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ovie > 무비가이드 > 씨네21 리뷰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이 주목한 자신의 '뿌리' <이다>
이화정 2015-02-18

<이다>를 연출하기 전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은 <사랑이 찾아온 여름>(2004)과 <파리 5구의 여인>(2011)을 연출했다. TV 다큐멘터리 제작에서 시작, 그간 상업적인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그가 ‘유수 영화제 초청작’으로 화제가 된 <이다>를 연출한 건 의외지만, 필연적이지 싶다. 주로 영국에서 활동하던 폴란드 태생인 감독이 고향으로 돌아가 주목한 것은 자신의 ‘뿌리’였다. 즉 아우슈비츠에서 죽은 할머니를 둔 가족의 역사가 <이다>의 스토리의 뼈대를 형성하는 데 역할했다면, 크시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아그네츠카 홀란드 등이 구가해온 폴란드 영화 전성기에 대한 존경은 60년대 폴란드 풍경을 고스란히 담은 흑백화면을 만드는 촉매제가 되었다.

<이다>는 수녀원에서 자신이 고아인 줄 알고 자란 18살 수녀 안나(아가타 트셰부호프사카)가 원래 이름인 ‘이다’를 알게 되는 여정이다. 서원식을 앞둔 그녀는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이모 완다(아가타 쿠레샤)를 만나, 그녀와 함께 잃어버린 부모의 흔적, 비극적 죽음의 시대를 찾아 나선다.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두 여자의 만남은 굴곡진 폴란드의 역사를 부각한다. 자유분방한 성생활, 술과 쾌락을 기꺼이 즐기는 완다는 신의 존재를 믿는 이다와는 정확히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공포 정치 시절, 검사로 지낸 그녀는 폴란드의 절망의 시대를 통과한 인물로, 그녀는 자신의 자매(이다의 엄마)와 똑닮은 ‘예술가다운 기질’을 가진 조카가 60년대 변화와 희망의 폴란드에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안나와 완다가 찾아가는 60년대 초반 폴란드의 목가적 풍경은 그저 ‘아름다움’으로만 소비되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하늘의 풍경은 미학적 기능 대신, 잿빛 하늘에 눌려 있는 듯한 인물의 억압된 심정으로 기능한다.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은 서두르지 않는 롱테이크의 움직임을 통해 서서히 변모하는 안나의 심리를 포착해나간다. 안나를 연기한 아가타 트셰부호프사카는 <이다>의 화면을 완성하는 열쇠다. 비극의 역사에 순수하게 노출된 채 그걸 감당해내는 데 있어 흑백 화면 속, 유독 까만 그녀의 눈동자가 주는 감흥은 절대적이다. 고전영화 속 배우처럼 단아한 아름다움을 가진 그녀는 놀랍게도 연기 경험이 전무했다. 감독이 애타게 찾던 바로 그 이미지에 부합해 거리 캐스팅됐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