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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상 수상작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여기 비겁한 남편이 있다. 스키여행을 떠난 토마스(요하네스 바 쿤게)와 가족들은 테라스에서 식사를 하던 도중 눈사태가 일어나는 광경을 목격한다. 눈보라가 식당으로 밀어닥치는 순간 토마스는 가족들을 버린 채 혼자 도망친다. 다행히 식당을 덮친 건 눈사태 여파로 인한 눈 먼지였고 사람들은 모두 무사하다. 하지만 아내 에바(리사 로벤 콩슬리)는 토마스에 대한 신뢰를 잃었고 부부 관계에 생긴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간다.

북유럽 특유의 건조한 유머가 곁들여진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은 요란스럽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게 화면을 연출하는 솜씨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 초반의 눈사태를 제외하면 화면은 내내 정적이고 극적인 사건은 거의 없으며 카메라의 움직임도 절제돼 있다. 하지만 영화는 지루할 틈이 없다. 루벤 외스트룬드 감독은 매 장면 부부 관계가 틀어지는 과정을 묘사할 단순하지만 강력하고 위트 있는 장치들을 장착해놓았다. 가령 에바가 친구 커플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환상적인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꾸며댈 때 낮은 곳에 위치한 카메라 때문에 에바의 얼굴은 통째로 화면 밖으로 잘린 채 몸통만 이리저리 이동하는 기괴한 장면이 연출된다. 간단한 방법만으로 뒤틀린 심정과 어긋난 관계를 효과적으로 전달해내는 셈이다. 음향을 활용하는 감각도 탁월하다. 전동칫솔과 스키리프트, 제설차의 기계음이 장면마다 반복되면서 영화의 독특한 리듬과 히스테릭한 감정선을 형성하는 데 일조한다. 제67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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