재하고 있다. <찌질의 역사>는 30대 중반의 아저씨가 된 대학 친구 4명이 모여, 자신들이 스무살이던 1999년부터 주인공 민기가 ‘설하’라는 이름의 3명의 여자들을 만나며 일어나는 찌질하고 미숙한 연애를 함께 돌아보는 형식의 작품이다. “방송은 곁다리”라고 말하는 ‘자취 요리 셰프’ 김풍이 아닌 ‘만화가’ 김풍을 만났다. 그의 호방한 웃음을 지면에 전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하하하하하” 웃는 김풍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동네 형처럼 친근한 웃음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의 인기가 엄청나다. 제2의 전성기라고 얘기해도 될까.

=(웃음) 글쎄. 십몇년 전에 그런 맛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곤두박질쳤다. 그때랑 지금은 느낌이 다르다. 아무도 그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만 기억한다. (웃음) 20대 중반이던 그때는 내 그릇을 가늠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직 서른이 안 됐기 때문에 하고 싶은 거 다 해야겠다는 욕구가 많아서 이것저것 발 담그고 다녔다. 그러다가 나이를 먹었다. 웹툰하는 형들이 슬슬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 ‘나는 뭘 하고 살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 사업도 하고 연극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뭔가 재밌는 건 다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후회는 없다. 욕망과 욕구라는 게 있지 않나. 나는 욕망이 많지는 않다. 욕구가 다양할 뿐이다.

-그 욕구 중 요리도 있나.

=요리는 우연의 결과다. 4년 정도 놀았다. 불안해하면서 논 거다. 그 불안함을 잊으려고 트위터를 했고 그 맛을 봤다. SNS의 맛을. 내 요리가 유명해진 것도 트위터 때문이다. 그때 별 이상한 잉여짓은 다 했다. 사람들이 열광해주니까 신나서 또 하고 그랬다. 그러다가 인생에 대한 재설정을 해야 하는데, 나는 이렇게 노는 사람은 아닌데 어떻게 할까 하다가 결국 만화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그러면서도 겁이 난 게 뭐냐면 만화가라는 직업은 사실 엉덩이 싸움인데, (강)풀이 형 치질 걸리고 곽백수 형 머리 열었다 닫았다 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이걸 평생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곽백수 작가 만나서 인터뷰(917호 트랜스크로스)했을 때 아이디어를 금방 내는 것처럼 얘기했던 것 같다.

=물론 곽백수 형이 엄청난 고민을 하는 것 같진 않다. (웃음) 아무튼 만화가들의 고충을 보면서 겁을 내고 있는 와중에 <신암행어사>의 윤인완 형이 한번 해보자, 도와주겠다, 라고 해서 일본 잡지 연재를 준비했다.

-어떤 작품이었나.

=공포물이다. 이왕 할 거면 ‘빡세게’ 해서 일본에서 인정받으면 대단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일본은 엄청 까다롭더라. 수정을 9개월 동안 했다. 이렇게 좌절을 맛본 건 재수하고 또 대학 떨어졌을 때 이후 처음이었던 것 같다. (웃음)

-그때가 언제쯤인가.

=3, 4년 전쯤이다. 그러다 안 되겠다, 다시 웹툰을 하자고 해서 심윤수 작가랑 히어로물을 준비했다. 1회까지 나온 상황에서 <건축학개론>을 보게 됐다. (웃음)

-<찌질의 역사> 아이디어가 <건축학개론> 이전일까 이후일까 궁금했다.

=<건축학개론>을 보고 나와서 윤수한테 다른 거 하자고 했다. 너무 하고 싶은 게 생겼다고. 그래서 <찌질의 역사>를 썼다. 네이버에 콘티 보여주고 오케이 받고 그림체를 맞추는 작업 중이었는데 <응답하라 1997>이 나와버렸다.

-이런. 그래도 <찌질의 역사>는 시대보다는 스무살이라는 정서가 더 중요한 거 아닌가.

=스무살 남자의 적나라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 거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첫 번째 시즌 정도는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어떡하지 하다가 일단은 드라마 끝날 때까지만 기다리자 했는데 <응답하라 1997>이 빵 터졌다. 1년만 기다리자 했는데 <응답하라 1994>가 나왔다. 미치겠더라. 결국은 <응답하라 1994>와 비슷한 시점에 연재를 시작했다. 처음엔 <응답하라 1994>나 <건축학개론> 비슷한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는데 특히 <건축학개론>과는 비슷할 수밖에 없다. 내가 거기서 영감을 받아서 시작한 거니까. 차이라고 하면 남자들이 ‘나의 추억은 아름다워, 나는 항상 불쌍한 아이였고 그 여자는 쌍년이었다’는 그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쌍놈이고 내가 속 터지는 남자친구라는 걸 고해성사하듯이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고해성사를 보는 독자들은 주인공의 찌질한 행동을 보면서 “암에 걸릴 것 같다”라며, <찌질의 역사>를 ‘발암웹툰’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런 평가가 나쁜 건 아닌 것 같다.

