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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뭔지를 아는 사람들간의 연대 <세인트 빈센트>
정지혜 2015-03-04

빈센트(빌 머레이)는 성격도, 인생도 꼬일 대로 꼬여 있다. 누가 말이라도 걸라치면 “그런 얘긴 됐고”라며 딱 잘라 사양이다. 재정 상황도 최악이다. 벌써 8년째 은행 대출을 받고 있고 현금 지불 한도도 초과다. 이제 그에게 남은 건 다 쓰러져가는 낡은 집과 오래된 빈티지 캐딜락뿐. 누가 봐도 빈센트는 돈 없고 성격까지 완전 꽝인 늙은이다. 그런 빈센트가 푼돈이라도 벌어볼 요량으로 옆집 꼬마인 올리버(제이든 리버허)의 베이비시터가 된다.

살가운 말 한마디 없는 빈센트는 방치하듯 올리버를 대한다. 어른이라고 올리버에게 훈수를 둘 생각도 없다. 대신 빈센트는 자기가 가는 곳에 올리버를 데리고 다니며 자신이 터득한 인생의 팁을 툭툭 내뱉는다. 예를 들면 친구들에게 맞고 있는 올리버에게 ‘이 나라는 자신을 방어할 줄 모르면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라며 싸움(방어)의 기술을 알려 주거나, 경마장에 가서 베팅을 하면서 인생에 꼭 필요한 리스크 관리와 올인의 개념을 체험하게 한다. 숫기 없는 올리버에게 남들 앞에서는 큰소리로 말하는 거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그사이 올리버는 남들이 모르는 빈센트의 비밀을 하나 알게 된다. 지난 8년간 빈센트는 한주도 거르지 않고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내가 있는 요양원을 찾았던 것이다. 그런 빈센트를 보며 올리버는 현대에도 성인(聖人)이 있다면 빈센트와 같은 모습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세인트 빈센트>의 빈센트는 상당히 다층적인 인물이다. 겉으로는 모두가 꺼리는 위험 인물이지만 알고보면 그는 아내에게 헌신적인 순정파이자, 시니컬함 속에 유머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 무심한 듯해도 자기 멋도 있다. 그런 빈센트를 완성한 건 전적으로 코믹과 정극을 능란히 오가는 빌 머레이 덕이다. 게다가 그의 큰 체구가 술과 음악에 취해 휘청거리거나 아내의 죽음 앞에서 무너질 때면 슬픔은 배가 된다. 빈센트를 위로하는 인물들 역시도 하나같이 어딘가 부족하고 결핍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게 이 영화가 갖는 또 하나의 미덕이다. 입양아이지만 속깊은 올리버나 싱글맘 매기(멜리사 매카시), 이민자 출신의 가난한 스트리퍼 다카(나오미 와츠)가 그렇다. 아내를 잃은 빈센트를 웃게 하는 건 결국 아픔이 뭔지를 아는 사람들간의 연대였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밥 딜런의 <셸터 프롬 더 스톰>을 부르는 빈센트가 조금은 덜 외로워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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