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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동의 미학을 지닌 공포영화 <팔로우>
이예지 2015-04-01

여느 공포영화에서 희생양이곤 했던 미모의 금발 소녀가 <팔로우>에선 주인공이다. 제이(마이카 먼로)는 남자친구 휴(제이크 웨어리)와 데이트한 뒤 관계를 가진다. 휴는 관계 후 돌변하여 이제 무언가가 제이를 따라다닐 거라고 경고한다. 제이의 친구들은 헛소리로 여기지만, 제이는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자신을 따라다님을 느낀다. 휴는 이것이 섹스로 전이되는 저주이며, 다른 사람과 섹스를 해서 넘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제이는 그녀를 짝사랑해온 폴(키어 길크리스)을 비롯한 친구들의 보호를 받으며 자신을 따라오는 존재들을 피해 다닌다.

<팔로우>는 정중동의 미학을 지닌 공포영화다. 깜짝 놀라게 하거나 유혈이 낭자한 잔인한 장면 따윈 없다. 주인공을 위협하는 불특정한 실체인 ‘그것’들은 점잖다. 절대 뛰지는 않고 걷기만 하는 양반이기에, 숨가쁜 추격 같은 것도 없다. 카메라는 롱테이크로 360도 회전하며 주인공의 주변을 찬찬히 훑고, 등장인물이 알아채기 전 관객이 먼저 인지한 그것이 느릿느릿하게 다가오는 것을 보여준다. 관객은 놀라기보다 등장인물들이 언제 그것을 알아챌지 조바심을 낸다. 귀신 자체보다는 귀신이 등장할 타이밍을 응시하는 방식이다. 이 참을성 있고 느린 호흡의 공포영화는 최근의 빠르고 자극적인 공포영화와는 다르다. <파라노말 액티비티>(2007)부터 시작된 기발한 저예산 공포영화의 계보를 잇길 기대한 관객에게는 다소 심심할 것이다. 섹스에 대한 보수적인 태도와 느리지만 정석적인 전개, 음산한 신시사이저 음악까지, <팔로우>는 오히려 존 카펜터의 작품을 비롯한 전통적인 1980년대 공포영화와 닮아 있다.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팔로우>의 세계에는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10대인 주인공과 친구들은 함께 행동하며 방어적인 공동체를 형성한다. 사춘기의 문법으로 지배되는 <팔로우>에서 섹스는 곧 불가사의한 저주이자 알 수 없는 세계로의 이행이다. 그러나 공포영화의 관습처럼 섹스를 하면 죽지는 않는다. 섹스를 하면 저주를 받고, 또 섹스를 해야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다. 공포영화의 관습을 살짝 비트는 감독의 재기는 흥미롭다. 예쁘장한 금발 소녀는 섹스를 해도 죽지 않지만 저주에 걸리고, 그런 그녀에게는 섹스로 저주를 넘겨받겠다는 소년이 있다. 소년, 소녀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멜로적인 무드와 중간중간 엿보이는 센티멘털리즘은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 감독이 멜로 장르 영화에도 적합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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