=맞다.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작가를 욕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를 욕하는 거니까. 사실은 욕을 하면서도 볼 수밖에 없을 거다. 왜냐하면 자기 얘기니까. (웃음) 결국 <찌질의 역사>는 주인공 민기가 성장하는 이야기다.

-지금 세 번째 설하를 만났을 때는 조금 큰 느낌이더라.

=그렇다고 해서 많이 변하지는 않았을 거다. 주인공의 변화는 사실 내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하다. 어렸을 때는 내 감정이 우선이고 내 위주로 생각하지만 살면서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읽기 시작하고 이해라는 게 생기지 않나.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되고 그 가운데 남자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생기고 일에 대한 욕심도 생기면서 한편 어떤 씁쓸한 느낌도 든다. 더이상 가슴이 뛰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거다. 이런 걸 잘 녹여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찌질이 민기는 어떻게 그렇게 예쁜 여자를 계속 만날 수 있나.

=계속 여자가 붙는 이유는… 이 이야기는 사실 남자들이 보는 이야기다. 애초부터 남자들을 대상으로 우리끼리 손발 오그라들면서 이불킥하면서 보자라는 거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예쁜 여자를 등장시킬 수밖에 없다. 그래야 민기의 패악질이 더 돋보이거든. (웃음) 대신 민기의 친구들이 현실적인 여자들을 만난다.

-개인적으로, 개명을 해서 설하라는 이름을 갖게 된 민기의 세 번째 여자친구가 ‘오빠는 어떤 이름이 좋아?’ 했을 때, “설하?”라고 답하는 장면이 좋았다. 잠깐 뜸을 들이며 독자들에게 ‘혹시, 설마, 제발!’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찌질의 백미랄까. 또 눈에 띄는 연출은 청첩장을 주러 온 두 번째 여자친구 윤설하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장면이다.

=연출을 하는 데 있어서 인완이 형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윤설하 얼굴을 보여주지 말자는 것도 인완이 형 아이디어였다.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니까 보여주지 말자고. 인완이 형이 관록이 있는 작가다. 그런 부분에서 도움을 많이 받는다.

-주변에서 도움을 받는다고 하니 <냉장고를 부탁해>에 함께 나오는 최현석 셰프가 떠오른다. 둘의 궁합이 좋다.

=작가여서 그런지 사람을 관찰한다. 뚫어지게 본다. 현석이 형을 관찰했는데 그냥 앞만 보고 가는 게 있더라. 그런 사람의 옆은 툭 치기 쉽다. 그래서 현석이 형 얘기할 때 툭툭 건들면 현석이 형이 놀라면서 반응을 해준다. 현석이 형도 즐기는 것 같더라. 나랑 다른 필드에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장난도 가능한 것 같다.

-인상적인 대사가 하나 있다. “완전 캡! 역시 델리스파이스야. 이젠 U2를 뛰어넘었다니깐.” 서브컬처에 관심이 많은 첫 번째 여자친구 권설하가 하는 말이다. 이 대사를 보면서 <찌질의 역사>의 공간적 배경인 홍대 학생이던 당신의 그 시절은 어땠을까 궁금해졌다.

=인디음악 마니아는 아니다. 스팽글, 마스터플랜, 드럭… 라이브 클럽 계보는 대충 알았다. 그때는 홍대가 휑했다. 사람도 많지 않았고 피카소 거리도 진짜 썰렁했고. 그때 홍대 분위기는 차분한 예술가들의 그런 느낌이 있었다. 사실 그때가 그립다. 그 문화에 젖는다고 해야 할까, 정말 좋아했다기보다 다 같이 열광하는 느낌이 좋아서 따라가야 될 것 같은 느낌. 아마 권설하도 그런 부분에서 착안을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당시 홍대 문화를 느꼈던 사람들과 <찌질의 역사>를 보고 같이 얘기를 하면 그 시절로 좀 젖어드는 게 있다.

-<찌질의 역사> 이후의 행보도 궁금하다. 요리 만화에 대한 기대도 클 것 같다.

=요리 만화 얘기는 계속 나오고 있다. 내가 요리 만화를 한다면 사람들이 좀 기대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미 요리 만화는 일본에서 다 나온 것 같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데 흥이 나지 않는 기분이라 주저하게 된다. 더 하고 싶은 건 극화 만화다. 머릿속에 있는 아이템들을 빨리 꺼내서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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